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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 '장애인 만화특성화대학' 설립 목표

만화가 박경근 화백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7-02 15:38:36
만화가 박경근씨가 만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만화가 박경근씨가 만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특출난 능력에 앞서 범인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김연아가 단 한번의 점프를 성공시키기 위해 셀 수도 없는 연습한 것, 체조선수 양학선이 완벽한 착지를 위해 수백, 수천번 뜀틀을 넘은 것처럼 말이다.

이들과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노력으로 마침내 만화가가 된 한 장애인이 있다. 만화가 박경근(64·지체2급)씨다.

화백의 손은 형태만 남아 있는 정도다. 그의 어머니가 갓난아기인 그를 호롱불 밑에 두고 일을 보러 간 사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호롱불이 넘어졌고, 그 안에 있던 기름과 불이 이불에 붙어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화마로 생긴 장애 때문에 그는 유년시절 많은 고생을 했다. 아버지께 장사 밑천을 받아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양손장애를 가진 그를 보는 시선은 결코 좋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그 마을에 사는 또래들이 나와 텃새를 부리면서 폭행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보통 마을에 들어서면 4~5명의 또래들이 나와서 못 들어가게 막았습니다. 처음에는 막 때리길래 맞기만 했지만 나중에는 저는 저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장사를 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장사를 하던 그에게 사촌형이 서울로 올라가 볼 것을 권유했다. 농촌보다는 도시에 가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을 가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 올라와 연탄 운반을 돕는 일을 하던 중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어느 날인가 그가 그린 그림을 본 친구가 ‘잘 그린다’면서 만화를 그려볼 것을 권유했다.

당시 그는 연탄 운반을 하는 한 친구를 돕고 임금 일부를 받고 있었다. 친구는 엄청난 만화 마니아로 만화책을 쌓아두고 보곤 했는데, 이런 환경은 그를 자연스럽게 만화를 접하게 만들었다.

“제가 그린 그림을 본 친구가 제게 잘 그린다면서 만화가를 한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의 권유가 저를 만화의 길로 빠지게 한 거죠.”

박경근씨가 두문불출하면서 만화 그리기에 몰두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웃고 있다.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박경근씨가 두문불출하면서 만화 그리기에 몰두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웃고 있다. ⓒ에이블뉴스
양손장애가 있는 그에게 만화를 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형태만 남은 두 손가락은 연필을 잡는 것조차 버거웠다.

연필을 잡아도 지지를 할 다른 손가락이 없어 쉽게 빠지는 것을 본 그는 연필과 손가락을 고무줄로 묶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세밀한 묘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대 초반, 만화가가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는 6개월 간 방안에서 두문불출하면서 그림 그리는 연습에 매진했다. 마치 악상이 떠오르면 식음을 전폐한 채 작곡에만 몰두한 베토벤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연필을 이빨로 씹으면서 분노를 삭이기도 했다. 악조건 속에서 하려고 했으니 오죽했을까?

만화 그리기에 몰두 하던 중 신기한 일도 경험했다. 사흘 밤을 지새웠을 때 환영이 보인 것. 환영은 데칼코마니처럼 그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했다. 그가 만화를 그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시 저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밤을 지새웠죠. 3일이 지났을 때 제 옆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연필을 쥐고 있더군요.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정신은 멀쩡해 똑똑히 기억 납니다.”

그렇게 그리고 또 그리는 피나는 사투 끝에 만든 몇 장의 원고를 들고 당시 순정만화로 유명한 한 만화가의 화실을 찾아가 선을 보였다. 6개월 간 노력을 한 자신의 흔적을 전문가에게 평가받는 다는 마음에 설렘이 가득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어린 내 자식이 발로 그려도 이것 보다는 잘 그리겠다. 차라리 양복점에 가서 재단사를 하라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금니를 꽉 깨물고, 꼭 만화가가 될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재차 다짐했다.

“제가 오기가 있는 편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꼭 만화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지만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던 화백님이 같이 일을 해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속된 말로 뻰찌를 먹은 그는 자신의 실력을 알아봐줄 곳을 찾아다니던 중 한 출판사를 찾아갔다. 그의 원고를 본 편집부장은 ‘너무 그림을 잘 그렸다’고 극찬하면서 한 만화가의 화실을 찾아가 보라고 권유했다.

편집부장의 안목은 적중했다. 그의 원고를 살펴 본 한 만화가는 ‘바로 책을 출판해도 되겠다’면서 칭찬을 했고, 화실에서 자신의 일을 도울 생각이 없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그는 화실에서 만화를 스케치하는 일을 하게 됐다.

문하생이 맨 처음 화실에 들어가서 하는 일은 잡무를 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선을 그리고 채색을 하다가 스케치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스케치를 하게 됐다. 파격적인 대우였다.

문하생이 거쳐야 할 구간들을 한번에 뛰어 넘은 것입니다. 그만큼 저의 실력을 그분이 높게 평가해 주신 거죠.”

그렇게 문하생 생활을 하면서 화백의 작업을 돕고 처음 받은 돈은 5000원. 당시 국민은행 행원의 월급이 9000원인 것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액수였다.

주식만화를 그리면서 있었던 일화를 설명하는 박경근씨. 주식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주식만화를 그리면서 있었던 일화를 설명하는 박경근씨. 주식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이후 승승장구한 그는 도협지·귀협지·싸울아비(1985), 충무로스캔들·미스인디언(1995), 따따돈킹(2001), 바이러스(2002), 고씨의 아름한자365(2004), 돈킹의 아름한자365(2005) 등을 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경향신문에 주식과 관련한 만화 따따돈킹을 연재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매일 취재를 해 스토리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등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에피소드도 많았다.

한 시장의 계모임 같은 곳에서 돈을 가져와서는 주식에 투자를 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재미있다는 응원 메시지를 전달 받기도 했다. 주식만화 연재를 하면서 주식에 대한 지식과 감각도 많이 좋아졌다.

요즘 그는 대기업과 신문사, 복지관, 대학교 등에 강연을 하러 다닌다. 노력만으로 이룬 스토리 때문이다. 만화와 강연을 적절히 섞어 하다보니 몰입도와 반응도 좋은 편이다. 포스코에 강연을 하러 갔을 때는 포스코의 한 사장이 그의 강연에 감명을 받고 포항시 관광을 시켜주기도 했다고.

“강연을 가게 되면 잡초 근성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비닐하우스에 있는 화초들은 아름답지만 울타리가 없어지고 햇빛에 노출되면 자생이 불가능합니다. 반면 야생에 있는 잡초들은 비바람이 치든 햇빛이 강하든 살아남거든요.”

작업 중인 박경근 씨.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 작업 중인 박경근 씨. ⓒ에이블뉴스
그렇다고 완전히 그림에 손을 놓은 것이 아니다. 종종 소상공인신문 등 규모가 작은 신문사에 정치풍자 만화 등을 연재하기도 하고, 만화가인 딸이 구상하고 있는 작품에 조언을 하기도 한다.

모진풍파를 겪으면서 잡초처럼 살아온 인생. 그는 어렵지만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한다. 바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 특성화대학을 설립하고 싶다는 것. 또 설립 뿐만 아니라 회사 등과 업무제휴를 맺어 취업까지 연계하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는 치열함이 있어요. 그리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친구들이 있죠. 이런 대학이 만들어 지면 장애인들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약 제게 특성화 대학 설립과 관련해 사업을 설명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설득할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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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범 기자 (csb211@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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