“시집은 안 갈 거다. 누가 내 같은 사람하고 결혼 하겠노”

철이 들면서부터 시집은 안 가겠노라고 떼를 썼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니가 뭐 어때서”

어머니는 남동생의 결혼을 앞두고 누나를 먼저 시집보내려고 맞선자리를 주선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을 했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이영선씨. ⓒ이복남

‘정말 시집을 안 가려나’에서 ‘이러다가 시집도 못가는 것은 아닐까’ 과년한 딸을 둔 어머니는 노심초사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그런데 서른을 훌쩍 넘긴 어느 날 난데없이 딸이 시집을 가겠다고 하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러나 결혼을 하겠다는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니 발등 니가 찍는다. 니도 몸이 불편한데, 니보다 더 불편한데 우짤라꼬 그라노”

어머니는 차라리 시집을 안 보냈으면 안 보냈지 그런 사람한테는 못 보내겠다고 했다.

“시집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런 사람은 안 된다니, 엄마는 당신 딸이 잘 난 줄 아나”

누가 뭐래도 어머니에게는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예쁘고 잘 난 딸이었다. 당신의 목숨하고도 바꾸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도 귀한 딸이었다. 그 귀한 딸이 시집을 갔고 아이를 원했다.

이영선씨와 김대성씨의 결혼식. ⓒ이복남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했으면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보통의 수순인데 결혼을 하기까지도 만만치 않았지만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더욱 어렵고 힘든 중증장애인의 아내였던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우리에게 아이 하나만 주신다면 평생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빌고 또 빌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시계바늘이 멈춘 듯 1분 1초에 숨이 멎는 듯 했다.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또 울고 그렇게 기다린 열 달이 지나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천사들이 그의 품에 안겼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이고 축복이었다.

천사를 얻은 이영선(41)씨는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에서 1남 1녀의 첫딸로 태어났다. 부산이라고는 하지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남서쪽 바닷가, 40년 전의 구평동은 부산의 오지마을이었다. 아버지는 흔히 사람들이 듣기 좋게 말하는 한량이었고 어머니는 무거운 다라를 이고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는 억척같은 장사꾼이었다.

쌍둥이와 아빠 김대성씨. ⓒ이복남

딸이 돌이 지나고 자박자박 제법 예쁜 짓을 할 무렵의 어느 날 방안에서 재봉틀을 잡고 놀던 아이가 철퍼덕 주저앉더니 다시는 일어서지를 못했다. 놀란 어머니는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약을 달이고 침을 맞히고 갖은 정성을 다 기우렸으나 축 쳐진 아이의 다리는 돌아 올 줄을 몰랐다.

그래도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 했기에 아픈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야 했다. 봄이면 채소를 팔고 여름이면 과일을 팔았다. 그러다가도 용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를 들쳐 업고 달려갔다. 한번은 용한 침쟁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침을 맞히려고 깜깜한 꼭두새벽에 아이를 업고 길을 나섰다. 인적도 없는 구평동 산길을 내려와 침쟁이 집을 찾아 가는데 난데없는 검은 그림자가 앞을 막아섰다. 노상강도를 만난 것이다.

쌍둥이와 엄마 이영선씨. ⓒ이복남

강도가 돈을 찾느라 어머니의 가슴팍을 더듬었는데도 어머니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았다. 나중에 그가 철이 들었을 때 왜 그랬느냐고 하니까 침 맞으러 가는데 소리 지르면 혹시라도 부정 탈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자식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이 더 절박했던 것이다.

그가 여섯 살 때 자식의 병은 낫지 않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림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은 험하고도 멀었다. 입학식 날은 어머니 등에 업혔고 그 후에는 할머니가 업고 다녔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이영선씨 이야기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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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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