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교육권연대 김기룡 사무국장이 천막야학 1교시 수업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벌써 2주째 공전되고 있는 제266회 임시국회. 지난 23일 밤 불 꺼진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등불’ 하나가 솟았다.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장애인야학 학생들과 교사들이 밝힌 불빛이었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수업이 한창이었다.

장애인야학 12곳이 결성한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상임대표 박경석 오용균)는 이른바 ‘천막야학’을 열었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 2월 5일부터 국민은행 본점 앞에 설치해놓은 천막을 빌리고, 칠판과 책걸상을 가져와 교실을 꾸렸다.

왜 국회 앞 천막야학은 열려야했나?

7시30분부터 시작된 1교시 수업.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사 출신이자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사무국장인 김기룡씨가 강단에 섰다. 수업 주제는 다름 아닌 천막야학이 열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었다.

12.60% 대 45.20%.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12.60%는 전체 국민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국민들의 비율이었고, 45.20%는 전체 장애인 중에서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장애인들의 비율이었다.

이 숫자가 지니고 있는 파괴력은 무서운 것이었다. “학력위주의 사회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당연히 취업을 하지 못하고 되고, 빈곤계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돈이 있어야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체 가구원의 저학력 현상은 지속되고, 빈곤은 악순환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교육을 받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학력 장애성인이 뒤늦게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의 공교육 시스템은 학령기 장애아동의 교육을 수행하기에도 벅찬 현실이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사설 검정고시학원이나 일반야학을 가지도 못한다. 비싼 과외교사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장애인야학들이 배우고자하는 장애성인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천막야학을 열어 장애인야학의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 <에이블뉴스>

천막야학 수업현장 뒤로 제266회 임시국회를 열고도 2주째 공전되고 있는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에이블뉴스>

지긋지긋한 운영난…해결책 없나?

하지만 장애인야학은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이날 천막야학의 2교시 주제는 전국 장애인야학들이 자신들의 학교를 소개하는 것. 각 야학의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연스럽게 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실이 좁아서 더 이상 학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어쩔 수 없이 되돌려 보냅니다.’

‘차량이 없어서 장애인학생들의 통학지원을 하지 못해요. 그래서 중증장애인들은 야학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교육을 하기도 합니다.’

‘교사들은 전원 자원활동가들입니다. 길어야 1~2년 교사활동을 하고 야학을 떠납니다. 매학기 새로운 교사들을 찾는 것이 힘듭니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야학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장애인단체나 복지시설들처럼 후원 사업을 전개하기도 힘듭니다.’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상근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힘듭니다. 상근인력이 없어서 야학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야학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비슷비슷했다. 운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고사한 장애인야학은 부지기수다. 현존하는 20여개의 장애인야학들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이제 장애인야학들은 국회가 해결사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지난 15일부터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1인 시위 마지막 날인 이날 천막야학을 연 것이다.

작은자야학 초등기초반 조숙희씨가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과연 언제쯤 우리에도 희망이…”

정부가 국회로 보낸 특수교육진흥법 전부개정안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는 “‘장애인의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안’(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대표발의)과 같이 보다 확실하고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과연 언제쯤 끝날까요?” 향후 대응방안을 모색해보는 3교시 때, 강단에선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에게 인천작은자야간학교 초등기초반 조숙희(41·지체장애1급)씨가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교사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투쟁밖에 해결책이 없지 않겠느냐”는 답변밖에.

기능을 멈춰버린 국회는 언제 다시 가동될지 미지수다. 12월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여야간 싸움은 치열해질 것으로 보여 상황은 더욱 답답한 실정이다. 국회가 열리더라도 장애인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안과 특수교육진흥법 전부개정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들을 뒤로하고 3교시가 끝난 천막야학에서는 조촐한 뒤풀이가 이어졌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종이컵에 술을 채우고 건배를 했다. 천막수업도 수업인지라 수업이 끝난 후에 학생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불 꺼진 빌딩 숲 여의도의 늦은 밤, 정보과 형사 몇몇만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늦은 밤까지 계속된 천막야학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는 정보과 형사들 뿐이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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