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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17

가작 ‘이번에 내리실 정류장은 OOO입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1-10 07:56:12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일곱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김성호씨의 ‘이번에 내리실 정류장은 OOO입니다’다.


이번에 내리실 정류장은 OOO입니다
김성호


버스를 타면 창가를 본다. 네모난 좁은 차량에 가득 들어찬 승객들이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그때그때 변하는 바깥 풍경을 보는 재미도 있어서다. 색다른 간판과 거리, 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겨도 걱정은 없다. 이번에 멈추는 정류장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안내음성이 있으니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창밖을 볼 여유가 없는 사람을, 버스 입구 위에 달린 안내전광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나는 한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수습기자 교육을 맡은 어느 날, 수습기자 한 명이 다가와 제가 다루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고 말했다. 시내버스 전면에 부착된 전광판에 대한 것이었다.

말인즉슨, 노후화된 시내버스 대신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와중에 TV가 전광판을 가린 위치에 부착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시내버스는 두 가지 방법으로 다음 설 정류소를 알렸다. 하나가 음성이고 다른 하나는 전광판 자막이었다. 이중 TV가 전광판을 가리게 되면 하차정보는 음성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게 된다.

그게 중요한 일인가 싶었다. 서울시와 버스회사가 어련히 알아서 할 문제이지 않을까. 고작 버스 어디에 TV가 달리는지를 기사로 다뤄야 하는가. 고백하자면 처음 든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수습기자가 애써 가져왔을 아이템이었다. 한 번 알아봐도 나쁘진 않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재 내용을 말하니 수익성 강화를 위해 TV를 달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환승제도와 유가향상으로 재정난에 처한 버스업체들이 TV를 설치해 광고수익을 올리려는 것이었다. 재정건전화를 위해 절실한 방안이기도 했다.

처음은 그저 ‘불편’으로 접근했다. 전광판이 가려 음성안내밖에 받지 못하니 불편이 커진다는 목소리에서 출발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출퇴근 직장인들은 불편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었다. 당장 출근길 버스를 이용하는 직장인들을 섭외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만약에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한 직장인의 말이었다. 머릿속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그렇구나, 누군가에겐 전광판이 모든 것일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이어폰만 빼면 음성안내를 들을 수 있는 이에겐 불편이겠으나, 전광판이 모든 것인 사람에겐 불능이 되는 일이 아닌가. 청각장애인이 그랬다.

취재 방향을 대폭 수정했다. TV설치로 장애인들이 겪는 문제에 집중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한국농아인협회 같은 시민단체 관계자와 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정 설명을 들은 이들은 전광판이 가려지면 청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들이 버스 이용에 큰 장애를 입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수소문해 만난 청각장애인들도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당장 전광판을 가린 버스를 타고 문제를 느꼈다는 이도 있었다. 낯선 곳을 갈 때는 내릴 정류장을 확인하느라 버스 밖 정류소 이름을 읽는 데 온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전광판 때문에 아예 저상버스를 피하고 구형버스를 타는 경우까지 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취재 당시는 저상버스가 한창 확대되는 시점이었다. 스마트폰으로 현 위치를 검색해 불편을 해소하기도 어려웠으므로, 청각장애인의 이동권 침해 문제로 확대될 여지가 충분했다. 2014년 기준 서울에 사는 청각장애인만 4만 명이 넘었다. TV가 전광판을 가린 버스만 1,000대가 훌쩍 넘었다.

저상버스가 무언가. 휠체어를 탄 교통약자들이 대중교통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돈을 더 들여 도입한 수단이었다. 저상버스가 도리어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을 막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충분히 서울시의 전향적 자세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란 판단이 들었다.
서울시에 문의하니 전광판 앞에 설치된 TV에도 다음 정류소 안내 문구가 나와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터뷰한 청각장애인들에게 연락을 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직접 수차례 버스를 타고 확인하니 이유는 명확했다. 광고영상이 상영되는 와중에 다음 정류소를 안내하는 문구가 화면 하단에 잠시 떴다가는 사라지곤 했다. 지속시간은 채 5초가 되지 않았다. 크기도 작고 높이도 낮아 먼 거리에선 잘 식별되지 않았다. 눈에 잘 띄는 곳에 큰 글씨로 적혀 좌석 어디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던 전광판과는 차이가 컸다.

다시 서울시에 연락했다. 2025년까지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기로 결정한 상태였으므로, 시시각각 저상버스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 버스 모두에 전광판을 가리는 TV가 설치될 것이었다. 문제제기 전까지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장애인 단체 등 의견수렴절차도 전무했다.

취재가 진행된 뒤 몇몇 청각장애인이 서울시와 버스운송사업조합 등에 민원을 냈다고 했다. TV가 안내문구를 가리고, 화면에 나오는 안내문구도 너무 빨리 사라져 눈에 띄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취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문제를 인지했으므로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버스를 직접 관리하는 조합과 TV를 관리하는 광고기획사 역시 문제제기가 의미 있다는 데 동의했다.

보도가 나가고 시는 불편해했다. 그간의 취재 경험으로 미루어 불편해해야 변화가 있었으므로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보도 이후 시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 변화가 실제로 이뤄졌는지를 물었다. 시는 거듭 논의를 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미 1,400대에 이르는 저상버스가 전광판 앞에 TV를 달고 있었으므로, 교체 작업에 제법 비용이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계속 귀찮게 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매주 2차례씩 시에 전화를 해 변화가 이뤄졌는지를 물었다. 서울시 대응에 따라 추가보도를 할 예정이라고, 압박 아닌 압박을 하였다. 언론의 역할이 감시이고 언론의 주인이 시민이므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었다.
변화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는 TV 위치를 전면 중앙부에서 운전기사 뒤인 좌측 전면부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조합과 광고기획사도 위치를 옮기는 데 동의했다. 운전기사 뒤쪽이면 아무것도 설치돼 있지 않았으므로 전광판을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이었다.

당장 신규차량은 운전기사 뒤에 TV를 설치해 출고됐다. 이미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차량들도 차고지에서 하루 몇 대씩 위치를 옮겨 달게 됐다. 한 번에 모두 떼기엔 비용부담이 커 장기적으로 교체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광고기획사와 조합 입장에선 예기치 않은 비용부담이므로 충분히 이해가 됐다. 언론의 역할은 확인이었고, 나는 이후로도 몇 달간 교체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첫 보도 이후 5년이 훌쩍 넘은 지금, 서울 시내를 달리는 거의 모든 저상버스 TV는 전광판을 가리지 않고 있다.

서울시 시내버스 TV가 안내전광판을 가린다는 아이템에서 시작된 일련의 취재는 기자를 그만둔 지금까지도 내게 적잖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토록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나는 같은 버스에 탄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오직 전광판에 의지해서 다음 내릴 정류장이 어디인지를 짐작한다는 걸 나는 몰랐다. 전광판 앞에 TV를 달기로 한 사람들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2021년 오늘, 서울엔 3,000대가 훌쩍 넘는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 휠체어가 쉽게 올라설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다음 내릴 정류장이 어디인지를 알아챌 수 있다. 이 모두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버스가 있어야 한다는 집요한 요구가, 청각장애인도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끈질긴 항의가 오늘의 편리와 배려를 만들었다.

"이번에 내리실 정류장은 OOO입니다."하는 안내음성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여전히 그들이 겪고 있을 일상의 작은 필요들을 생각한다.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 작고 소외된 목소리를 지켜내는 건 누군가의 소중한 관심일 것이란 걸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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