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혁신파크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홍서윤 대표.ⓒ에이블뉴스

“유럽 여행 왜 했냐구요? 하고 싶으니까 했죠!”

당찬 그녀에게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했나보다. 관광버스를 타고 답사를 하듯, 정해진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주는 음식을 먹는 촌스러움은 그녀의 몸에 맞지 않았다.

6개월부터 차곡차곡 계획부터 예산까지 꼼꼼히 세운 후 26인치 캐리어를 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가항공, 고속버스도 그녀에겐 불편함이 아닌 하나의 도전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휠체어로 7개 나라, 25개 도시를 누린 여성장애인 홍서윤(30세, 지체1급)씨는 한 달 동안 더욱 성장했다.

장애계에서 ‘홍서윤’하면 KBS 2기 최초 여성 장애인앵커 타이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외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KBS 3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 리포터로,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까지.

다양한 이력을 가진 그녀의 인터뷰를 준비하며 어떤 질문을 써내려가야 할지 고민했다. 일단 고리타분한 질문들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부턴 더 이상 질문지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난 그녀와의 대화에서 기자는 장애인여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눈을 떴다.

홍서윤씨는 최근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라는 책을 펴냈다. 매일 밤 노트북 앞에 앉아 어디를 갈지, 어떻게 갈지, 어디서 잘지,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 석 달을 걸쳐 숙소와 교통편, 관광 명소 티켓을 예약하고 정보를 수집한 그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프랑크푸르트-쾰른/아헨-몽샤우-브뤼셀-브루게/겐트-암스테르담-잔세스칸스-코펜하겐-스톡홀름-파리-뮌헨까지. 하지만 그녀의 도전에 대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금수저니까 그렇게 여행을 다니겠지!’

“금수저냐구요? 절대 아닙니다. 탄탄한 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열심히 일을 해서 일부를 저축하고, 예산을 짜고. 저축으로 충당되지 않는 것은 카드에서 보태기도 하구요. 돈이 많이 없다면 2~3년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거예요. 소처럼 벌어서 여행을 간다구요, 하하”

10살 때 장애를 입은 이후, 혼자서는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겁내던 시절도 있었다. 21살이 되던해, 경남 창원에 거주하던 그녀는 혼자 KTX를 타고 서울을 찾았다. 그것이 서윤씨의 첫 여행이다. 부모님의 보호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6시간동안 나만의 여행을 경험한 그녀는 그 뒤로 여행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면허도 따고, 국내부터 해외까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갔다.

지난해 9월 휠체어를 탄 채 한 달간 유럽 7개 나라, 25개 도시를 여행한 홍서윤 대표.ⓒ홍서윤

“여행은 편의시설 답사가 아니에요. 장애인 여행하면 왜 화장실 사진부터 남아야 할까요?”

편의시설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서윤씨의 여행. 그녀의 베스트 여행지는 소박했다. 가장 만족도 높은 곳이 서울, 그것도 여의도의 석양이다. “마포대교에 비춰지는 석양이 얼마나 멋있는 줄 모르시죠?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특별해보이지 않아도 그 사람에게는 특별할 수 있거든요. 특별한 좋은 경치나 풍경 보는 게 여행이 아니에요.”

현재 서윤씨는 약 2년째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 답게 장애인들의 새로운 여행을 위해 고민과 실험들을 해나가고 있다. 기존 답사 수준에서 어떻게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을지 하루하루가 고민의 연속이란다.

“올해는 캠핑에 대한 실험을 해봤어요. 캠핑이라는 것이 불편하지만 감수하는 것이거든요. 편의시설이나 모든 것이 갖춰진 캠핑은 없어요. 자발적인 자세로 휠체어를 타도 5배의 시간이 걸려도 텐트를 직접 쳐보고, 장애인화장실 편의가 최소화가 되어있어도 감수하는 것. 남들이 차려주는 캠핑장에서 즐기기만 하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서윤씨가 꼽은 장애인당사자가 여행을 떠나기 위한 1순위는 바로 ‘나 자신’이다. 여행을 위한 환경, 제도의 개선이 우선돼야 하지만, 하루아침에 제도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더욱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이라고 모든 편의가 갖춰져있진 않아요. 그런데 장애인이 당연히 여행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바탕이 되어있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잖아요. 당사자들이 더 많이 움직여줘야 해요. 당사자들의 요구가 있어야 사회적 인식도 만들어지니까요.”

그녀가 또 다시 도전한 실험은 경복궁 나이트 투어다. ‘청각, 지체장애인인 청년들이 모여 한복을 입고, 재미난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따분한 역사책 해설이 아닌, 청년 세대에 맞춘 재미난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서비스까지. 그 후 시각장애인 등 장애특성에 맞는 다양한 실험들도 펼치고 싶단다.

“고리타분한 여행을 원하지 않아요. 복지에서 벗어난 소비자로서의 장애인 관광을 꿈꿉니다. 복지관광은 시혜적 차원으로밖에 되지 않거든요. 소비자로서의 장애인들이 내일로를 타고, 비행기를 탔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여행은 복지관광에서 벗어나 소비자로서 즐길 필요가 있다"고 똑 부러지게 주장한 홍서윤 대표. 그녀는 장애인여행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즐긴다.ⓒ홍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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