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선명한 이발소 표시등

거리에 나서면 빨강 파랑 흰색의 조그맣고 길다란 원통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이발소 표시인데 요즘은 미장원에서도 이 상징물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발소에서 왜 이런 상징물을 쓰게 되었을까. 중세 유럽에서 이발소는 외과병원을 겸하고 있었다. 수술도구로 가장 먼저 나온 나이프는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면도를 할 때 뿐만 아니라 작은 수술을 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이발소에서는 부러진 뼈나 탈골 등의 치료에서부터 필요할 경우 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이때 긴급한 환자를 위해 눈에 잘 띄도록 세 가지 색을 가진 간판을 내걸었던 것이 현재 이발소에 걸린 삼색원통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 색깔의 의미는 빨간색은 동맥,파란색은 정맥,하얀색은 붕대라고 한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부터 이발사와 외과의가 서로 다른 전문직으로 갈라졌는데 빨강,파랑,흰색은 이발소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병원 상징물은 앙리 뒤낭의 국제적십자 창시 이후 적십자 혹은 녹십자가 쓰이고 있다.

이처럼 어떤 색깔이 어떤 집단이나 무엇을 상징하는 사례는 많다. 빨간색은 위험을 표시하는 소방차 색깔이다. 또한 악귀를 물리치는 색이기도 하여 동지에는 빨간색 팥죽을 집 안팎에 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빨간색은 한때 사회주의의 상징이기도 하여 누구나 빨갱이라면 두려워하기도 했었다.

색깔로 신분이나 특정한 의미를 나타내는 사례 많아

청초의ⓒ국립중앙박물관 사진자료 .

노란색은 안전을 의미하여 어린이 차량 또는 도로의 안전지대는 노란색이다. 공사장의 안전모나 차단막도 노란색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동양의 노란색은 우주의 중심이자 하늘의 색으로 존대를 받은 반면 서양의 노란색은 시기와 질투의 상징으로 범죄자나 성매매여성의 표시였고 저속한 신문은 노랑신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변해서 노란 손수건이라는 노래가 히트를 치고, 정치판에서는 서로 노란색이 자기네들 색이라고 우기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관복의 색으로 신분을 구분하기도 하였으니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일품에서 정삼품까지는 붉은 옷을 입었고, 종삼품에서 육품까지는 푸른 옷을, 그리고 칠·팔·구품은 초록색으로 구분하고 있다. 조선은 중국을 받드는 속국이었기에 왕도 감히 황제를 나타내는 황색 옷을 입지 못하고 붉은 색 옷을 입어야 했던 서러운 시대였다. 일반 백성들은 벼슬아치의 옷과 같은 색의 옷을 입을 수 없었기에 흰옷을 입었는데 단 한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이는 혼례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상한 색깔로 차별을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지하철 승차권이다. 현재 부산 지하철의 1구간 요금은 700원인데 돈을 내고 사는 표는 노란색이다. 그런데 장애인이나 국가유공자,노인 등의 무임승차권은 흰색인 것이다.

장애인에게 지하철 무임승차가 허용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색깔론을 들고 나오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10여년전 처음 장애인 무임승차가 시행되었을 때만 해도 색깔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리프트 하나 없던 시절이라 장애인에게 지하철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했었다. 편의시설이 조금씩 보완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인도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임승차권은 1회용이라 창구에서 받아야 하는데 자동판매기가 늘어나면서 각 역의 창구는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편의시설을 외쳐야 했고, 그 다음에는 창구의 축소로 무임승차권도 한꺼번에 10장 아니면 20장을 요구하기에 정신이 팔렸었다. 지하철 편의시설에 대해서는 법이나 제도가 많이 보완되었으나 자동판매기와 교통카드의 등장으로 무임승차권에 대한 것은 그만 뒷전으로 밀려나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낙인찍히기 싫어서 지하철 표를 사는 사람들

흰색의 무료표와 노란색 유료표 지하철승차권

그런데 얼마전 한 장애인의 하소연을 듣고는 장애인복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는 교통사고로 다리에 장애를 입은 지체 5급인데 장애인등록을 처음 하고는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게 되어 '장애인이 되니까 국가에서 이런 혜택도 주는구나' 싶어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창구에서 공짜로 표를 준다니까 부끄러웠지만 장애인 복지카드를 내밀고 승차권을 받았다. 그런데 그전에 돈을 내고 사던 승차권과는 색깔부터가 다른 게 아닌가. 개찰구에서 하얀색 승차권을 내밀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뒤통수가 간지러웠고 그런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해졌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자 돈 몇 푼에 자존심을 파는 것 같아 이제는 아예 노란 승차권을 돈을 주고 산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그 내담자의 울분에 찬 하소연에 기가 막혔고 교통카드의 등장으로 잊고 있었던 비장애인 필자의 무심함에 더욱 기가 막혔다.

사회복지이론에 낙인론(烙印論 stigma)이란 게 있다. 낙인론이 주장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일탈자로 낙인찍는 사회적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범죄를 저지르고 전과자란 낙인이 찍히면 스스로 범죄자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이게 되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새학기가 되면 담임선생님이 전체 학생들 앞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학비를 면제해 준다. 학비 면제받을 사람 손들어 봐!' 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비 면제를 받고 싶은 학생들은 손을 들지 못했다. 아무도 친구들 앞에서 가난한 아이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잘사는 집 아이들이 당당하게 손을 들어 학비를 면제받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했었다.

장애인이나 노인에게 지하철 요금을 무료로 해주는 것은 사회복지정책이다. 그에 해당되는 자는 당연히 무임승차를 할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돈을 내는 사람과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의 승차권까지 차별을 두어 복지 대상자임을 낙인찍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 승차권을 유료표와 무료표로 구분해야 한다면 그것은 지하철 공단 내부의 문제이다. 표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구분만 하면 될 터인데 그것을 마치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처럼 만천하가 알아보도록 흰색과 노란색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디서 나온 발상일까. 세상이 많이 달라졌고 복지욕구도 다양해져서 눈높이 복지가 요구되고 있다. 지하철 공단은 하루 빨리 승차권의 색깔을 통일하여 복지대상자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낙인감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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