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로그인 | 회원가입
Ablenews로고
서울다누림미니밴
에이블뉴스의 기사를 네이버 모바일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배너: 최첨단 스포츠의족 각종보조기전문제작 서울의지
뉴스로 가기동영상으로 가기포토로 가기지식짱으로 가기블로그로 가기사이트로 가기
[모집] 현재 에이블서포터즈 회원 명단입니다.
기획특집
직업능력개발원 훈련생 수시모집
네이버에서 에이블뉴스를 쉽게 만나보세요
뉴스홈 > 오피니언 > 독자발언대 기사 인쇄기사 이메일 보내기기사목록 기사오류신고
이기사를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RSS 단축URLhttp://abnews.kr/hqN

장애인끼리 결혼한다니 주변 반대 극심

도움 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들 더 많아

서로 부족한 것 채워가면서 열심히 살고 싶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05-20 17:40:46
장애를 갖고 결혼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에이블뉴스 자료사진 에이블포토로 보기 장애를 갖고 결혼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에이블뉴스 자료사진
장애를 갖고 결혼하기란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이나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선 남자나 여성도 마찬가지지만 장애가 제일 큰 문제일 것이고, 다음에는 경제력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장애인들에게는 직업이 없으니까 서로 사랑하지만 양쪽집안에서 반대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혼을 하기위해서는 아무리 장애가 심해도 남자는 장사를 하든 일반회사에 나가든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결혼이란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운이 좋은 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결혼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었습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 자립해야만했었습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저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노력하여 경제력과 장애상태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기야 결혼을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과감히 선택했었습니다. 평생소원이었고, 모든 면에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집사람과 저는 모두 중증뇌성마비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저와 집사람은 결혼하기로 결심했었습니다.

처음 집사람을 알게 된 것은 ‘문자팅’

처음 집사람을 알게 된 동기는 제가 대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있을 때입니다.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의 권유로 휴대폰으로 ‘문자팅’을 시작했었습니다.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웠었고, 저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에 그 당시 집사람과 지속적으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동변상련인 것 같아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장애가 심하다보니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문자만 지속적으로 주고받다가 무작정 집사람을 만나러 경남마산시외버스터미널로 내려가서 만나자 마자 결혼하자고 청혼을 하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양가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결혼 승낙을 받고 서울로 올라왔었습니다. 제가 다행히도 글 쓰는 재주가 있어 멋진 시 한편을 직접 적어주었는데, 그때 인상적이었나봅니다.

하지만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자취를 하였고, 집사람은 경남고성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도 없고 더구나 두 사람모두 장애가 심하였기에 활동범위가 좁았습니다. 지속적으로 글로써 데이트를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제가 같이 살자고 했더니, 집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서울로 올라와버렸습니다. 3일 정도 같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처갓집에서 반대가 심하여 서로가 마음은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일 년 동안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다가 4년 전에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 중이었을 때 갑자기 집사람이 보고 싶어 연락했는데 여전히 둘의 사랑이 식지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저 혼자 결혼 준비를 했었습니다.

집안 반대 무릅쓰고 결혼 강행

집사람도 처갓집에서 단식투쟁하면서까지 저와 결혼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천주교신자여서 결혼 전에 같이 동거하면 큰 죄인데도 불구하고 2개월간 동거하면서 결혼준비를 착실히 하였습니다. 그동안 결혼준비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양쪽집안 가족들에게 서운한 점도 참 많이 있었습니다. 혼수에서부터 신혼여행지까지 저 혼자서 일사천리로 해나갔습니다. 집사람은 지팡이에 의지하면서 조금씩 걷는데 너무 힘겨워 저 혼자 모든 걸 준비해야했었습니다. 저는 불편한 몸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 어디 안 가본데 없이 다 다녀서 혼자 예물과 웨딩드레스까지 스스로 해결해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벌써 결혼식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처갓집에서 신혼살림도 모두 들어온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해 결혼을 못 할지도 모르게 됐습니다. 집사람의 장애가 문제였습니다. 솔직히 저도 당황스럽고 그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저는 처갓집에 확인전화를 드린 것이 문제가 되어 처남들이 결혼을 무효로 하자고까지 말씀하셔서 제가 모든 것을 받아 드릴 테니 결혼식에만 참석해달라고 간곡히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지체장애와 지적장애, 두 가지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큰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자는 뜻이었는데, 처갓집에서 오해해서 문제가 심각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결혼식 날이 왔습니다. 저는 아침에 냉수를 떠놓고 조상님 들게 먼저 큰절을 올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님께 감사의 큰절을 올렸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저를 키우실 때 너무나 많이 고생하셨기에 장애자녀를 둔 모든 부모님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저의 어머님의 은혜는 제가 죽어서도 다 못 갚을 것입니다.

저희들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남들보다 더 행복하게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을 약속드렸습니다. 장모님 장인어른 조촐하지만 양가 일가친척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은 잘 치렀고, 주례신부님의 말씀도 좋았고 제가 미리 글을 써서 낭송했는데 식장이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저희가 알고 지내는 봉사자의 도움으로 자가용을 빌려 타고 꿈에서나 그리던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때마침 봄 가뭄으로 걱정하시던, 모든 사람들에게 봄비도 흡족히 내리고 또 저희들의 앞날의 축복이라도 해주듯이 한없이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저는 지난 2002년 4월 6일 웨딩마치를 올렸습니다.

어떠한 고난에도 서로 사랑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신혼여행도착지는 정동진 바다 차가 밀려 고생은 했지만 멋진 하루였습니다. 둘 다 몸은 불편하여 구경도 못했지만, 철썩대는 흰 파도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결혼식 때 시낭송한 것처럼 어떠한 고난이 밀려와도 참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 했건만, 저희 두 사람 모두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 사람도 몸도 자유롭지가 않았고, 성격차이도 심 했을 뿐더러 모든 면에서 뭔가가 안 맞아 자주 다투기 시작했었고, 결국 제가 장애인 지도자 연수차 일본 삿포로에 갔다 와서 과감히 결정 내렸습니다.

저도 장애가 심했지만, 그 사람 역시 장애가 심하여 도저히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지속하기가 힘들었고,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성적 부부관계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슴은 아프지만, 둘 모두 앞날을 위해 정식 결혼은 아니었지만, 같이 생활한지 5개월 만에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헤어지고, 또 다시 저는 길 잃은 외기러기처럼 혼자 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1인 다 역을 수행하면서 그저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보다는 저보다 더 어려운 장애를 가진 동료들을 위해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1년이란 세월이 지나가고 있을 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와 제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삶이 상처투성이였기에 그 때도 역시 많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양가집에서 반대가 무척 심하였습니다.

새롭게 찾아온 사랑, 그녀에겐 내가 첫사랑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때 저의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아서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금의 제 아내가 다가왔었습니다. 제가 장애인 자조 단체의 대표로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누님 한분께서 자원봉사자를 소개하신다기에 데리고 오라했는데, 그 자원봉사자가 지금의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졸업한 중학교 후배였습니다. 제 아내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그 당시 고입 시험 때문에 학교로 왔다가 저를 유심히 봤는데, 졸업하고 다른 학교로 진학하였고, 집사람은 그 학교에서 졸업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집사람은 늘 말합니다. 12년 만에 찾은 사랑이라고 집사람의 첫 사랑이 바로 저라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장애가 심해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다섯 손가락뿐이지만, 분들을 채워주며, 아껴주고 각자의 허물들을 감싸 앉아 주면서 살아가라는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처음 만난 지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는 그때 중학교 졸업반이었고, 학창시절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집사람은 그때부터 저를 눈 여겨 보아 던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저희 집사람은 그 특수학교로 고입 시험을 치러 왔다가 속된 말로 첫눈에 반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학교에서 졸업하여 다른 상급학교로 진학을 하고 집사람은 그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 하게 되어 저와 집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찾아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12년이 지난 어느 날 저희 장애시민행동이라는 단체에서 총무님으로 일하시던 어느 누나의 소개로 집사람은 저희 단체 사무실로 자원봉사를 하러 왔는데, 그때부터 두 사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편입니다. 사귈 때부터 적극적이어서 프로포즈도 집사람이 했었고, 저와 같이 살고 싶다고 자기 집에서 무작정 나와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집사람이 서둘렀습니다.

부부싸움을 하지만 시련들을 이겨내고 살아

이제 저희 집사람과 저는 결혼한 지 꼭 3년이 아직 새내기 부부입니다. 저희 부부도 결혼 초기부터 수많은 부부들처럼 문제가 많아 부부싸움도 잦고 많은 어려움과 시련들을 하나 둘 극복하면서 살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에게도 잘못이 많았었고, 미숙한 부분이 많았기에 고비 고비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서로의 대해서 알아갈 연애 기간도 짧았고, 장애인끼리 결혼 한다는 것이 당사자들도 문제가 많지만, 그 외의 주의 사람들도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사건건 참견하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밀려와 저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고 괴롭혔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사회생활은 풍부하나 저희 집사람은 집 아님 학교 그리고 화실만 드나들었기 때문에 사회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대인 관계자체가 되지 않아 늘 외톨이로 지낼 기회가 많았습니다. 더구나 장애특성상 집사람은 오직 남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만 위해 달라는 점이 많습니다. 지적장애 2급의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가 도움을 나누어주기에 모든 것을 감싸 앉고 저는 솔직히 집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 어디든 데리고 다립니다.

아무리 제가 잘해주고 집사람을 위해주고 보살펴주어도 늘 집사람은 사랑이 부족하다고 불만입니다. 저는 결혼하기 전부터 연애 경험도 많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너무 좋아했었습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성당의 청년부에서 활동했기에 장애인 친구들보다 비장애인 친구들이나, 여동생들과 남동생들이 더 많아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안 하고 지내온 것이 사실입니다. 같이 어울려 여행도 같이 가고 각자의 관심분야를 얘기하고 친하게 지내다보니 자연히 특별한 감정으로 저를 대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이었는지? 동정심이었는지? 아니면 여자들의 모성애였는지? 아무튼 여러 명의 친구들과 특별한 감정으로 다가왔으나, 스스로가 위축도 될 뿐 아니라 결국 저만 상처받겠다 싶어 제가 먼저 비장애인과 연애결혼은 꿈도 안 꾸고 그저 친구로만 지냈었습니다.

결혼 전 경험의 차이로 인한 문제 이겨내

결혼정년기가 되자 저는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리고 결혼 하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 각종 맞선대회나, 장애인모임에 나가서 당당하게 소개하고 저를 자랑하기 시작했으나, 제가 마음에 들면 상대가 마음에 안 들고 상대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집안에서 반대하여 결혼까지 골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제 자신이 부족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는 저보다 더 낫고 지적으로 조금 부족한 사람을 찾다가 지금의 집사람을 만나게 됐습니다. 저희 부부 역시 결혼하기까지 문제가 많았습니다. 제가 너무 장애가 심하다보니 처갓집에서 조금 반대를 하였으나, 집사람의 고집 덕분으로 결혼까지 골인 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집사람이 눈물이 나도록 고맙고, 제 옆자리에서 묵묵히 저를 사랑해주고 뒤 바라지 해주고 저와 같이 살아주는 것 만하여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어디 가든지 말하곤 합니다. 저희 집사람은 육체적으로 저를 도와주는 천사고 영원한 동반자요 파트너라고 그리고 저는 집사람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하나라도 더 알려주어 먼 훗날 혼자 있어도 충분히 혼자의 힘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알려주고 싶습니다. 솔직히 부부의 문제는 부부만의 안다고들 합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부부들 또한 완벽한 부부가 있겠는가? 그저 각자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의 손, 발이 되어주는 존재가 바로 부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저가 장애가 심하다보니 집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은 집사람이 채워주고 또 집사람이 부족한 부분은 제가 채워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요, 진정한 부부의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가 손발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못해

앞으로도 저희 같은 부부가 많이 탄생하여 진정한 부부의 사랑과 가정의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 저희 부부가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야 장애를 가진 많은 후배들도 희망을 앉고 결혼할 수 있도록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정말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소중한 가정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잃을 뻔도 하고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제 생애 가장 큰 착오와 실수로 초혼에 실패한 것이 아직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는 저이기에 더욱 아내를 사랑하고 아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의 아내가 손과 발이 되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서로 옆에 없으면 안 될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서로가 부족하지만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저는 재혼을 하여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결혼생활과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비록 육신은 못 움직이지만, 오직 정신력으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부끄럽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여! 늘 곁에서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보살펴주어 고맙고, 늘 감사하오! 더욱 사랑하며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오손 도손 웃으며 늘 변치 않은 원앙새처럼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이 간절히 부탁하오!

*사랑도 코치가 필요합니다. 에이블뉴스는 장애인 러브코치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러브스토리를 적어 보내주시면 됩니다.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ablenews@ablenews.co.kr

기고/이동석 기고/이동석블로그 (ablenews@ablenews.co.kr)

기고/이동석의 다른기사 보기 ▶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너: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구독료 1,000원도 큰 힘이 됩니다. 자발적 구독료 내기배너: 에이블서포터즈
이기사를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 RSS
화면을 상위로 이동 기사내용 인쇄기사 이메일 보내기기사목록 기사오류신고
최신기사목록
오피니언 > 독자발언대 슬기로운 장애인 노년기 생활, ‘원격진료가 필요해’ 기고/방귀희 2021-05-10 15:02:29
오피니언 > 독자발언대 ‘난쟁이’도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기고/손홍일 2021-05-07 14:30:53
오피니언 > 독자발언대 발달장애인과 함께 한 17년 세월 기고/최순자 2021-05-07 09:02:20

전국발달장애인합창대회 참가신청 안내

[전체] 가장 많이 본 기사

가장 많이 본 기사 더보기

인기검색어 순위




배너: 에이블뉴스 모바일웹 서비스 오픈


배너: 에이블뉴스 QR코드 서비스 오픈

[독자발언대]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 더보기


댓글이 더 재미있는 기사

댓글이 더 재미있는 기사 더보기

주간 베스트 기사댓글



새로 등록된 포스트

더보기

배너:장애인신문고
배너: 보도자료 섹션 오픈됐습니다.
화면을 상위로 이동
(주)에이블뉴스 / 사업자등록번호:106-86-46690 / 대표자:백종환,이석형 / 신문등록번호:서울아00032 / 등록일자:2005.8.30 / 제호:에이블뉴스(Ablenews)
발행,편집인:백종환 / 발행소:서울시 용산구 한강대로7길 17 서울빌딩1층(우04380) / 발행일자:2002.12.1 / 청소년보호책임자:권중훈
고객센터 Tel:02-792-7785 Fax:02-792-7786 ablenews@ablenews.co.kr
Copyright by Ablenews. All rights reserved.
1층이 있는 삶과 여행 캠페인 문학상미술대전
장애인 재택근무 사원을 상시 모집합니다. 장애인창작아트페어 공모전 장애인용품 노인용품 전문쇼핑몰, 에이블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