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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16

가작 ‘그날이 있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1-09 11:00:00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여섯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여정훈씨의 ‘그날이 있고’다.


그날이 있고
여정훈


2012년 기분 좋은 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 저녁, 나의 엄마의 세상이 무너졌다.

그날,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기둥이었던 나의 엄마에게 뇌출혈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닥쳤다. 생사를 드나드는 고비는 넘겼으나, 그날이 있고 엄마의 인생과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리석게도,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는 장애를 가진다는 것은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도 ‘1초 이영애’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예쁜 얼굴에, 25년째 대기업을 다니는 그야말로 잘나가는 우리 엄마가, 하루아침에 반신 마비 5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급한 수술을 위해 반삭을 하고 사경을 헤매는 엄마의 상태를 처음 응급실에서 마주했을 땐, 아찔한 절벽 끝에 나 홀로 몰려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저, 악몽을 조금 길게 꾸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어리석고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우리 엄마가 장애인임을 인정할 수 없었다. 곁에서 엄마를 간호하고 지켜보며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남몰래 바라고 있었다. 나도 이런데, 우리 엄마 본인은 오죽했을까.

당시에 아빠는 직장을 그만두시고 엄마를 1년 동안 간호하셨다. 딸 셋인 집의 맏딸인 나는 영국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입학을 미루고 집에서 어린 두 여동생을 돌보았다. 그리고 모두의 소망 덕분인지 위대하고 강한 나의 엄마는 일어나기 시작하셨다. 재활 치료를 통해, 더디긴 해도 스스로 서고, 걷고, 운전까지 익히셨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회복이었다. 원래 오른손 잡이셨지만, 마비가 오고 난 후에는 젓가락질부터 글쓰기까지 왼손으로 못 하시는 일이 없을 만큼 자신을 성장시키셨다. 그리고 한참 회복 중이었던 엄마의 강하고 단호한 의지에 따라 나는 영국 대학 입학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나는 한국을 떠나며 확신했다. 사실, 정확히는 엄마의 상태가 호전될수록 남몰래 희망해오고 있었다. 저렇게 회복이 빠른 우리 엄마는 빠른 시일 내로 일상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엄마의 오른쪽 팔, 다리의 감각도 돌아올 것이며 곧 장애인이라는 어색한 꼬리표는 떼어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럼, 우리 가족은 지난 일을 그저 1년 가까이 앓았던 열병쯤으로 추억하고 말 수 있으리라고.

당시, 초등학교도 입학 전이었던 나의 막둥이 동생이 내가 떠나기 전 물었다. "큰언니, 그럼 이제 엄마 금방 괜찮아지는 거지?" 나는 동생에게, 또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이 말했다. "그럼, 엄마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옛날이랑 똑같아질 거야."

그렇게 나는 조금 이기적인 유학을 떠났다. 대학 생활을 즐거웠고, 가끔 듣는 엄마의 소식엔 큰 사건 사고가 없었다. 그날이 있고 2년 만에 엄마와 아빠 두 분 모두 회사에 복직하셨고, 엄마는 아빠가 출장으로 집을 비워도 될 정도로 스스로 생활하는데 익숙해지시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발음은 조금 어눌했지만,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과 비교하면 훨씬 좋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또 한 번 나는 이기적인 최면을 걸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가 가진 장애는 남들이 알고 있는 그 장애와는 달라. 내가 주위에서, 또는 영화에서 보았던 장애인들의 삶과 우리 엄마의 삶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우리 엄마는 내가 한국에 돌아갈 때면 뇌출혈이 온 그날이 있기 전의 모습과 똑같아져 있을 거야.’

철없던 나는 비행기 표값과 과제 등을 핑계로 거의 3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서야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오른쪽 마비로 몸이 불편하고 발음이 많이 어눌한 엄마와 재회하였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절뚝거렸으며, 손톱을 깎거나 김밥을 마는 등 두 손 모두를 필요로 하는 일은 아예 할 수 없는 엄마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한국에 오는 것을 미뤄가면서까지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사실과 직면했다. 엄마가 아무리 노력해도, 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더 이상은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는 멀쩡했던 우리 엄마가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그날이 있기 전의 엄마의 모습을 내가 놓아줄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정말 놀랍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단 한 번도 엄마의 장애가 부끄러웠던 적은 없다. 그저 척하면 척이었던 우리 엄마가 이제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인정하기 까지는, 당시에 꽤 조숙했던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엄마가 오히려 나보다 더 빨리 이 변화를 받아들였다는 점이 너무나 대견하고 또 감사하다. 엄마가 좌절하지 않고,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빨리 받아들인 이유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나와 내 두 동생, 그리고 아빠를 위해서였겠지.

아주 조금이나마 성장한 내가 아래 첨부한 시, ‘그날이 있고’를 쓴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양손 멀쩡한 나보다도 오이무침과 된장찌개를 더 잘 만들고 지금은 놀러 가서 장애인 할인을 조금 즐기기까지 하는 위대하고 강한 나의 엄마를 위하여. 두 번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엄마의 곁을 지켜준 나의 아빠와, 당시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투정 한 번 하지 않고 내가 만든 밥을 맛있게 먹어주었던 나의 두 동생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그날이 있었던 그때의 나 또한 너무나 어렸고 또 미숙했었으니까. 아직 사랑하는 이의 아픈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미숙하고 여린 그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날이 있고


그날이 있고 딱 한 달 후,
한 발자국도 딛지 못하는 엄마를 보고
곧 괜찮아질 거야, 라고.

그날이 있고 반년 후,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듯 걷는 엄마를 보고
곧 달릴 수도 있을 거야, 라고.

그날이 있고 일 년 후,
혼자 운전대를 잡는 엄마를 보고
곧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라고.

그날이 있고 사 년 후,
아직 그대로인 엄마를 보고
그날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구나, 라고.

그날 전의 엄마를 자꾸 바랬던 날 보고
그날 후의 엄마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구나, 하고.

그날이 지나고 오늘,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
지금 그대로도 좋으니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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