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6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27편 접수됐다. 이중 최유리씨의 ‘우리 집에 DJ가 산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20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20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세 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임호연 씨의 ‘꽃을 피우는 씨앗처럼’이다.

꽃을 피우는 씨앗처럼

임호연

“삐뽀~ 삐뽀~ 애~앵 애~앵”

제가 초등학생이 되던 바람이 몹시 차가웠던 겨울 어느 날,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중공업 회사에서 중장비 기사를 하시던 아버지는 근무 중 중장비 차량의 오작동으로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10시간이 넘는 긴 수술 끝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침에만 해도 건강하게 두 다리로 집을 나섰던 아버지였는데 이제 평생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아버지는 큰 바퀴가 2개나 달린 자동차를 타고 집에 오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집에 오면 차를 집 밖에 세워두고 들어오는데 아버지는 그 자동차를 집 안 거실까지 타고 오셔서는 그제서야 차에서 내리시는 것이었습니다.

“호연아~ 이게 뭔 줄 알아? 이건 휠체어라는 건데 아빠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타는 거야. 이제부터 아빠는 다리가 많이 아파 걸을 수가 없단다. 그래서 어디 갈 때는 꼭 이 휠체어가 필요하고 앞으로는 휠체어가 아빠 다리 역할을 해줄 거야”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의 생활은 360도 변했습니다. 우선 집 안 곳곳의 모든 것들이 아버지에게는 장애물이 되었고, 대부분의 상황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외출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대문을 지나야 하는데 어린 저도 가뿐히 넘을 수 있는 3cm 대문턱이 아버지에게는 300cm도 훌쩍 넘는 심리적 턱으로 다가왔습니다. 낑낑대며 겨우 대문을 빠져나왔지만 더 큰 산들이 눈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경사로라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턱이 늘 존재하였고 계단은 너무 높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더 작게 만들었습니다. 도로 곳곳에 있는 턱과 계단은 아버지에게 ‘당신은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조금 먼 거리를 가야 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는데 택시 기사님들은 아버지를 외면한 채 그냥 지나가 버렸고, 버스 기사님들은 차에 오르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리는 아버지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 일쑤였습니다.

밖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아버지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공중 화장실에는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특히 아버지처럼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에게 비장애인 화장실은 개미구멍처럼 좁디좁았습니다.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불편하다 보니 아버지는 용변을 참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실수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환경의 제약은 마주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휠체어 탄 장애인은 처음 본다는 듯 신기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를 불쌍하게 바라보았고 또 어떤 이들은 무서운 사냥개를 대하듯 슬금슬금 뒷걸음치기도 하였습니다.

비장애인들은 그냥 통과하는 건물의 입구도 아버지는 왜, 무엇 때문에 왔는지 검열하는 듯한 질문에 대답하며 겨우 통과를 허락받아야 했습니다. 어린 저에게도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함께 다니는 이 세상은 녹록지 않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가슴에 난 생채기는 아물 줄을 몰랐습니다.

‘왜 사람들은 휠체어를 탄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싫어할까? 아빠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왜 사람들은 아빠를 야단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외출하는 게 힘들어지면서 아버지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외출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아버지는 한동안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거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만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저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호연아~ 아빠 좀 도와줄래?”

“뭔데요?”

“아빠가 운전을 다시 해 보려고 하는데 아빠 혼자서는 힘들지만 우리 딸이 도와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네! 아빠! 제가 아빠의 두 다리가 되어 드릴게요.”

아버지는 다리가 되어 준다는 딸의 말이 기특했는지 흐뭇하게 웃으셨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미소에 저 또한 힘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장애인이 운전을 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여러 기관에 문의를 하셨고 운전능력 측정검사 등을 통해 다시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새로운 운전면허를 획득하고 아버지에게 꼭 맞는 개조된 자동차를 알아보기 위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아버지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보며 평범하지만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행복이고 삶의 원동력이 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동력이 생긴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많은 새로운 도전을 하셨습니다. 천성이 긍정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우연히 알게 된 다른 장애인들과 모임도 종종 가지셨습니다. 그분들과 봉사활동 단체도 조직하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봉사활동이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장애인을 돕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저는 오히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을 돕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봉사활동에 대한 가치관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장애인의 봉사활동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한 봉사활동의 모습에 비장애인들이 낯설어 하였으나 아버지의 진심이 담긴 꾸준하고 성실한 모습에 비장애인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에게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물었더랬죠.

“아빠는 다리도 불편한데 다른 사람들 돕는 거 힘들지 않아요?”

“아빠는 하나도 안 힘들어. 오히려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아빠가 사고 나서 수술하고 의식이 돌아왔을 때 우리 호연랑 엄마가 아빠 옆에 있어줘서, 다시 볼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했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거든. 그리고 아빠한테는 건강한 두 팔이 있잖아”

그날 이후 아버지를 통해서 저는 새로운 인생을 배웠습니다. 지금 저는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픈 아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아이, 괴성을 지르는 아이, 자해하는 아이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의 하루는 매일이 긴장과 도전의 연속이지만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은근히 기대하며 설레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몇 년이 지나 우연히 만나게 되어도 반갑다고 제 이름을 불러주며 아는 척하는 아이들이 있기에, 더디고 느리지만 시나브로 성장하는 아이들이기에 이 길이 보람되고 소중합니다. 비장애인들의 모습과 생각이 다 다르듯,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하나하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역량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들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이 되어 제 몫을 하며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씨앗 속의 잠재 가치는 각자 다르지만 모두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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