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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인 없어 방치…죽고 싶은 마음 뿐”
중증장애인 꺼리는 현실, 많은 시간 소용없어 ‘눈물’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2-06 16:02:17
최중증장애인 배성근씨.ⓒ에이블뉴스
▲최중증장애인 배성근씨.ⓒ에이블뉴스
서울 면목동에 살고 있는 배성근(지체1급, 46세)씨는 매일 입에 스틱을 물고 온라인 구인 사이트에 방문한다.

어깨 밑으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성근씨를 도와줄 활동보조인을 도무지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는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찾아 활동보조인을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중증장애인 남성을 케어해줄 사람이 없다”며 그의 부탁을 매번 거절해왔다.

이에 성근씨는 직접 구인 사이트에 글을 올려 인력을 구하고, 직접 면접을 거친다. 이후 센터와의 계약을 통해 정식적으로 바우처를 통해 활동보조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활동보조인’이 무섭다. 170cm, 65kg의 보통 체격인 그의 신변처리부터 체위변경까지 모든 일상생활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런 최중증장애인인 성근씨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면접을 통해 나이가 많은 활동보조인을 채용해도 체위변경 후 체력이 소진돼 금방 두고만다. 성근씨는 인터뷰 하루 전 겨우 활동보조인을 구했지만 언제 그의 곁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항상 갖고 있어야만 한다.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되내이는 성근씨는 지난 2009년 8월 송전전기원으로 일하던 당시, 호프집 난간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낙상사고를 당했다.

사고 이후 전혀 기억이 없던 성근씨가 눈을 뜬건 수술을 앞둔 병원 안. 누구보다 건강했던 그는 인공호흡기가 끼어진 상태였다. 척수 4,5번이 손상된 그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못 움직입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견에 성근씨는 현실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못했다. 사회복지 혜택도 모른 채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되버린 그는 요양병원으로 보내진 것.

죽고만 싶었던 나날들이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그는 스스로 죽을 도리도 없었다. 결국 30개월 만에 죽는 것을 포기하고 자립생활을 택했다. 하지만 자립생활의 길은 가시밭길 같았다는데.

“강원도 철원에 부모님과 함께 있었어요. 70넘으신 부모님들이 저를 케어하지 못했고, 옆에서 지켜보기도 안쓰러워서 자립생활을 택했어요. 2013년도 였을거예요. 서울로 왔지만 최중증장애인인 저는 자립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저를 돌봐줄 활동보조인이 없거든요.”

하루종일 그와 함께하는 컴퓨터, 약봉지.ⓒ에이블뉴스
▲하루종일 그와 함께하는 컴퓨터, 약봉지.ⓒ에이블뉴스
독거와 최중증장애인,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그가 받을 수 있는 활동보조 시간은 월 612시간정도. 20일은 24시간 활동보조가 가능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다 사용하지 못한다.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활동보조인을 구하지 못해 5일간 홀로 집에 방치된 적도 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자립생활을 시작한 그에게는 딱히 도움을 청할 곳에 없었다. 센터, 복지관,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그를 외면했다. 결국 119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했지만 싸늘한 대원들의 태도에 상처만 받았다.

“활동보조인을 구할 수 없어서 주민센터나 복지관에 전화하면 센터 측에 전화해보라고 해요. 센터 측에서는 ‘인력이 없다’고 나와 보지 않고요. 어쩔 수 없이 체위변경 때문에 119를 부르면 응급환자 이송하는 일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체위변경을 하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고, 욕창이 생기고 지속되면 패혈증까지 이어지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응급환자를 책임진다는 119가 그런 지식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났어요.”

머리가 모자란 사람도 아니고, 그저 어깨 밑으로 못 움직인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현실에 성근씨는 또 다시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됐죠?”라며 한시라도 빨리 떠나려는 응급대원, 그저 “예, 예”라며 대답만 하는 활동보조인까지.

어렵게 구한 활동보조인도 떠나갈까 봐 항상 눈치를 보고, 자신의 욕구를 다 말하지 못한다. 어떤 활동보조인은 그와의 다툼 끝 주말 밤에 그를 방치한 채 떠나버리기도 했다. 남에게 부담만 되는 존재, 항상 부탁을 하고 눈치만 봐야 하는 현실이 서러운 성근씨는 눈물을 흘렸다.

“내가 내 존재 가치를 부인하고 싶고, 삶의 의욕도 없어요. 나도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데, 남에게 부담되는 존재고, 항상 부탁을 해야 하고 날 떠날까봐 항상 말조심해야 하고, 너무 슬퍼요. 정말 살고 싶지 않아요. 사지마비라서 죽지 못하고 죽을 수 없으니까 사는 거예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런 그에게 삶의 의욕을 조금씩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장애인권강사’란 직업이다.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인 성근씨는 왕복 5시간을 지하철, 저상버스를 통해 경기DPI 인권교육을 받고 결국 이수했다. 이후 초등학교 인권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선생님 고맙다는 편지도 받고 뿌듯함을 많이 느껴요. 이렇게라도 살아도 되는구나, 어떤 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구나 하면서요. 내가 겪은 불합리한 처우를 다른 장애인들이 다시 겪지 않도록 사례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 현실에 대해서도 1인시위를 준비 중이구요. 제 이런 현실들, 중증장애인들은 많이 공감되겠죠?”

최중증장애인 배성근씨.ⓒ에이블뉴스
▲최중증장애인 배성근씨.ⓒ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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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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