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문을 만나게 된다. 집에는 현관문이나 대문이 있고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문도 있다. 기차나 버스나 비행기 등에는 개찰구가 있고 모든 건물에는 출입구가 있다.

출입구(doorway, 出入口)는 건물 혹은 어느 영역 등에 출입하기 위한 장소, 혹은 그곳에 설치된 문을 말한다. 그러나 어떤 문이든지 장애인에게는 만만치 않다. 그래서 장애인도 문 즉 출입구를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있고 나아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있다.

서울이나 부산 등 도시에 있는 지하철 요금은 장애인의 경우 무료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지하철 요금은 무료지만 지하철 무료 요금이 시행될 1993년 당시만 해도 지하철이 중증장애인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서면역 회전막대 게이트. ⓒ이복남

지하철은 그야말로 땅속으로 다니는 기차인데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지하까지 높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리고 지하철 출입구는 삼발이 회전막대로 되어 있어 승차권을 넣으면 회전막대가 움직이는데 그 회전막대를 밀고 나가야 했다. 장애인에게는 무임승차권이 주어졌지만 경증 장애인이 아니고서는 그 회전막대를 밀고 나가기가 만만치 않았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는 통과하기조차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인 지하철 무임이 ‘그림의 떡’이라는 반발이 거세어지자, 지하철에서는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단체 등에서 ‘리프트는 안 된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했으나 지하철 측의 답변인즉, 법에서 정한 ‘휠체어리프트. 경사로,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중 택1’을 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렀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휠체어리프트로 지하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휠체어리프트로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출입문이 있어야 되므로 승차권을 갖다 대고 문을 밀기만 하면 양쪽으로 열리는 와이드게이트가 설치되었다.

추락 사고로 휠체어리프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에이블뉴스DB

그러다가 2000년 무렵부터 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휠체어리프트는 수동휠체어용이었는데,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를 사용하는 장애인들도 지하철의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지하철 휠체어리프트가 여기저기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지하철 운영사 측에서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하철에는 와이드게이트와는 별도로 여전히 돌아가는 회전막대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물론 회전막대 개찰구는 비장애인용이지만 회전막대 개찰구는 경증장애인도 이용할 수가 있고 어르신들도 이용할 수가 있는데 지하철을 출입할 때마다 회전막대를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특히 부산역 지하철의 경우에는 다른 지방이나 외국인 관광객도 많아서 캐리어를 끌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럴 때면 캐리어를 먼저 회전막대 밑으로 밀어 놓고 그다음에 승차권을 대고 사람이 회전막대를 밀고 나가야 된다. 아기를 데리고 오는 사람이나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에게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부산역 와이드게이트. ⓒ이복남

모두가 승차권은 오른쪽에 대고 나가야 된다. 그동안 지하철 승차권은 그 방식이 여러 번 바뀌어서 요즘은 신용카드도 가능하다.

장애인이나 65세 어르신들은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은 교통카드를 사용하지만, 신용카드나 교통카드나 오른쪽 입구에 카드를 대면 회전막대가 움직인다. 어쩌다 한 번씩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외지에서 온 장애인은 자판기에다 장애인복지카드를 넣고 무임승차권을 구입해야 하지만.

간혹 장애인은 무료라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이 장애인용 교통카드를 사용하다가 적발되는 경우, 억울하다며 필자에게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무임승차로 적발되면 요금의 30배를 물어야 된다.

얼마 전 부산역 지하철에 회전막대가 없는 개찰구 8대가 설치되었다. 회전막대 대신 적외선 센서가 설치된 개찰구라고 하는데 슬림형 플랩게이트라고 한다.

지하철 개찰구의 회전막대는 무임승차를 걸러내는 시대상황이겠지만, 왜 처음부터 여러 사람에게 불편한 회전막대를 설치했다가 이제야 바꾸려는 것일까.

부산역에서 서면방향 슬림형 플랩게이트. ⓒ이복남

요즘은 회전막대 출입구에는 무료승차권이면 하얀 불이 들어오고 일반 승차권이면 초록 불이 들어온다. 회전막대가 없는 출입구는 적외선 센서로 감지된다는데 3개의 출입구 중에서 하나는 입구는 안 되고 출구만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출구로 잘못 들어갔다가는 ‘삐익’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봤다. 필자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무임승차도 ‘삐익’ 소리가 나지 싶다.

그러자 어느 유머 게시판에는 새로 설치된 적외선 출입구로 무임승차를 했다가는 광선검처럼 적외선 칼날이 몸을 자를 거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

부산역 지하철에 슬림형 플랩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부산교통공사로 문의를 했다. 이름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슬림형 플랩게이트는 왜 설치하게 되었으며, 부산 지하철에는 어디 어디 설치를 했는지 문의했다.

부산교통공사 담당자도 부산역에는 캐리어를 끌고 오는 관광객이 많은데 회전막대 게이트가 불편하므로 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제 부산역에는 슬림형 플랩게이트가 설치되었으므로 관광객들이 지하철 개찰구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부산역에서 자갈치방향 슬림형 플랩게이트. ⓒ이복남

전화를 하면서 죄송한 얘기지만 필자가 웃었다. 왜냐하면 관광객이 캐리어를 끌고 슬림형 플랩게이트를 편리하게 드나들 수는 있겠지만 그 게이트를 나와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 데는 여전히 계단이기 때문이다.

부산교통공사 담당자는 “캐리어를 손으로 들 수 있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고 나름대로 항변했다. 물론 부산역 지하철에도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와이드게이트가 있다.

부산역을 지나는 부산 지하철 1호선은 노포에서 다대포해수욕장을 오가는데 와이드게이트는 부산역 지하철에서 다대포 가는 방향으로 앞쪽에 있고, 이번에 새로 설치된 슬림형 플랩게이트는 뒤쪽에 있어서 캐리어를 끌고 오는 관광객이나 장애인이 편리하게 플랩게이트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지하철을 설계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설치했겠지만, 부산역 지하철의 엘리베이터나 와이드게이트를 부산역에서 가까운 쪽이 아니라 왜 먼 쪽에다 설치했는지 유감이다.

사상역 와이드게이트. ⓒ이복남

그러나 슬림형 플랩게이트를 새로 설치하는 데는 예산이 필요하므로 현재 부산역에는 각 4개씩 양방향으로 8개를 설치했는데 앞으로는 점차 다른 역에도 늘려나갈 예정이란다.

그리고 슬림형 필립게이트가 외국에서 온 것인지 왜 이렇게 어려운 이름인지에 대해서는 국산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게 사용하므로 건의는 해 보겠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와이드게이트를 이용하는데, 어르신들이 삼발이 회전막대 게이트보다는 와이드게이트를 애용하는 바람에 항상 사람들이 밀려서 장애인들은 불편하다고 투덜거렸다.

기존의 삼발이 회전막대 게이트는 500mm이고 슬림형 플랩게이트는 600mm라고 한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가 출입하려면 900mm 이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그 폭을 넓힌다면 굳이 와이드게이트를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른 지역에는 슬림형 플랩게이트가 먼저 설치되었다고 하는데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슬림형 플랩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부산에는 그런 플랩게이트는 없다.

브래들리 타임피스 시계가 시각장애인용 시계지만 비장애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아서 유니버설 디자인으로서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슬림형 플랩게이트로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유니버설 디자인이 되겠지만 부산역 지하철의 경우 장애인은 이용이 어려우므로 유니버설 디자인의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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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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