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인으로 비상하길 꿈꾸는 임일주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에이블뉴스

우리는 살아가며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고, 한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위기를 마주한다. 22년 전 임일주 씨(46세, 지체장애1급)도 그랬다.

특전사로 군 생활 중, 제대 두 달을 남겨두고 나온 휴가에서 교통사고로 경추 5,6번을 다쳤다. 이틀만에야 깨어난 일주 씨의 삶은 처절히 무너졌다. 아픔은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서울 천호동 한 카페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멋쟁이’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 할 정도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외면했다.

“장애인이 된 나의 모습이 너무 싫었어요. 1년 반 병원생활이 끝나고 집에 오니 나가기 싫었어요. 배달원이 찾아오는 것도 싫어서 숨고, 피했어요. 5년 동안 집 안에서만 있었어요.”

혈기왕성하던, 활발했던 20대 청년은 쉽사리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용기 내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나며 힘을 얻었지만, 친구들을 만날 때뿐이었다.

여전히 돌봄의 몫은 그의 홀어머니였다. 일주 씨를 혼자 두고 나설 수 없었던 어머니는 가게 쪽으로 이사해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그를 돌봤다. “결국 가족뿐이 없더라고요, 너무 죄송했어요. 지금도.”

‘희망방송에서 장애예술인을 뽑는대. 한번 오디션 봐볼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06년 방광검사를 위해 찾은 국립재활원에서 2박3일간 인연을 맺었던 장애예술인 탁용준 화백이 일주 씨를 불러세웠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일주 씨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본 오디션은 본격 장애예술인으로의 길로 이끌었다.

‘유크레이션’이라는 중창팀을 만들어 병원, 국립재활원 등을 찾아 공연했고, 2년 후에는 ‘프렌즈’라는 일주 씨의 인생이 담긴 창작뮤지컬도 선보였다. ‘프렌즈’ 뮤지컬이 끝난 후 진행된 첫 관객인터뷰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친구들이 인터뷰를 통해 ‘되게 감동이었어요. 장애인의 편견이 없어졌어요.’라고 하는데, 너무 감동이었어요. 나는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용기가 됐어요.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식이 좋아진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임일주씨가 뮤지컬 연습에 한창이다.ⓒ에이블뉴스DB

일주 씨는 특별한 장애인의 ‘장애 극복’ 스토리가 되고 싶지 않다. 피폐한 채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던질 수 있길 바란다.

일주 씨는 지난해 11월 이음창작뮤지컬 ‘비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희망의 음악가가 된 이강일 바이올리니스트 역을 맡은 바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제가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장애를 가졌단 생각을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는 대사를 좋아한다. 실제로 일주 씨는 노래를 할 때마다, 공연을 할 때마다 스스로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하나의 예술가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일 뿐.

“음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노래 부르는 제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이음창작뮤지컬 '비상'에서의 모습.ⓒ임일주

최근 일주 씨는 예술인으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가기 위해 정식 음악공부도 마쳤다. 백석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자각몽’이라는 곡 녹음도 마쳤다. 장애예술인으로서의 ‘비상’할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단다.

“장애예술인이라고 하면 질이 조금 떨어진다는 편견이 은연중에 있거든요. 하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우리는 더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편견을 깨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임일주’라는 사람의 목표를 물었다. 수줍어하던 그는 “아내한테 잘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자원봉사를 나온 비장애인 아내를 만나 집안 반대에 부딪혀, 대전으로 함께 도망가기도 했단다.

작은 오피스텔에 숨어 살며,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까르푸에 가서 푸드코트에 가서 밥 먹었던 것이 가장 행복했다던 일주 씨는 아내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15년 동안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요. 앞으로 더욱 잘하고 싶어요.”

‘비록 넘어지며 울며 꺾일지라도 일어나 춤추며 몸부림치며 비상할 거야’

일주 씨는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비상하고 있다. 100km를 빠르게 달리진 못하더라도 30km로 천천히 달리는 일주 씨의 에너지를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 장애와 비장애의 벽이 허물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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