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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⑦

우수상 ‘작은 거인’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27 07:48:34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일곱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장철호씨의 ‘작은 거인’이다.


작은 거인
장철호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평소처럼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는데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 가까이 가서 보니 자전거는 넘어져서 바퀴 한쪽이 돌아가고 있었고, 오토바이 한 대는 반대편 쪽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충돌한 것 같은데 오토바이가 잘못한 건지 운전자는 연신 등을 굽혀 사죄하는 모습이었다. 그 사이로 작고 낯익은 얼굴의 허리가 굽은 아저씨가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실루엣이 선명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만 얼음이 되어버린 듯 굳어버렸다. 못 본 것을 본 것처럼 그대로 숨어 버렸다. 순간의 판단이 그렇게 빨리 내려질 수 있었을까? 갑자기 시간은 정지되어 버리고 어머니의 고달팠던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일을 하시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치셨다고 한다. 그러나 형편이 넉넉지 못해 병원 한번 가보지 못하고 참으면서 지내셨다. 결국 내가 2살 되던 해에 허리에 물이 차고 살과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깊은 병으로까지 진행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 어린 나를 등에 업고 3년을 넘게 병수발을 하셨다. 병원에서는 얼마 사시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들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산으로, 들로, 좋다는 곳은 다 돌아다니시면서 약초와 민간요법으로 정성을 들이셨다. 하늘도 감동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썩어 들어가던 살은 기적같이 새살이 돋고 피부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후유증으로 척추에 장애를 가진 몸이 되셨지만, 다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셨다. 어머니의 힘들게 사셨던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몇 권이나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셨다.

하지만 설익은 아들은 항상 그런 아버지가 불만이었다. 아픈 허리와 힘든 다리 때문에 학교 운동회 때는 한 번도 아버지 손을 잡고 달리지를 못했고, 누구나 같이 할 수 있는 레저나 등산 같은 것들은 당연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유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같이 다니기도 부끄러웠다.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아들은 오토바이에 부딪혀서 쓰러진 아버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불효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엔 왜 그렇게 아버지가 싫었는지, 사춘기 성장통을 심하게 앓고 있었을 거라고 매번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아버지의 까진 무릎에 약을 바르고 계셨고, 변명할 시기를 놓쳐버린 나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용기가 없었다.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옅어져 갈 무렵 낮에 오토바이를 몰았던 사람이 다시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처음 보는 사람이 집까지 찾아와서 무릎까지 꿇을 정도라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고등학생 형이었고 아버지가 가르치시던 제자였다. 그 시절 아버지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학생 신분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안 되었겠지만 사고까지 냈으니 벌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당연히 학생을 꾸짖고 화를 내실 줄로만 알았는데 아버지는 그 학생의 손을 잡고 무릎 꿇은 다리를 손수 풀어주셨다. 그러고는 저녁밥까지 같이 먹여서 좋은 말로 타이르셨다.

"순하고 바른 너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니 어렵게 가지고 다니지 말거라."
아버지의 그 말씀이 나의 뇌리에 항상 자리 잡아 잊히질 않는다. 그 형은 눈물을 흘리면서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버지는 그 형을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해 주셨고 형도 이후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뒤로 10년을 더 교직에 계시다가 퇴직을 하셨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사하는 기쁨에 보람을 가지셨다. 불편한 몸을 가진 자신의 콤플렉스에 당당히 맞서 오히려 남을 돕는 일에 멈춤이 없으셨던 분이셨다. 아버지의 권유로 지역의 한 봉사 활동 장소에서 함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모든 인생철학을 대변하는 장면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불편한 다리와 구부정한 허리를 힘겹게 움직이면서 식판 나르기와 배달 등을 도왔다. 주위에서는 배식 같은 비교적 쉬운 일을 하라고 해도 듣지 않았고, 자기 소신이 누구보다 확고하다. 누가 봐도 힘들게 일을 하고 있으니, 보고 있는 사람이 더 불편해지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하시다가 힘들면 그만두겠지.’하고 쉽게 생각해 버렸다. 사람이 갖는 편견이 그렇게 가벼울 수 있는지를 아버지의 실천을 보고 깨닫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활동 영역은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로 넓어지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회복지 기관에 시간제 근로자로 다니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목욕과 머리를 깎아주는 일까지 하셨다.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보람을 찾으셨다.

어느 날 외부 봉사 활동을 마치고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는데, 한쪽에서 땀으로 흠뻑 젖어 옷을 벗으려고 바둥대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 바로 옆에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이 옷을 벗겨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손사래를 치며 도움을 거부했다.

"아닙니다. 내 옷조차 내가 못 갈아입으면 어떻게 남을 돕습니까?"
그 말을 들으신 아저씨는 무안해하셨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던 또 다른 인간상이 마음 한구석으로 훅 들어와 박혀 버렸다. 불편한 몸을 가진 사람이 불편한 몸을 가진 사람을 돕는다? 자신이 가르치던 수학 공식으로 비유하면 맞지 않는다. 불편함을 품고 있으면 되레 도움을 받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나만 봐도 그렇다. 몸이 아프거나 팔에 깁스를 하고 있으면 내 몸에 대한 불편을 말하곤 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약을 사다 주거나 식판을 대신 들어 준다. 그런 도움을 받고 나서야 내가 보호받고 있구나! 내지는 관심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심하게 된다. 아버지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자기만의 확고한 의지를 세웠을까?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아버지와 그늘 밑에서 땀을 식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궁금했던 그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나의 얼굴을 더 달아오르게 했다.
"나는 몸이 불편하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남들하고 조금 다를 뿐이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만큼 더 가치 있는 것이 있을까? 아버지를 통해 장애에 대한 그릇된 인식 자체를 성찰할 수 있었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잘생기고 키가 큰 사람? 바르고 진실한 사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하지만 나보다 남을 조금 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아버지의 당당한 모습은 훗날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부끄러웠던 아버지에 대한 낡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수레바퀴는 무심하게도 돌아가 버리고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던 날, 슬픔에 젖어 고개만 숙이고 있을 때였다. 안경을 쓴 정장 차림의 한 사람이 아버지 영정 사진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한참을 눈물짓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그 옛날 아버지와 고등학생 형이 마주하고 있던 장면이랑 똑같이 오버랩 되었다. 그때 고등학생 형이 희끗한 머리의 신사가 되어 아버지 장례식에 나타난 것이었다.

"늦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렇게 컸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 형은 변호사가 되어 찾아왔고 너무 늦은 재회에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몸소 보여주셨던 조건 없던 사랑과 관심은 그 형을 인권 변호사라는 철학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시켰고, 부족했던 나를 교사라는 직업으로 이끌어 주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번의 몸소 실천으로 알려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평생을 뒤뚱거리셨지만 어렵게 얻은 제2의 인생을 후회 없이 사셨고, 훌륭한 제자와 못난 후계자를 남기셨다. 가끔 일상이 힘들어지고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 내 몸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버린 끈기와 집념, 남을 사랑하는 방법, 그때마다 아버지가 내게 남겨 주신 소중한 보물들을 꺼내어 본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 조건 없는 사랑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이유이다.

묵묵히 남과 다름을 실천하셨던 자랑스러운 아버지, 그의 이름은 작은 거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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