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스위스 취리히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직업적인 섹스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공창제도가 없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장애인의 섹스 향유권(?)’이란,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던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 때문에, 이 기사가 유독 눈 띄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기사를 읽고 부러움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나 이런 소식을 접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그 부러움은 섹스봉사를 받는 것에 대한 부러움에 앞서서, 그러한 서비스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사회와 그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퓌러 소장의 말처럼 ‘섹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삶의 일부이며, 장애인도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그러니까 장애인들도 섹스를 즐겨라, 말리지 않겠다’라고 끝나는 것으로는 섹스문제에 있어서의 장애인 차별을 제거할 수 없다. 즉, 이러한 문제들을 장애인 개인의 문제로 보고, 그 해결책을 개인에게서 찾으려는 것이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며, 그런 생각을 갖고는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장애인들도 똑같이 섹스를 즐겨야 하겠지만 거기에는 많은 장벽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며, 사회적으로 그런 장벽들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하는데, 그 사회적 노력이 유럽의 국가들에서는 사회복지단체의 섹스서비스란 형태로 가시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도 없이 그 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이다.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는 196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공민권운동을 바탕으로 생겨난 개념으로, 1961년 연방정부와 계약을 맺는 기업체 취업에 있어서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케네디 대통령 행정명령에 나타나 있다. 그 후, 1973년 재활법 504조를 거쳐, 1990년 미국장애인법의 근간이 되고 있는 개념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즉,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저 소극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적극적인 시정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결해야할 당면과제들이 너무 많아서 장애인들의 섹스 문제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판에, 이러한 유럽나라들의 소식은 정말로 먼 미래의 이야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의 차별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하고,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로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은,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에 당장 적용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생계, 취업 등의 문제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장애인의 차별문제는 전 생애에 걸쳐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다루어져야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음은 얼마 전 연합뉴스에 보도된 내용의 일부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 직업적인 섹스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범계획이 사회복지단체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프로 인피르미스(Pro Infirmis)'의 안젤라 퓌러 취리히 사무소장은 "오랫동안 장애인은 물론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장애인의 성문제에 관해 들어왔다"며 장애인의 성권리가 간과되고 있다고 `섹스봉사' 계획의 취지를 설명했다.

취리히 사무소는 우선 10명의 `접촉자'를 선발, 훈련을 시킨 뒤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애인들에게 섹스봉사를 제공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미 150여명이 `접촉자' 선발에 관심을 표명했다고 사무소측은 전했다. 또 일정기간이 지난 뒤에는 등록된 매춘부를 훈련시키는 방법 등을 통해 장애인 고객들의 구체적인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서비스의 폭이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에 대한 섹스봉사는 스위스에서는 최초가 될 것이지만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국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고 스위스국제방송은 전했다.

`프로 인피르미스'측은 이 분야의 선구자인 네덜란드 출신의 니나 데 브리스를 초빙해 시범계획 운영에 관한 조언을 받고 있다. 데 브리스는 지원자들에 대한 엄격한 심사와 강도 높은 교육만이 섹스봉사의 남용 내지 악용을 방지할 수 있는 선결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교육과정의 주된 부분은 (섹스봉사) 업무의 정신적, 감성적인 측면을 다루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퓌러 소장은 "이들은 숨쉬고 먹고 씻는 것으로 일생을 보내기를 원치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영혼과 감정을 갖고 있다"며 "섹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삶의 일부"라고 시범계획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2003년 4월 9일, 연합뉴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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