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장애 3급인 A 씨(여·34)는 10년 차 베테랑 웹프로그래머다. 경기가 어렵다, 사상 최악의 실업률이라며 갈수록 민심이 흉흉해지는 요즘, 장애를 가졌음에도 10년 째 한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더욱 당당해 보인다.

A 씨가 회사에서 맡고 있는 일은 홈페이지관리 및 개발업무. 그녀는 언어장애를 가져 처음 만나는 이와 의사소통이 어렵다. 또 손발의 움직임이 불편하다. 사실 A 씨가 가진 장애는 일하기에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닌, 많은 노력이 필요한 정도이다. A 씨는 “장애등급은 뇌성마비 3급을 받았지만 장애정도가 다른 3급보다 심해서 지금 다시 판정 받는 다면 2급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웹프로그래머의 길에 입문하기까지 A 씨에게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학창시절, 몸이 불편한 자신이 어떤 직업을 가지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컴퓨터를 다루는 것처럼 머리 쓰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그래서 대학진학도 사무자동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을 특수학교에서 생활한 A 씨는 대학초반 일반학교와 특수학교의 차이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그동안 장애인들 속에만 있다가 대학에서 일반친구들을 만나게 되니 의사소통이 힘들었거든요. 처음에는 마음처럼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속상해 울기도 많이 했지요.”

그러나 A 씨는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또 도움이 필요하면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그 결과 한 명 두 명 친구들을 얻게 되고 학창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졸업 후 A 씨는 서울 소재 한 복지관에서 웹프로그래머 양성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1년을 준비했다. 양성프로그램은 나라에서 지원해줘 무료로 공부하며 차비 등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A 씨는 독한 마음으로 쉬는 날도 복지관에 가서 연습하며 1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 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를 들어갔으나 처음에는 무보수였다.

“당시에는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못했어요. 일단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 날 아르바이트로 전환해주더라고요. 또 열심히 일하다보니 1년 뒤에는 정직원이 될 수 있었어요”

“입사초기에 한동안 사람들과 밥을 먹지 않았어요. 사람들 앞에서 밥을 먹다가 흘리는 것이 싫고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혼자 몰래 초콜릿을 먹으며 점심을 때우기도 했어요.”

A 씨는 손이 불편해 타자가 느려 상사에게 혼난 적도 많다고 한다. 또 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되기까지 1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전에는 같은 말을 두 번씩 설명해야 하는 불편함을 견뎌야했다.

“장애인이라고 봐주는 것 같은 건 없거든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간이 지나니 한 명씩 동료로 인정해주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10년이 지나 이제는 다들 가족 같아요.”

A 씨는 웹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며 지금부터는 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저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상담공부를 시작하려고 해요. 공부를 마치고나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상관없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도와줄 생각이에요.” 올해 모 사이버대학 상담치료학과에 당당히 편입한 A 씨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도전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장애인으로서 일하면서 많이 힘들고 우울하고 또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려 노력했어요.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에요. 장애가 아무리 심해도 일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장애인생활신문 박지연 기자 / 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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