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째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김성희 씨(왼쪽)와 이경남 씨(오른쪽). ⓒ에이블뉴스

지난 10월 25일 대구광역시 남구의 한 주택에서는 김성희 씨(여, 53세, 정신·지체장애)와 이경남 씨(남, 62세, 정신장애) 커플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맞이해 주었다.

당시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무려 24년간 만남을 이어왔다. 이 시설은 2019년 대구시사회서비스원(현,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이 운영 위탁을 하고 있다.

시설에서 각각 28년, 25년을 살아온 두 사람은 원래 자립의 욕구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시설에서 같이 살던 동료들이 장애인자립주택에서 생활하는 것을 직접 보고 자립에 대한 열망이 생겼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이경남 씨는 “자립에 대해 많이는 들어봤다. 그런데 백 번, 천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사는 걸 보는 게 낫다. 눈이 확 뜨였다”고 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자립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김성희 씨는 “그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고 회상했고, 이경남 씨는 “마찬가지다. 교육을 잘 받고 나가게 되면 둘이 같이 살 수 있다고 하니, 이를 목표로 더 즐겁고 열심히 교육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희망마을에서 나와 남구장애인자립주택에서 1년째 생활하고 있는 김성희, 이경남 씨 커플은 평범한 일상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김성희와 이경남 씨는 대구전환서비스센터 작업장에서 훈련생으로 봉투 제작과 안경 포장 등 일을 하고 있다. 정오에 출근해야 하는 두 사람은 오전 느지막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11시 출근길에 오른다.

오후 4시, 일을 마치면 함께 집에 돌아오면서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산책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두 사람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요리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김성희 씨(왼쪽)와 이경남 씨(오른쪽).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두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결코 한 번에, 쉽게 오지 않았다. 대구 지역의 많은 기관이 연계하며 김성희, 이경남 씨의 탈시설과 자립 준비를 지원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대구광역시지부는 봉투 및 화장품 제작, 원예, 직업현장 견학 등 탈시설 직업준비 프로그램과 직업교육, 자립 동기부여 교육 등을 제공했고, 현재 훈련생으로 일하고 있는 대구전환서비스센터 작업장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돕는 등 두 사람의 직업준비와 훈련을 위해 애썼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은 시설에서 나오기 전에는 돈 계산하기, 전화 걸기, 음식 만들기 등 자립 정보와 기술을 제공했고, 자립주택 입주 후에는 일상생활 능력과 사회능력 등 기능 파악과 더불어 은행·동사무소 업무처리, 대중교통 타기 등 동행지원과 요리학원, 부부상담 등을 지원했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돌봄서비스지원팀 김효영 대리는 “자립주택 입주 후 지금까지 1년간 지역사회와 친해지기 단계의 기초 작업을 진행했다”면서 “앞으로는 영역을 더욱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서비스 연계하거나 점점 서비스를 확장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희·이경남 씨의 자립주택 생활을 지원하는 정순덕 코디네이터는 “두 분은 지금까지 1년 동안 열심히 생활하고, 이웃들과 소통도 잘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이상적”이라며 “특히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둘이서 온전한 자립을 위해 활동지원도 신청하지 않고 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남 씨는 “입주 후 일자리부터 일상생활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겁이 나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익숙해질 때까지만이라도 누군가 옆에서 붙잡아주고 함께 동행해 줘야 한다”고 전했다.

이경남 씨 대구전환서비스센터 작업장에서 안경 포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 ⓒ한국장애인개발원 대구광역시지부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 커플의 고민은 일자리였다. 현재는 작업장에서 훈련생으로 일을 하고 있기에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않고 수입도 낮다는 것.

한국장애인개발원 대구광역시지부 김항구 대리는 “시설 거주 장애인의 성공적인 자립 지원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직업재활과 복지 협력체계 구축이 중요하다”며 “자립을 준비하는 두 분에게도 직업재활서비스 연계를 통한 직업평가, 직업훈련, 취업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사회 내에서 안정적으로 일을 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이경남 씨는 “집을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자립주택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다리가 불편한 김성희 씨를 위해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싶다”며 가감 없는 사랑을 드러냈다.

김효영 대리는 “남구장애인자립주택은 당사자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곳”이라며 “시설에서 오랜 기간 거주한 분들에게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었고, 이곳은 그 분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스스로 연습하는 주택이다. 두 분의 1년간의 생활도 진정한 자립을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두 분의 진정한 자립을 위해 영구임대아파트로 신청을 안내하고, 입주가 결정되면 복지관 등 주변 관계망을 통해 자립을 위한 지원을 제공하다가 조금씩 지원을 줄여 두 분이 완전히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영구임대아파트로 들어갈 수 없을 경우 보증금을 입주자가 부담하고 명의를 전환하는 방법을 통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택의 명의를 김성희 씨와 이경남 씨로 전환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고.

김성희 씨는 “우리 둘이 이렇게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둘이서 행복하게 잘 살아가겠다. 항상 마음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특히 이경남 씨는 사회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설 거주자들에게 “첫 단추를 끼우기 힘든 것처럼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것 또한 굉장히 힘들다”며, “당사자들은 용기를 내줬으면 좋겠고, 당사자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많은 분이 뒤에서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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