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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포용’ 인가 ‘완전통합’인가?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12-19 14:09:05
김형식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에이블뉴스DB
▲김형식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에이블뉴스DB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하나의 국제협약으로 등장하면서부터 우리에게 친숙해 지고 도전을 주는 '완전통합(Inclusion)‘이 장애계에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동시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본래 배제(exclusion)와 완전 통합(inclusion) 1970년대 프랑스의 정책논의에서 등장하여 1980년대에는 이 개념이 유럽연합에 의해 채택되어 유럽 사회정책의 거대 담론으로서 빈곤과 불평등을 대치하게 되면서 등장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유럽의 복지국가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으나 이제는 많은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채택되며 ‘참여’와 함께 중요한 개념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왜 ‘사회통합’이 중요한가? 그 이유는 ’장애인들은 포용이 아니라 완전통합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전통적으로 장애인은 자선, 시혜, 보호, 관용 복지, 혹은 포용의 대상이었다.

유엔의 권리 협약은 법률과 평등의 원칙을 통해 실제적으로 차별의 장벽을 넘어 장애인들의 의미 있는 참여를 통한 포괄적 사회통합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선 ’포용‘과 ’완전통합‘의 개념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최소한 장애와 연관되어 사용될 때 한국 사회에서 깊게 자리 잡은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의 개념과 완전/포괄적 통합(inclusion)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에 있어서 ’통합‘의 개념은 기껏해야 “同化적 통합 (assimilated integration)이 모두 였다.

예를 들어 최근의 특수 교육을 포함한 장애 논문에서 inclusion에 관한 내용을 우리말로 인용할 경우 종래의 integration도 ‘통합’, inclusion도 ‘통합’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유엔협약과 함께 등장한 ‘완전통합 inclusion’은 우리말이 최근의 이러한 개념상의 변화를 의미 있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유사하다. 과거의 ‘완전 사회통합’이라는 개념은 학술, 정책연구, 경제, 문화, 언어, 종교, 젠더, 연령, 건강과 역량 지정학 등의 영역에 이론적 쟁점을 부각시키며 여러 형태로 해석되고 있음을 밝혀둔다. 과거의 ‘同化적 통합’과 구별하기 위하여 ‘완전통합’이라는 용어가 간혹 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同化 (assimilation)를 위한 노력은 장애인 당사자나 가족에게 부과된 과제이자 부담이었다. ‘장애인 당사자는 최선을 다하여 장애를 수용하고, 비장애인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된다’는 압묵적 부담이 있었다.

다름이나, 차이, 인간의 다양성 등은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경과하여 장애인은 비로소 타인과 사회로부터 나름대로 인정을 받고 지지를 얻어 주류 사회에 적응 내지는 동화하게 된다. 이러한 부담을 부과하는 세력에 저항할 수 없는 장애인과 지역사회와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힘의 관계이며 불평등하고 배제적이다.

따라서 유엔협약이 ‘완전통합’을 하나의 새로운 담론으로 등장시키려는 시도는 인간이 상호간의 ‘다름’이 있으며, 다양성을 강조하는 인권적 접근과 맥을 같이 한다. 반면에, 전통적으로 장애는 인간적 비극이며 의존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상황으로서 소외, 기껏해야 동화적 통합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최근 ‘포용사회’의 담론을 펼쳐가고 있다. 그렇다면 포용사회와 ‘통합 사회’는 상호 부합하지 않는가?

필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포용’은 힘 있는 자가 약자를 관용과 배려의 차원에서 수용하고 용납하는 관용 (tolerance, 또레랑스), 자비를 베푸는 정도라는 것이다. ‘포용사회’는 기껏해야 동화적 통합(assimilation)일뿐이다.

따라서 포용의 대상과 포용을 베푸는 자는 평등한 관계일수 없다. 그러므로 장애계는 ‘완전사회통합 inclusion’이 하나의 이론으로서, 정책적 전략으로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되고, 통합과 배제, 혹은 동화적 통합‘의 관계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필자의 입장은 향후 완전 통합이 장애인 정책연구와 서비스 개발을 위한 지침으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남는 문제는 ’한국과 같은 경쟁적 사회에 ‘완전 통합’이 들어설 자리가 있겠는가? 아니, 아직도 ‘장애’와 ‘비장애’의 편견과 차별이 팽배한 사회 현실에 ‘완전 통합’이 들어설 자리가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글은 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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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형식 (ablenew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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