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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국가의 경쟁력 되는 사회를 만나다

“엄마, 나 이제는 한국 안 갈래. 호주가 더 좋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1-11 13:51:06
"Not everything that steps out of line, and thus ‘abnormal’, must necessarily be ‘inferior’. (기준을 벗어난, 그리하여 ‘비정상’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항상 ‘열등’할 필요는 없다.)" Hans Asperger (1938)

엄마는 무턱대고 호주의 멜버른을 ‘제 2의 국가’로 찍었다. 교사시절 북유럽의 교육 선진 복지국가들에 대한 찬양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교육 현장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교육 모습을 전하러 장학사, 교장단, 정치인들이 앞다퉈 그 나라들을 탐방한 후 복음을 전파하던 시절이었다.

부러웠다. 학교 현장에서 개별적으로 한국 교육문화와 제도를 바꾸려 고군분투하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엄마는 투쟁하며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변화는 더디고 아들의 성장은 빨랐다. 쑥쑥 자라는 아들 벤을 대안형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초중고등학교 마저도 대안학교에 보낼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한국처럼 일반 학급과 통합학급으로 나뉘는 ‘한 지붕 두 집 살림’의 통합 교육이 아닌, 집 근처에 있는 학교에 보내면 물리적 통합과 교육과정의 통합을 보장 받길 원했다. ‘두 집 살림’, 분리가 기본값이 되면 통합을 하기 위한 노력과 에너지가 따로 필요하고 정부의 제도, 학교 구성원, 교육여건 따라 통합의 원래 취지를 변질시킬 수 있는 허점들이 생기는 일은 너무 쉽다. 결과적으로 당사자나 당사자 부모 스스로가 메꿔야 할 구멍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북유럽 대신 호주로 노선을 바꿨다. 외국에 살아 보니 남에게 천국인 곳도 본인에게는 맞지 않으니 한국이 그리웠다는, 네덜란드에서 몇 년 살다 온 지인의 말을 염두에 두고 고민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국가이면서도 아시아 이민자가 상대적으로 많고, 추위를 싫어하는 엄마의 특성을 고려해 호주로 정했다.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과 민족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사회라면, 발달장애도 개성이나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지기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일민족 국가’를 자부심으로 배우고 의심없이 받아들여 온 엄마에게 호주란 나라는 벤이 지닌 자폐증 만큼이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 이민자들의 국가’ 답게 세상의 모든 인종, 민족, 종교, 문화, 언어가 부딪히며 조화를 이루는 ‘다채로움과 질서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머리 속에서만 상상하던 세상과 멜버른에서 직접 일상으로 겪어내는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같은 언어와 문화와 피부색을 기대한다면, 호주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면 누구 하나 같은 피부색도,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도,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 찾는 일도 하늘의 별 따기 마냥 어려웠다.

공공기관도 마찬가지였다. 메디케어(Medicare,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제도와 유사한 호주 의료제도), 센터링크(Centrelink, 한국의 동사무소 비슷한 복지센터)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가 백그라운드(background, 출신 배경)가 달랐고, 심지어는 의사들도 모두 달랐다. 세상이 또 다시 전복됐다.

‘벤이 발달장애인일지 몰라’ 의심이 들던 순간처럼 엄마의 머리 속에는 또다시 태풍이 몰아쳤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과 당연하던 행동들에 질문을 던지고 점검을 해야 했다. 외출을 할 때마다 긴장이 되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곳에서 편견과 차별인지도 모르고 말하고 행동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상대의 차별과 혐오도 인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루도 제대로 굴러 갈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결국 호주는 구성원 각자가 지닌 고유성과 문화가 국가의 자부심과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벤을 몇 개월 유치원에 보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벤에게 공포와 불안이 덮쳤다. 한국의 어린이집에서는 수다쟁이 였던 아이는 이제 입을 닫아 버렸다. 새로운 환경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와 한국에서 보았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아이들을 보고 겁에 질린 벤은 위축되어 유치원 등원을 거부했다.

“난 호주 싫으니까 다시 한국에 데려다 놔.”

가슴이 무너졌지만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어차피 한 번은 겪어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벤을 믿고 기다리고 불안을 낮춰주려 노력하는 일,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벤이 초등학교에 입학 하고 보니 벤처럼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한 교실에 몇 명씩 있었다. 호주에 사는 비 영어권 이민 가정 아이들의 본격적인 영어 사용은 초등학교 입학과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자 엄마는 마침내 안도할 수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 쓰리랑카, 인도, 프랑스, 브라질,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이란 등 벤의 초등학교에는 이루 다 헤아릴 수도 없는 부모들의 문화와 언어가 공존한다.

한국에서처럼 대부분이 단일한 언어와 문화가 아니다 보니 비교와 경쟁, 선행학습이란 개념도 자연스럽게 희박할 수밖에 없었고, 학교에서는 벤처럼 영어 표현이 서툰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묶어EAL(English Additional Language,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부가적인 도움이 필요한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 을 운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벤은 서서히 마음의 빗장을 낮추고 영어를 넘어서 호주 사회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살았다면 전혀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을 겪으면서도 엄마는 호주란 국가가 고마웠다.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벤이 지닌 ‘자폐적 특성’도 ‘열등’이 아닌 ‘개성’이나 또 하나의 ‘문화’쯤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울 터였다. 학교 생활을 일년쯤 하자 한국말 보다는 영어 사용이 자연스러워지고, 친구들과도 제법 어울리고, 예전의 수다쟁이로 돌아온 벤이 말했다.

“엄마, 나 이제는 한국 안 갈래. 호주가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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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루나 (bom02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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