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지하철, 철도, 항공 등 교통수단을 선택해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 중 하나다. 이를 ‘이동권’이라 한다.

정부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도 이러한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지원하고 있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영국과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도시기반시설과 교통수단에 교통약자의 접근성 보장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유니버설디자인환경부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6일까지 6박 8일 간 영국 런던, 독일의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등 3개 도시를 방문해, 각 도시의 교통약자를 위한 접근성을 살펴보았다.

영국, 장애유형별 교통접근성 내부 지침 마련돼 있어

런던 히드로공항에 설치된 버스탑승권 자동발매기. 휠체어 사용자도 이용하능한 높이와 디자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영환

인천을 출발해 12시간의 비행 끝에 영국 런던에 도착한 첫 날, 시외버스를 이용해보기 위해 공항 내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숙소가 위치한 빅토리아(Victoria) 역까지 이동하는 고속버스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도 이용가능한 버스가 운행 중이었다.

버스 티켓 자동발매기도 휠체어 사용자나 시각장애인 등 누구나 이용가능 하도록 설치돼있었다. 버스터미널 방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디자인이 명확하고 단순한 공항의 안내표지는 말 그대로 좋은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이튿날은 트램, 버스를 조사하기 위해 윔블던으로 향했다. 먼저 트램은 별도의 개찰구 없이 승하‧차 시 자율적으로 교통카드(오이스터, Oyster)를 태그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트램 역사 내에서 눈에 띈 것은 주요 지점에 음성안내시스템인 헬프포인트(Help point)를 설치해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트램 이용을 돕고 있었다. 재난 대피 시에는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음향, 시각적 알림 기능을 통해 트램 출입문이 열고 닫히는 동작을 쉽게 인지할 수 있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볼 수 없다.

영국 지하철의 휠체어사용자 등 교통약자 이용 좌석. ⓒ이영환

영국 지하철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좌석이 누구나 이용가능한 좌석과 같은 구간에 설치돼있다. 또 접이식으로 돼있어 장애인 등이 이용하지 않을 때에는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비상시 이용할 수 있는 비상벨과 손잡이 등도 휠체어 사용자 좌석에 설치돼있다.

영국의 대중교통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2층 버스도 이용해보았다. 런던 동부에 위치한 캐나다 워터(Canada water)역은 우리나라의 ‘여의도 환승센터’와 같이 여러 지역에서 버스가 집결하는 정류장이다. 영국은 버스정류장을 하나의 인터체인지 형태로 운영해 한곳에서 양방향 버스를 모두 탈 수 있게 돼있다.

초행에는 다소 낯선 운영방식이지만 목적지가 명확하다면 지하철에서 한곳으로 이동이 가능해,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시스템이다. 지하철보다 버스에 대한 접근성이 더 높다는 것이 영국의 특징이다.

버스, 지하철, 택시 등 교통수단의 장애인 접근성은 버스가 98%, 철도(지하철)가 78%, 택시가 58%로 우리나라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장애인 등을 고려한 버스정류장 설치 계획(Accessible bus stop design guidance)」을 통해 정류장의 설치위치, 정류장과 버스 간 거리, 버스 정차 위치까지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을 때 우리나라처럼 버스가 정차한 곳까지 이동할 필요 없이,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정차하고 있어 무척 편리했다. 영국은 운행 중인 버스의 98%가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저상형 버스이기도 하다.

영국의 교통수단 관련 정책방향과 세부지침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정부 기관인 영국 DPTAC(Disabled Persons Transport Advisory Committee)를 방문했다. 영국은 신체 장애인 뿐 아니라 발달장애인, 치매성 노인 등 다양한 대상에 대한 교통접근성 확보를 위해 내부적인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각 좌석마다 좌석별 행선지와 좌석번호가 점자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이영환

5월 4일 독일로 이동, 이곳에서 고속열차 ICE(Intercity express)를 비롯한 철도, 지하철 등을 경험했다.

먼저 뮌헨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4시간의 여정을 함께한 ICE는 우리나라의 KTX처럼 독일의 각 지역은 물론, 독일·스위스·네덜란드 등 유럽 내 다른 국가를 운행하는 열차이다.

열차 내에는 비장애인은 물론 장애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나 이동통로, 좌석 등에 여러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독일도 아직 많은 역사가 저상홈(열차와 승강장 간의 단차가 있는 구조)으로 되어 있어 단계적으로 고상홈(열차와 승강장사이의 단차를 없앤 구조)으로 변경 중이다. 열차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개선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시급한 부분이다.

독일 시내를 이동할 때 가까운 거리는 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트램 종류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승강장에서 트램까지 단차가 2~5cm미만으로 휠체어 사용자가 비교적 무리 없이 접근이 가능하며 정류장에는 시각장애인이 트램 출입구 전면으로 이동할 수 있게 돕는 점자블록도 설치되어 있다.

승강장에서 트램 간 단차가 적어 휠체어 사용자도 탑승이 가능하다. ⓒ이영환

독일 지하철에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좌석 구간이 출입구와 가깝게 위치해 있다. 비상벨 및 음성안내장치도 휠체어 이용자의 접근성을 고려해 낮게 설치됐다.

주로 독일에서는 지하철과 트램을 이용했지만 공항이나 주요 교통수단과의 연계를 위해서는 버스 이용도 필수적이다. 특히 독일에서 스위스 등 국외로 이동하는 버스 중에는 휠체어 사용자의 이용이 가능한 것도 있다.

또 버스 안에 휠체어 사용자 및 유모차 사용자를 위한 별도의 공간(좌석)이 있어서 몸이 불편하거나 서서 이용하는 승객을 위한 별도의 편의제공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 출장결과를 기반으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은 교통수단의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지표별 매뉴얼을 개발할 예정이다.

‘배려’의 관점에서 마련된 편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편리한 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들 누구나 이용하고 싶은 교통수단을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교통접근성이 점차 개선돼 나가야 할 것이다.

※ 이글은 이글은 한국장애인개발원 유니버설디자인환경부 BF인증팀 이영환 과장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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