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 하명동씨(사진 왼쪽)와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인 가족인 이대근(중간), 김순아(오른쪽)씨 모자. ⓒ에이블뉴스

저녁 6시가 되자 발달장애인 아이를 둔 김순아(여, 47세, 서울 목동)씨의 손길이 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이제 막 아이와 함께 들어온 남성은 주방에서 아이에게 먹일 약 봉투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밥을 짓는 어머니와 아이의 약을 챙기는 모습은 보통의 가족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보였지만 사실 이들은 활동보조인과 이용인으로 만난 또 다른 이름의 가족이다.

지난 2008년 활동보조인 하명동(남, 49세, 경기 광명)씨는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해 발달장애를 가진 이대근(남, 17세, 발달장애 1급, 서울 목동)군을 소개받았다.

활동보조인인 하씨의 주 업무는 대근이의 신변처리에서부터 이동지원까지 다양하다. 월 105시간 대근이와 함께하는 하씨는 대근이의 아버지(보호자) 역할까지 톡톡히 해오고 있다.

활동보조인의 또 다른 이름 ‘가족’

김씨는 “처음 본 분들은 아버지로 오해를 많이 해요.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해요. 지난번에는 문구점에서 선생님(호칭)이 장난감을 사려는 대근이를 설득하고 있었나 봐요. 문구점을 찾았더니 아버지가 참 자상하다고 칭찬을 하더라구요”

아버지 또래의 활동보조인 하씨가 대근이를 만난 지도 벌써 4년 6개월, 처음 초등학교 5학년이던 대근이가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됐다.

“시간이 이렇게 지난 줄 몰랐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선생님은 왠지 편했어요, 제 살림이 부끄럽고 그런 것이 아니라 가족같이 편했어요. 대근이 형이랑 영화, 만화도 보고 앉아있고, 항상 고맙죠”

“다른 어머니들을 보면 활동보조인 선생님 식사, 이외 세세한 부분 챙겨드리는 것에서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처음에 ‘형편도 안 되고 챙겨주지 못 하겠다’, ‘대신 미안하니까 받는 것도 싫다’고 미리 양해를 구했죠”

활동보조서비스 이용자 가족인 김순아씨는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사이에는 무한신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이블뉴스

“처음엔 스승의 날,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면 얼굴이 벌게지곤 했어요. 아이를 둔 엄마 마음에 매번 식사도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러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시간 허물없이 지내온 존재가 지금은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는 설명이다.

“좋아요. 무거운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에요. ‘선생님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면 제 삶이 너무 불행하고 끔찍하다고 생각돼요. 항상 고맙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죠. 가족 같이요”

관계에서 찾아온 위기 ‘불신’

그러나 5년이 다 되가는 기간 동안, 이들에게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닐 터. 갈등이 있었냐는 질문에 한 번의 커다란 위기가 있었다고 대답한다.

“한 번은 대근이 항문에 출혈이 생긴거에요. 5학년 여름방학쯤이었는데 아이 항문에서 피가 나오는 거에요. 당시 성폭력에 의한 피해사례가 뉴스에서 많이 보도되던 때였어요. 혹시나 선생님이 하는 마음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죠. 몇 주간 고민하고 말씀 드렸죠”

“선생님이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드릴말씀이 없다. 저는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이런 의도가 아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시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집밖으로 나가버리시고 다음날부터 선생님이 안 오셨어요. 미안해서 전화를 드렸는데 울고 계시더라구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대근이가 먹는 약의 부작용 때문에 변비가 생겼고 이를 참지 못한 대근이가 항문에 손을 넣어 짂접 변을 빼려는 강박증에 의한 원인이었다.

“그날 뒤로 곰곰이 생각했어요. 입장을 바꿔 놓고 제가 너무 잘못했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고 싶다고 전화를 드렸어요”

활동보조인과 이용자(가족) 사이 이해 폭 넓혀야

활동보조인 하명동씨는 서로를 이해할수 있는 폭을 넓혀야만 장기간 함께 할수 있는 사이가 된다고 말한다. ⓒ에이블뉴스

활동보조인 하씨는 당시를 서운함 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생각보다는 장애아를 둔 부모로 얼마만큼 힘들고 한이 맺혔으면 그럴까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장애 부모들의 경우 아이들이 의사표현을 못 하잖아요”

“시각장애인을 활동보조 하는 분 얘기를 들어보면 몰래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경우도 있고요. 활동보조인 교육 과정 중 시각장애 체험을 해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씨 역시 어머니에게 서운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근이와 접하다 보니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박에 없었다고 말한다.

“대근이가 학교 수업에 빠져 이동보조가 필요 없던 날 어머니가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아 헛걸음 친 적도 있어요. 순간적으로 화가 났죠. 그런데 사실 저도 대근이랑 같이 있다 보면 연락한다 하면서도 잊어버려요. 이해할 수밖에 없죠.”

“물론 서운한 점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할 때 서운한 일이 있거나 상사가 부당한 요구를 해오면 삭이지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잖아요. 친구, 연인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비가 온 뒤 땅이 더 굳건해 지듯, 이들은 크고 작은 사건과 이해를 반복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는 더욱 두터워졌다는 설명이다.

“한번은 인근 시장 통에서 전쟁을 벌인 일이 있어요. 대근이가 옛날 살던 집으로 자꾸 들어가려 하는 거에요. 서로 막고 들어가려고 하고 전쟁이 벌어진거에요. 며칠 뒤 동네에 소문이 났어요. 제가 대근이를 구석에서 발로 차고 두들겨 패고 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는지 어머니가 웃으면서 물어보시더라구요. 저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어요. 아이가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의심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어머니가 전적으로 저를 신뢰하고 대근이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제게 맡긴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제가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거죠”

긴 시간 인터뷰가 끝나고 오랜 시간 함께한 이들 사이에는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깊은 신뢰가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들 사이의 관계가 오랜 동안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