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자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 왔고 친구들도 하나둘 결혼을 하니 그도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는 지인(중매쟁이)의 소개로 A 씨를 만났는데, 부모님과 지인은 강력하게 결혼을 권유했다. “니 몸을 생각해봐라” “아픈 몸을 가지고 혼자서는 못 산다” “니가 결혼해야 이 엄마가 눈을 감는다.” A 씨와의 결혼은 권유를 넘어 협박 같은 것이었지만, 그도 A 씨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A 씨를 만났을 때 A 씨는 저의 장애를 개의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가 쓰인 것인지요.”

A 씨는 첫눈에 그를 맘에 들어 했고, 집안에서도 괜찮은 며느리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몇 번 만나보니 그도 싫지는 않아서 A 씨와 결혼했다.

“그런데 콩깍지가 벗겨지는 데는 몇 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제주도 여행에서 두 딸. ⓒ이복남

1997년 12월에 결혼하여 2002년 월드컵 경기가 마무리될 즈음의 시월의 마지막 날. 그렇게 사연 많고 위태롭던 5년 남짓의 그의 결혼생활도 종지부를 찍었다.

“그동안 두 딸이 생겼고, 둘째 딸이 태어나서 첫돌도 되기 전이었습니다.”

5년이란 결혼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이유 여하를 떠나서 굳이 결혼 파탄의 이유를 찾자면 쌍방과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두 딸을 버리고 장애인인 남편도 버리고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가지고 가버린 그 사람이 원망스럽기는 했지만, 그의 실책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니까.

“이혼 후 가세는 기울고 배신감과 두려움 등 그로 인한 좌절감으로 한 3년 정도 방황을 했습니다.”

그 당시 세무사 사무실에 나가면서 야간대학(2001년)을 다니고 있었다. 실력 향상을 위해 준비하던 야간대학도, 경영지도사(2000년)를 취득하여 새로운 수익 모델을 꿈꾸던 것도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PC방을 전전하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형편없이 나약한 사람이 되어 인생을 낭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신용불량자가 되어,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게 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제야 두 딸과 부모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용불량자, 실직자, 무기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두 딸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차마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번 나를 변화 시켜 보자 싶었습니다. 대학교에 편입을 다시 하고 취직도 하였습니다.”

자전거 라이딩. ⓒ이복남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학력을 바꾸고 싶었다. 둘째는 보다 다양한 지식을 쌓아야겠다. 셋째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자격증을 따야 한다. 넷째는 보다 많은 경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화목한 가정이었다.

“다섯 가지 변화의 목표를 정하고 하나하나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문대학을 나왔지만, 학력은 고졸이니 마찬가지였다. 전문대를 뒷문으로 나왔으니까. 고졸 학력 그리고 전문대 졸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대학교에 다녔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를 취득했다.

그렇게 학력과 경력에 대한 변화를 가지면서 창업대학원 석사와 창업대학원 1기 원우회장, 그리고 졸업 후 동문회장을 거치게 되어 또다시 박사과정을 도전하려는 의지가 생겨 현재는 시기를 가늠하고 있단다.

“외형적인 학력이나 졸업장은 만들 수 있었는데 머리에 지식을 넣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다시 다니며 공부를 해야 하나, 아니면 개인 교습으로 보강해야 하나 많은 생각 끝에 책을 보자 책을 보면 길이 있다던데 그렇게 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부터 읽은 책의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읽은 책이 700여 권인데 그중에 100여 권은 독후감 노트를 만들었다. 그 독후감 노트는 나중에 학교에서 강의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며 덕분에 지금도 매일 책을 읽는 습관이 들었다.

독서 모임에서. ⓒ이복남

당시 읽은 책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어떤 것이 있을까?

“독후감 노트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독일의 계몽주의 작가 뷔일란트의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입니다.”

「당나귀 그림자에 대한 재판」은 당나귀를 빌린 사람은 당나귀만을 빌린 것인가, 그 그림자까지 빌린 것인가를 놓고 다투는 인간군상을 통해 소유와 법, 국가와 사회, 헌법과 신앙의 문제를 냉소적으로 풍자한 철학동화이다.

압데라 시 치과의사는 이웃 마을로 왕진을 하러 가기 위해 당나귀를 빌려 길을 떠난다. 치과의사는 찌는 듯한 무더위 피해 휴식을 취하고자 당나귀 그늘에 주저앉는다. 동행했던 당나귀 주인이 자기는 당나귀만 빌려줬지 당나귀 그림자까지는 빌려주지 않았다며 당나귀 그림자 사용료를 더 내라고 한다. 치과의사는 어이가 없어서 완강히 거부한다. 두 사람의 대립은 점차 확대되어 재판에 부쳐지고 압데라 시민 전체가 당나귀당(당나귀 주인을 지지)과 그림자당(치과의사를 지지)으로 갈라져서 치열한 공방을 펼친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동기로 인해 벌어진 당나귀당과 그림자당의 나뉘어 치열한 공방을 펼치는 권력다움으로 치닫게 되어 압데라 도시국가를 파멸의 문턱까지 끌고 간다. 어느 날 이 문제가 당나귀로 인하여 발생한 것을 자각한 군중은 그 당나귀를 죽이기로 하였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나귀를 애도하기 위한 당나귀 동상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자격증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하여 경영지도사와 창업지도사 그리고 기업가치 평가사를 취득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였습니다.”

이러한 자격은 취득이 목적이 아니라 활용이 그 목적이 되는 것이라서 지속적인 공부를 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아직도 계속 공부 중이란다.

“경력에 대한 변화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먼저 창업대학원을 다니면서 대학교 강의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업, 재무, 회계 등 다양한 시간강사를 거쳐 많은 경험을 만들었으며 정부 기관에 자문 위원과 평가위원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경력을 만들었습니다.

막내 동생과 함께. ⓒ이복남

그동안 그가 거친 경력은 계명대학교, 안동대학교, 영남대학교, 수성대학교, 경북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고, 그 밖에도 각종 창업컨설팅 강의를 했다. 그리고 대구장애인체육회 운영위원과 창업지도사협회 부회장은 지금도 맡고 있다.

“그런데 저의 마지막이자 다섯 번째 변화 목표인 화목한 가정 만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정의 중요한 부분은 화목한 부부와 자녀들일 텐데 아내의 자리와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두 딸의 성장에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상상하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남자인 아빠가 할 수 있는 한계로 인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자문이나 도움을 구하기도 하였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미숙한 아빠가 미숙하게 두 딸을 키웠으며 아직도 이 부분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였다. 다행히 두 딸이 아빠 앞에서 엄마를 찾지는 않았고 엄마의 부재를 이겨낸 것은 참으로 대단하지만, 두 딸에게는 너무 미안했다.

“지금은 두 딸도 다 커서 큰딸이 23살, 작은딸이 21살로 오히려 아빠를 위로하지만 두 딸이 자라는 동안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했겠으며 아빠를 원망했겠습니까.”

우주를 지탱하는 문법은 ‘시간과 공간’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을 시간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순간’이다. 이 순간의 끊임없는 덩어리가 한 시간이며, 한 시간은 하루라는 집을 건축하기 위한 기둥이다. 하루는 한 달과 1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단위이며 순간의 연속이 일생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을 규정하는 장소는 바로 ‘여기’다. 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여기’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기 위한 준비였다. 운명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대부분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결국 우리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실마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대학원 졸업기념. ⓒ이복남

로마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는 ‘운명은 장님’(필자 주 : 격언 표현이라 그대로 인용하였음)이라고 말했다. 로마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는 두 눈을 가린 채 커다란 물레를 돌린다. 포르투나는 세상을 운행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인간들에게 무작위로 부여한다. 어떤 이는 통치자로, 어떤 이는 예술가로, 어떤 이는 시인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일한다. 포르투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오만한 자’라고 불렀다. 오만한 자는 장님이 되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인식할 수 없다. 자신이 자초한 불행의 희생자가 된다.

“Errare humanum est, sed perseverare diabolicum

(에라레 후마눔 에스트 세드 페르세베라레 디아볼리쿰).”

이 문장을 번역하면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오만 때문에) 실수를 계속하는 것은 극악무도하다”가 된다. 세네카는 네로 황제의 어린 시절 개인 교사였다. 네로의 악의적인 성격을 간파해 <자비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 네로의 미래를 예상하듯 이 문구를 남겼단다.

“지금까지 살아 온 저의 일생을 한 줄로 말한다면 그 면면이 다 소중하며 그 소중함이 지금의 저를 만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부분은 전체를 구성하기 위한 한 부분이자 전체다. 그 부분이 부족하거나 생략되면 온전한 전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작비(昨非)와 녹명(鹿鳴)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살아왔지만, 앞으로 살아갈 방향은 작비와 녹명이라는 것이다. 작비는 율곡 이이 선생이 성학집요에서 말씀하신 작비불이(昨非不二)에서 인용하였으며, 행동함에 있어 기준으로 삼아가려고 하는 마음이며 이를 호(號)로 사용한단다. 녹명은 시경에서는 임금이 내리는 연회를 ‘녹명’이라고 하였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또 뉘우치면서 산다. 공자 말씀에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잘못’이라고 했다.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작비(昨非)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일 테니 부디 공자 말씀을 실천하시고, 녹명처럼 즐거움도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빈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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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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