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간의 긴 교사 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 누구보다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 황사흠씨. ⓒ황사흠

“장애인도 더 늦기 전에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30여 년간의 긴 교사 생활을 마치고 은퇴 이후 누구보다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 황사흠(62세, 지체 3급, 경북 의성군)씨는 은퇴를 앞둔 장애인들에게 이같이 조언했다.

현재 황 씨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의성군지회장, 의성군사회보장협의체 대표위원, 경상북도사회복지사협회 교육훈련위원 등 지역 사회복지 전반에서 활동하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역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과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예산 편성에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지난해부터는 사회복지사와 교도소 수감자를 위한 교육도 맡아서 하고 있다.

“월급은 없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협회에서 근무합니다. 매달 첫째 주, 둘째 주 수요일에는 교도소에서 인성교육을 하고 이번 달은 국민연금공단 간담회나 다른 체육행사들도 있었죠”라는 그의 설명에 하루를 얼마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 짐작할 수 있다.

은퇴 이후 낚시나 등산에 다니며 삶을 편안하게 보내는 직장 동료들과는 달리 이 같은 삶을 살게 된 건 대학교 시절, 장애인 운동을 하면서 가진 사명감 때문이다.

“우리 때만해도 대학교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어요. 주로 입학 거부 문제가 많았죠. 장애인이라서 겪는 문제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당시 대구시내 장애대학생 동아리인 푸른샘에서 2~3년 활동하며 목소리를 내기도 했어요.”

경북지체장애인협회 의성군지회에서 여성활동가 컴퓨터교육을 하고 있는 황사흠 씨. ⓒ황사흠

이때 다음 세대의 장애인들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도록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더욱 확고해져 1981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관심을 놓지 않았다. 주말시간을 투자하고, 보다 전문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사회복지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30여 년간의 교사 생활, 아침 8시면 출근해서 밤 10시에 끝나서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말에 주로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박사학위 취득은 은퇴 후로 미뤘고, 결국 지난 2월 취득했습니다.”

스스로가 좋아서 시작한 일, 후회는 없지만 힘든 점도 있다. 시골이라 봉사활동에 나서 줄 젊은 친구들이 없어 장애인들과 버스라도 타고 어디를 가게 되면 다 없어서 옮겨 드리고 해야 하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힘들다는 것.

특히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 사회복지 관련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노인의료복지학과 박사 받을 때 대구한의대학교가 있는 경산까지 100km가 되는데 논문지도를 받기 위해 매주 오고가기를 반복했어요. 거리도 거리지만 나이 먹어서 공부하려니 배워도 자꾸 까먹고, 그 때야 주경야독으로 그렇게 공부했지만 지금은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하죠(웃음)”

황사흠 씨가 지난 2월 대구한의대학교 졸업식장에서 학사모를 쓰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사흠

모든 일이 쉽진 않았지만 올곧게 목표를 행해 달려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변화에 대한 기대와 장애인들의 행복한 미소였다.

“농촌 지역이기는 하지만 60살 정도 되면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은 한 번씩들은 갔다 왔는데, 장애인들은 갔다 온 사람이 없어요. 가고 싶어도 데려가 줄 사람도 없고 가족조차도 엄두를 못내는 현실이죠.”

옛날이야 해외여행이 시골 사는 노인들에게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지, 요즘에는 많이 달라졌다. 주변에서 자랑삼아 얘기하면 장애인들은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작년 9월 지역 장애인 40여명을 인솔해 중국 청도로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

“해외여행의 개념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삶의 질과도 많이 관련돼 있죠. 어렵더라도 꼭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에서는 처음해보는 도전이라 주변 사람은 미쳤다고 했어요. 가보니 시설도 인식도 너무 엉망 이었어요.”

열악한 환경 탓에 관광지를 다니다보면 많이 넘어지기도 하고 뒹굴기도 했지만 누구하나 아프다고 하는 사람, 쉬어가겠다는 사람이 없이 좋아했던 모습이 여전히 그의 기억 속에는 많이 남아있다.

“저도 그렇고 지역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도 그렇고 나이가 많다보니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요. 더욱이 농촌 지역이고 여러 가지로 낙후돼 있다 보니 인식도 많이 부족하죠. 그래도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조금씩 해나가고 있어요.”

힘들기는 하지만 은퇴 이후 누구보다 보람 있게 활동하고 있는 황 씨는 은퇴를 앞두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한 조언과 함께 정부의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황씨는 “의료기술 발전으로 장애인들의 수명도 길어져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더 늦기 전에 준비해야 하는데, 할 일이 많다”면서 “발전하는 문명에 소외 되지 않고, 이를 이용해 삶의 질을 높이려면 배움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교사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생활이 되지만 같은 나이 대의 동료 장애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이 많아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를 위한 정책이 거의 없다”면서 “국가가 시급히 장애인들의 노후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혼의 인생 2막을 보내고 있는 황 씨는 오래 전 바람처럼, 지금 이 일을 계속하며 뒤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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