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진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 수렴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는 법무법인 '하민' 박종운 변호사. ⓒ에이블뉴스

지난 2003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그리고 제3그룹 등 장애인단체가 총 결집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연대(이하 연대)가 출범했다.

연대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을 시작한 지 4년 후인 2007년 3월 6일 출석 국회의원 197명 중 196명의 찬성으로 역사적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시행되면서 고용·교육, 재화·용역 공급 및 이용, 서비스 이용, 사법·행정 절차, 참정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장애인 차별이 해소됐으나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보건복지부 등은 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 수렴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하민' 박종운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전면 개정의 필요성을 밝히고, 일부 조항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조문 속 장애인 정의 '의료적 관점' 여전=장애인차별금지법은 1장 총칙, 2장 차별금지, 3장 장애여성 및 장애아동, 4장 장애인차별시정기구 및 권리구제 등, 5장 손해배상, 입증책임 등, 6장 벌칙 순서로 총 6개장, 50개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문제의 소지가 있어 법률 개정의 필요성이 있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대부분이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조는 장애를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정의는 장애를 손상중심적이고 의료적인 모델로 다루는 것으로 장애인의 사회생활 제약을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는 비판의 여론이 있다.

제8조의 경우 국가 및 지자체는 장애인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법이 규정한 차별시정에 대해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하고 장애인 등에게 정당한 편의가 제공될 수 있도록 기술적·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담당할 기관이 없어 실효적인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즉 제1조 장애의 정의를 의료적 관점이 아닌 인권적, 사회정치적으로 바꾸고 국가 및 지자체가 산하에 장애인차별 담당관을 둬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제8조를 개정해야한다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고용·교육·모부성권 조항 대상과 의미 '불명확'=제10조는 사용자가 모집·채용, 임금 및 복리후생, 교육·배치·승진·전보, 정년·퇴직·해고에 있어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11조는 장애인이 해당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한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1조는 '재활, 기능평가, 치료 등을 위한 근무시간의 변경 또는 조정'외에 장애인에 대한 정책과 같은 비물리적 편의에 대해 규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제21조 2항은 '공공기관 등'은 자신이 주최 또는 주관하는 행사에서 장애인의 참여·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한국수어 통역사·문자통역사·음성통역자·보청기기 등 필요한 지원을 해야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한 지원은 즉시 혹은 지체없이 제공되는 것이 유의미한 상황이 대부분임에도 7일(동조 제3항)이내에 제공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지원제공을 회피하거나 지연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조문은 필요한 지원을 하는 대상을 '공공기관 등'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공기관 등'에 무엇이 포함돼 있는지는 언급이 없다.

제28조 4항의 경우 국가·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기관 등은 장애인의 피임·임신·출산·양육에서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관계 법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장애유형·정도에 적합한 정보·활동보조 서비스 등의 제공 등 필요한 지원책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지만 정작 국가나 지자체는 지원책을 마련할 의무주체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박 변호사는 "제21조 2항은 장애인이 정보통신과 의사소통과 관련된 정당한 편의를 요청하는 경우 7일 이내가 아닌 지체없이로 법을 개정하고 제 28조 4상은 적합한 정보·활동보조 서비스 등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의무주체로 국가 및 지자체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임신·출산·양육 주체 여성장애인 '명시' 개정필요=장애인차별금지법 제33조 제2항은 누구든지 장애여성의 임신·출산·양육·가사 등에서 장애를 이유로 역할을 강제 또는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으며 동조 제3항은 장애여성 근로자를 불리하게 대우하지 않고 직장보육서비스 이용 등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임신·출산·양육 등은 모든 장애인의 문제이나 이에 대한 내용이 장애여성 조항에 규정돼 있어 이 문제가 마치 장애여성만의 문제인 것처럼 여겨지게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37조는 누구든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정 정서나 인지적 장애 특성을 부당하게 이용해 불이익을 줘서는 안되고 국가와 지자체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 홍보 등 필요한 법적·정책적 조치를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 법이 정신적 장애인에 대해 별도로 규정하는 것은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차별상황을 반영한 것이나 정작 법 안에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제43조의 경우 법무부장관은 인권위로부터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피해의 정도가 심각해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피해자의 신청에 의해 또는 직권으로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무부의 시정명령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보니 필요한 때에 법무부가 시정명령을 발하는데 소극적이고 적절한 시정명령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제49조는 법이 금지한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법원이 차별을 한 자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를 행하고 행위가 악의적이더라도 차별의 고의성·지속성, 피해자에 대한 보복성 차별 피해의 내용·규모를 전부 고려해 처벌여부를 판단하고 있어 처벌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

박 변호사는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면서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 경계가 무너지고 특정 성역할을 강조하는 것 또한 성평등에 반한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법 제33조 제2항의 내용은 모부성권을 규정한 제28조에서 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제43조에 따라 법무부장관은 시정명령을 할 수 있지만 요건이 업격하다"면서 "시정령명 요건 중 '그 피해의 정도가 심각하고 공익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사진 왼쪽)과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김수민 사무관(사진 오른쪽)이 발언을 하고 있다.

■법 개정안 '일부' 동의, 다양한 의견 피력=토론자들은 발제자의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방안 일부에 동의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법 운영을 위한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속 장애의 정의는 장애인복지법의 개념에 살짝 양념을 친 정도로 밖에 안보인다. (의료적 관점은)장애계의 패러다임과 국제사회가 주장하는 것과 반한다"면서 "의료적인 판단보다는 인권적 측면으로 정의가 바뀔 수 있도록 여러가지 연구와 작업들이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6장 벌칙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들어가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구제를 원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피해보상과 차별행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정말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김수민 사무관은 "발제자는 법무부의 시정명령과 관련 요건이 너무 엄격해 필요한 때 법무부가 명령을 발하는 데 소극적이고 적절한 시정명령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보완할 필요가 있고 했다. 요건이 엄격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면서도 "현장에서의 (법무부)시정명령 건수가 적은 이유는 (인권위)권고건수 자체가 많지 않은 점에서 기인할 수 있음을 염두해야 한다"고 밝혔다.

4일 진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 수렴 토론회' 전경.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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