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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근속 정신장애인, 오늘도 꿈을 꾼다

[인터뷰]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정해미씨

“정년퇴직이 꿈…정신장애 취업 문 열어달라”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1-23 15:37:08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정신장애인 정해미씨.ⓒ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는 정신장애인 정해미씨.ⓒ에이블뉴스
“안녕하세요.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23일 오전 10시 20분.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날씨에도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앞에는 10여 명의 방문객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굿윌스토어는 시민들로부터 중고물품을 기증받아 판매한 수익으로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10시 30분 문을 여는 이곳에는 따끈따끈한 물품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따끈한 물품을 먼저 구매하려는 방문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서울 송파구에 있는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내부.ⓒ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서울 송파구에 있는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내부.ⓒ에이블뉴스
개장에 맞춰 푸른색의 조끼를 입은 직원들의 손도 분주해졌다. ‘일을 통해 삶을 변화시킵니다.’라고 쓰인 매장 안에는 옷, 잡화, 전자기기, 식품, 각종 생활용품까지 가득하다.

이곳 2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정신장애인 정해미 씨(40세, 여)는 하루 4~50통씩 걸려오는 기증자들의 문의 전화를 소화하고 있다. 기증자로부터 기증품 방문 수거 예약을 잡거나 기증품 내역을 전산에 입력하는 사무보조 업무다.

“5분마다 한 번씩 꾸준히 전화가 와요. 처음에는 느려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요.” 10년째 근속 중인 해미 씨는 이제 베테랑의 여유가 엿보인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총 53명의 장애인 중 해미 씨와 같은 정신장애인은 3~4명이다. 대부분은 발달장애인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해미 씨는 활발한 성격의 동료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아 고민이었지만, 그에 맞추려고 노력하니 이제는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았죠. 담당 사회복지사님들이 상담도 도와주고, 제가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잘 붙들어줬어요. 직원을 끝까지 책임진다 이런 느낌?”

근무 중인 정해미 씨. 기증자로부터 기증품 방문 수거 예약을 잡거나 기증품 내역을 전산에 입력하는 사무보조 업무를 맡고 있다.ⓒ밀알복지재단 에이블포토로 보기 근무 중인 정해미 씨. 기증자로부터 기증품 방문 수거 예약을 잡거나 기증품 내역을 전산에 입력하는 사무보조 업무를 맡고 있다.ⓒ밀알복지재단
이곳에서 근무하기 전까지 해미 씨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2년제 대학에서 식품유통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23세, 갑작스럽게 조현병이 찾아왔다. 3년간은 집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담당 의사의 추천으로 찾은 사회복귀시설에서 규칙적 생활을 배웠다. 이후 장애 사실을 숨기며, 취업에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28세에 장애인 등록을 하고, 가장 먼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방문했다는 해미 씨. 미싱 보조 일을 시작했지만, 체력적으로 버티지 못했다. 다른 일을 구해보려 했지만, 정신장애인을 뽑는 기업은 극히 적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2011년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구인 공고를 발견했다.

“공고에는 따로 장애 유형을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3개월간 훈련생으로 입사 후, 지금까지 근무 중입니다. 당시에는 월 20만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130만원 정도 받고 있습니다. 절반 정도 저축하고, 부모님께도 용돈을 드려요.”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5시 퇴근하는 해미 씨는 오전과 오후 2번, 10분씩 총 30분간 쉬는 시간이 있다. 정신장애 특성상 중간 휴식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회사 측에서 지원해준 근무 환경이다. 일하며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언제든지 상담도 해준다. “직장에서 힘든 점들에 대해 상담을 잘해주고,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얼마든지 비장애인처럼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 화훼장식 수상작을 보여주는 정해미 씨.ⓒ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 화훼장식 수상작을 보여주는 정해미 씨.ⓒ에이블뉴스
해미 씨는 이곳에서 근무하며 사회복지사 2급 자격 취득, 2019년과 올해 각각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화훼장식 부문 은상과 금상 수상, 2020년 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주최 ‘제11회 장애인 직업재활 근로체험 수기 공모전’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앞으로 이곳에서 정년까지 근무한 후, 당사자들을 고용한 플라워카페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특히 해미 씨는 인터뷰 중간중간 정신장애인들의 취업 문을 활짝 열어달라고 몇 번이고 호소했다. 해미 씨가 참여하는 정신장애인 자조모임 동료들의 고민 1순위도 취업 문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발간한 ‘2020년 장애인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9.9%로 15개 장애유형 중 가장 꼴찌며, 전체 장애인 고용률 34.9%에 비해서도 한참 낮은 수준이다.

“취업하자니 잘릴까 봐 그냥 차라리 기초생활수급을 받자는 식이에요. 말로만 정신장애인 취업하지 말고, 기회의 문을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이후에는 오래 근무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 조성이 필요하고요. 병원 가는 시간 배려라든지, 상담 지원 이런 게 필요해요.”

정해미 씨가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정해미 씨가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에이블뉴스
해미 씨는 취업의 꿈을 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도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확실하게 정하고, 꿈을 잃지 말고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정신장애인 취업 모범사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제가 좋은 사례로 자꾸 나오는 것도 사실 가슴 아파요. 더 많은 사람이 취업에 성공해서 다른 사람들도 언론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게 바로 진정한 장애인식 개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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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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