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네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임종민씨의 ‘빨간 썰매’다.

빨간 썰매

임종민

손님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자신의 승용차 운전석 문에 등을 기댄 채 서서 술에 취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차가 주차되어 있는 장소에 도착해 그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의 평범하지 않은 외모 때문이었다. 군인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험상궂은 얼굴, 운동선수 같은 다부진 체격, 그리고 반팔 소매 아래 드러난 굵은 팔뚝을 휘감고 있는 현란한 문신은 보고만 있어도 위협적인 인상을 풍겼다. 누가 봐도 조직폭력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대리기사....... 부르셨나요?"

나는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순간 예감이 좋지 않았다. 또 진상한테 걸려버렸구나 싶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냥 배차를 취소해버리고 다른 손님을 받을까? 얼마 전 비슷한 인상의 손님을 만나 호되게 당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언행이 몹시 거칠었던 그 건달 같았던 손님은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내게 온갖 위협과 욕을 퍼부으며 술주정을 부렸더랬다. 그때 느꼈던 모멸감이 얼마나 컸던지 일주일 동안 일을 쉬며 대리운전 일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손님이었다. 그게 불과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또 그런 끔찍한 경험을 다시 겪게 될 소지가 다분해 보이는 손님을 만나게 된 거였고, 그래서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저…, XX동 가시는 손님 맞으신가요? 대리기사입니다."

그제야 남자는 고개를 들어 붉게 충혈된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남자의 얼굴은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 무시무시한 인상과는 달리 매우 깍듯하고 정중했다.

"아, 기사님 오셨군요. 미안합니다. 제가 지금 정신이 좀 없네요. 키 여기 있습니다. 집까지 잘 좀 부탁드립니다, 기사님."

남자는 내게 두 손으로 공손하게 키를 건네주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나는 나를 대하는 그의 신사 같은 태도에 조금 놀라면서도 적잖이 안심이 됐다. 무슨 깡패가 이렇게 예의가 바를까 싶어 의아하기도 했지만, 또다시 일주일 동안 운전대를 잡지 못할 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었다.

"손은 왜 그러십니까? 다치셨어요?"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 때, 남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오른손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네. 어릴 때 손을 다쳐서 장애가 좀 있습니다. 흉터 때문에 외관상 보기가 좋지 않아서 항상 붕대를 감고 다니지요. 운전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리운전을 할 때마다 늘 벌어지는 일이다. 거의 모든 손님들이 붕대를 감고 있는 내 오른손을 바라보며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런 손으로 운전을 할 수 있겠냐는 듯이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해준다. 혹시라도 손님들이 불안해할까 싶어서다.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을 회피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손님들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싸움질 같은 과격한 행동을 하니까. 괜히 부끄럽다고 거짓말을 둘러대는 것보다 그 편이 훨씬 속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

내 대답을 들은 손님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대부분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지만, 가끔은 왜 어쩌다가 장애를 가지게 됐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엔 참 난감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내가 손을 다친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플라스틱 옷걸이를 만드는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 사출기에 오른손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꼬박 1년 동안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지만 손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3급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손님들에게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냥 "운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해줄 뿐이다.

그런데 이 조직폭력배 같은 남자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걸 물었네요. 용서하십쇼."

그의 그 말이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손님을 만나봤지만 이런 식으로 도리어 미안한 반응을 보이는 손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였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쇼."

나는 그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재차 사과했고, 그리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듯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낮은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기사님도 참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지, 저도 잘 압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잘 안다고? 그러니까 남자는 지금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겪는 온갖 불평등과 선입견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수많은 시련과 불편함을 자신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그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단 말인가. 문득 이 남자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손님도 장애가 있으신가요?"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전 아니지만, 제 누님이 장애인입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남자는 넋두리하듯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척추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지금도 키가 140센티미터도 안 돼요. 그 작은 몸으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살았죠."

나는 그제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왜 ‘잘 안다’는 말을 했는지, 그리고 내게 던진 질문에 대해 그가 왜 그렇게 미안한 반응을 보였는지.

"제가 사실 술을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네요. 그 누님 때문에 말입니다. 요즘 몸이 좀 아프거든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쉽게 털고 일어나지를 못하네요. 그래서 속이 상해서, 한잔했습니다."

"저런. 많이 편찮으신가요?"

"옛날부터 몸이 많이 약했어요. 늘 약을 입에 달고 살았죠.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쉽게 이겨내지를 못하네요."

남자는 또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누이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남자의 얼굴은 한없이 우울해 보였다. 남자를 처음 만났던 순간, 그가 왜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자꾸 옛날 생각이 납니다."

그가 느닷없이 썰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우리 고향이 강원도 철원 쪽이에요. 아주 시골 깡촌이죠. 집에서 읍내 학교까지는 걸어서 꼬박 한 시간이 걸려요. 하지만 누나 걸음으로는 거의 서너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아침마다 제가 누나를 등에 업고 학교에 갔어요. 누나 몸이 원체 가벼워서 별로 힘들지도 않았죠. 그런데 문제는 겨울이었어요. 눈이 워낙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겨우내 길이 미끄러운 눈밭이에요. 그러니 겨울에는 업고 가기가 불가능해요. 자칫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를 하는데, 마침 마당 우물가에 있는 빨간 고무대야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거다 싶었어요. 그 고무대야에 누나를 태우고 끌고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당장 송곳으로 고무대야에 구멍을 뚫고 밧줄을 묶었어요. 그런 후에 비료포대를 잘라 고무대야 밑바닥에 단단히 붙였죠. 그랬더니 훌륭한 썰매가 되더군요. 그때부터 겨울엔 그렇게 학교에 갔어요. 누나는 고무대야 안에 앉아 이불을 몸에 꽁꽁 두르고 있고, 나는 밧줄을 허리에 감고 끌고 가고……. 왠지 모르게…… 자꾸 그때 그 생각이 나네요. 누나가 참 좋아했었거든요. 산타클로스가 된 기분이라고, 산타클로스가 타고 다니는 그 빨간 썰매를 탄 기분이라고, 그러면서 환하게 웃곤 했었죠. 그러면 나는 누나 웃는 게 좋아 신이 나서 루돌프처럼 막 뛰고……."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한참을 흐느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썰매를 끌던 그 시절의 어린 소년으로 되돌아간 듯이.

매해 겨울이 되면, 그때 그 남자가 들려주었던 그 가슴 먹먹한 썰매 이야기가 떠오르곤 한다. 지금 그 남매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종종 얼굴을 맞대고 그 빨간 썰매를 추억하며 함박웃음을 짓곤 할까.

부디 그러기를, 부디 그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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