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파킨슨병에 걸려 수척해진 모습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평생의 우상이자 굴레였던 아버지의 영정에 노년의 자식은 가눌 수 없는 손으로도 끝까지 꽃을 바치려 했다.

파킨스씨병에 시달리면서 몰라볼 정도로 초췌하게 변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대면 장면이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최경환 비서관은 19일 브리핑을 통해 홍일씨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장면을 설명했다.

전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혈압이 떨어지고 사실상 임종 직전 상황에 까지 이르자 당시 병실을 지키던 홍일 씨는 느리지만 또렷하게 '아버지'라고 외쳤다고 함께 있던 가족들이 전했다.

홍일씨는 파킨슨씨병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로 지금까지 말한마디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킨스씨병은 뇌의 흑질부에 도파민이란 뇌신경 전달 물질을 생성하는 세포가 파괴되어 일어나는 질병으로 손이나 몸의 일부가 떨리거나 동작이 느려지고 몸이 굳어지는 증상과 함께 표정이 없어지고 극심한 언어장애와 치매증상이 동반된다.

최 비서관은 "김 씨가 지난 1980년 5.17 내란 음모사건으로 중앙정보부 조사기관에 끌려가 극심한 고문 끝에 신경계통을 다쳐 파킨스씨병이 발발했다"고 설명했다.

홍일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잠을 3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 계속 악몽을 꾸곤 했지만 조금 나아진 것 같다"고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다.

후유증에 얼마나 시달렸던지 그 두툼하던 얼굴이 몰라보게 훌쭉해졌다.

◈존경하는 하지만 평생의 굴레였던 아버지

홍일 씨에게 DJ는 범접할 수 없는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아버지로 인해 당해야 했던 심신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민주투사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두 차례에 걸친 모진 고문으로 평생 불편한 몸을 감수해야 했고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낙인 덕분에 정치인생 또한 순탄치 못했다.

지난 1995년 전남 목포신안갑에 출마해 15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3선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의 행동은 정치인 김홍일이 아닌 'DJ의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대선에 당선되자 김 씨는 "김현철 씨와 모든 것을 반대로 해야 되기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황태자로 불렸지만 YS 정권의 몰락을 불러왔던 현철 씨를 언급한 점에서 그의 심적인 부담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평생 아들에 대한 부채의식에 시달린 DJ

김홍일 전 의원의 과거 모습과 현재 모습.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이런 장남의 고통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했고 장남에 대한 부채의식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문 후유증으로 언변조차 어눌해진 장남 홍일의 국회의원 출마는 언제나 DJ정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몇몇 측근들은 기회가 날 때마다 김 전 대통령에게 아들들에 대한 주의와 근신을 조심스럽게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그럴 때마다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해준 것도 없고, 홍일이는 나 때문에 고문을 당해 장애까지 얻었소. 그런데 아비가 되어서 아들이 국회의원 정도 하는 것마저 막을 수 있겠는가"라며 단호히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DJ의 아들들에 대한 부채의식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김홍일은 3선 의원에 당선됐지만 나라종금로비 사건에 연루, 집행유예 3년의 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고 형제들 모두 줄줄이 비리의혹에 연루되면서 DJ 정권 또한 YS 정권 말기를 뒤쫓게 됐다.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 꽃을 바치려 안간힘을 쓰던 아들

김홍일 전 의원이 휠체어에 앉아 문상객을 맞는 모습.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김 전 대통령의 홍일 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그 누구보다 이희호 여사가 잘 알고 있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위급해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홍일 씨가 두번에 걸쳐 찾아오자 "홍일이도 건강이 좋아져서 이렇게 병원까지 왔어요. 너무 좋은소식이 많아요. 빨리 일어나세요"라며 남편을 격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의 사망이 확인되고 빈소가 차려지자 이젠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하게 된 아들은 아버지의 영정에 꽃 한송이를 바치려 했다.

하지만 병마에 망가질대로 망가진 아들에게는 손에 들려진 꽃 한송이의 무게가 그렇게도 무거웠을까. 떨리는 손으로 영정에 제대로 헌화를 하지 못해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최경환 비서관은 "홍일 씨가 김 전 대통령의 37일 투병기간 동안 세 번 방문했는데 비록 몸은 안좋지만 사람들을 보면 웃고 의식은 똑바른 것 같았다"며 쾌유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사진=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CBS정치부 김중호 기자 gabobo@cbs.co.kr / 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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