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필 균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얼마전 국내 유수 보험회사 CEO의 장애인채용을 확대하겠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홍보성 발언으로 넘겨버렸겠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니 장애인고용의 경제적 효과를 기초로 한 일종의 마케팅 전략으로 보여졌다. 단순히 시혜적 복지마인드의 부산물이 아니었다.

이 기업은 보험직종에서 장애인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면 예상치 못한 실적을 기대함과 동시에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통해 보험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복안도 담겨져 있었다. 자칫 사회복지(임상)학자들에게 장애인을 이용한 상술이라고 지적 받을 수도 있겠지만 노동시장에서 장애인고용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혜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상담, 계약심사, 보험금 지급심사, IT 등 기업에 필요한 업무에 능력과 경쟁력이 있는 장애인을 고용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 것이야말로 장애인고용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한 기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보험업에 종사하는 장애인 직원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또 다른 사례 하나. 이번엔 중소기업이다. 장애인고용의 여지가 조금만 있어 보이면 때와 장소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찾아다니는 가운데 얼마전 전 직원 중 60%를 장애인으로 고용해 100만불 수출을 달성한 대구지역의 한 면장갑 제조업체를 방문하게 됐다.

하루종일 해봐야 손 모형에 장갑 끼우기가 고작 10개에 불과하던 장애인 근로자를 하루 300개까지 만들 수 있도록 한 회사였다. 근로자의 대부분이 정신지체장애인이었다. 그러나 반복작업으로 얻어낸 이들의 생산성은 매우 높았으며 장애와 상관없이 수출의 일등공신으로, 산업역군으로서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장애인고용이 복지 완성의 최종목표란 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사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지체인 장애인이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청주의 ‘초정병원’,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유명해진 정신지체 장애인 카페 ‘소울’과 부천혜림원의 ‘제빵사 이야기’ 이 모두가 장애인고용의 오늘을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노동시장(勞動市場)이니 고용(雇傭)이니 하는 용어와는 평생을 두고 관련이 없을 것 같았던 장애인들이 근로자(勤勞者)로서 우뚝 서고 있는 모습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놀랄만한 속도로 장애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장애인 고용정책도 숨가쁘게 변화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

장애인고용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까지 바라보았던 시혜·복지적 시각에서 노동시장의 한 ‘인력군’으로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으로의 변화이다.

이제 분명한 것은 장애인고용이 복지적 요소에 국한된 시혜적 복지정책이 결코 아니라 전 사회적인 관심이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의 장애인정책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는 사실이다. 또한 장애인이 이제는 더 이상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할만한 사회적 인적자원이라는 사실이 점차 확인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장애인고용의 성과를 논한다면 바로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으며 앞으로 우리사회 장애인 정책과 고용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하는 지는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때를 같이해 우리공단은 2003년이 ‘제2차 장애인고용촉진 5개년 계획’을 새롭게 추진하는 첫 해인 점을 감안, 장애인고용의 질적 향상을 위해 ‘5대 목표’를 정해 장애인고용 중흥의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

특히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 왔던 장애인 고급인력에 대한 적극적인 취업지원을 위해 고용의무사업체(300인 이상사업체)를 대상으로 ‘특별 프로젝트’를 통해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며, 공공기관·공무원 분야에 많은 장애인을 진입시킬 수 있는 방안도 고심중이다. 아울러 점차 중증화되고 있는 구직장애인을 위해 중증장애인 고용기반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에 대한 성과는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 우리사회가 어떤 관심을 가져주느냐, 정부가 어떻게 노력하는가, 기업이 얼마만큼 함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생각한다. 결코 한쪽에서만 혼신을 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나몰라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장애인고용은 장애계, 복지계, 시민사회단체만의 몫이 아니라 재계와 노동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사회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할 사회적 관심사이다.

마침 참여정부는 분배의 정의를 시혜(施惠)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이루어야한다고 천명했다. 그렇다면 정책의 방향은 명확한 것이다. 장애인고용이 시혜적 복지가 될 수 없으며 곧바로 노동시장의 고용정책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 4월20일 제23회 장애인의 날. 장애인고용정책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방향의 장애인고용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공단의 입장에서, 올해 장애인의 날이 매우 뜻깊게 여겨진다.

기업은 더 이상 장애라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주고 아울러 기업 내에서 ‘장애인 친구 갖기 운동’ 등을 통해 장애인 근로자가 자신의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이와 더불어 노동계의 장애인의 날에 대한 관심과 장애인고용에 대한 적극적인 동참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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