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함께해온 활동보조인 김명호씨(왼)과 장애인 유두선씨(오).ⓒ에이블뉴스

“두선아, 형이 너 좋아하는 거 알지?”, “몰라요(웃음)”

낭만스럽지는 않지만 끈끈한 정이 느껴지는 두 남자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웃음이 피어난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로 묶인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모습이 아닌,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의형제의 모습과도 같다.

35세 활동보조인 김명호씨와 26세 뇌병변 장애인 유두선씨.

9살의 나이 차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종교인과 비종교인,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꺼려하는 사람. 이들은 어느 하나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벌써 2년이 다 되도록 ‘그림자’처럼 지내온 관계다.

■“20여명의 이용자 중 두선이가 최고”=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이들의 활동보조 연계기관인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근방에서 명호씨와 두선씨를 만났다. 월, 수, 목, 금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지난 2011년부터 그들은 함께하고 있는 시간이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 명호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여명의 이용자를 만났고, 두선씨는 6명의 활동보조인과 호흡을 맞춰왔다. 갈등도 많았고, 아쉬운 점, 좋았던 점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만큼 좋은 사이로 지내온 적이 없다고 입 모은다.

두선- “이용은 원래 서울센터에서 해왔어요. 센터에서 이용하는 친구가 있어가지고, 자연스럽게 그 분 따라왔다가 형을 만났구요. 한 6명 정도 활동보조인이 다녀갔어요. 그동안은 나이가 많았던 연장자 활동보조인이어서 불편한 점 많았죠. 자연스럽게 그만뒀던거 같아요. 아마 지금 명호형이 가장 오래된 활동보조인 일 거예요.”

명호- “2004년 직업이 없던 시절, 장애인 단체에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 길로 장애인단체에서 일을 하게 됐구요,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하는 과정에서 인터넷에서 활동보조인 공고를 발견했어요. 그동안 했던 일과 비슷하길래 ‘할 수있겠다’싶어서 시작한게 벌써 6년이예요. 20여명의 이용자를 만났어요. 저 역시 두선이가 가장 오래된 이용자기도 하구요.”

두 사람은 그동안 활동보조서비스로 인해 상처도 많이 받았다. 명호씨의 경우, 이용자의 오해를 사서 절도 혐의로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으며, 두선씨는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종교인과의 갈등, 사소한 성격 문제, 시간을 지키지 않는 활동보조인 등으로 인해 마음을 닫기도 했다.

“예전에 어떤 분은 제 생일날 청자켓을 선물로 줬어요. 부담 없이 받으라면서요. 그런데 그 활동보조인의 생일이 다가올 쯤, 은행 업무를 부탁했는데, 통장에 돈이 비더라구요. 어찌됐던가 했더니 활동보조인이 자신이 선물을 사줬으니, 본인도 사줘야 한다며 돈을 마음대로 빼간거예요. 어이 없었죠. 전도사 준비하시던 분은 교회에 자꾸 가자고 하기도 하구요. 이런 사례 비일비재 하지 않나요?”

■그들의 트러블, ‘대화’가 해결점=그런 그들이 만난 2011년. 약 2년이 다 되가는 기간 동안, 이들에게도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닐터. 갈등이 있었냐는 말에 ‘머뭇머뭇’ 서로의 눈치만 보던 명호씨와 두선씨는 “왜 없었겠냐”고 받아친다.

사건은 지난해, 명호씨가 “병원에 가겠으니 조금만 일찍 끝내줘”라고 부탁한 거에서 시작됐다. 오후5시에 끝나는 명호씨지만, 여유 있게 움직이고자 20분정도 일찍 끝내달라고 두선씨에게 부탁했지만, 두선씨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던 것.

“여유 있게 움직이려고 20분정도 일찍 끝내달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표정이 좋지 않을까 했어요. 그러고 나서 일찍 끝내줘서 가는 길에 시간을 재보니까 제가 5시까지 채우고 나서 움직여도 충분한 시간이더라구요. 저에게는 짧은 시간일진 몰라도, 장애인인 두선이에게는 큰 시간이예요. 입장을 생각해보니까 미안했어요.”

“제 입장에선 미리 통보받은 것도 아닌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일찍 끝내달라는 말을 하니까 곤란했어요. 별거 아닌 시간으로 보일진 몰라도 정말 크거든요 중증장애인인 저한텐. 그래서 형한테 앞으론 형이 채우고 갔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말했고, 지금껏 형이 잘 이해해주고 있어요.”

이들이 지금껏 금슬 좋게(?) 지내온 요인은 바로 ‘그때 그때 솔직히 말하기’였다. 두선씨가 솔직히 말한 이후, 서로에게 불편한 부분은 솔직히 말하게 됐고, 그때부턴 갈등이 없었다는 것이 이들의 해결점이다.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욱 불편해질까봐 서로 눈치만 보다가 끝내 폭발해버리는 사례들과는 대조점을 보인다.

“활동보조인도 감정노동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뭔가를 시키는게 불편해서 서로 이야기를 안하면 빵 터지게 되있어요. 결국 극단적인 사태까지 발생하고 말죠. 바로 바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해요.. 그게 편할거예요.”

“내가 두선이를 좋아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예요. 본인이 싫으면 바로바로 표현하고, 서로 이야기를 해요. 싸우려고 하는게 아니라 풀려고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저도 두선이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구요. ”

인터뷰 도중 두준씨가 명호씨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도와주는 모습.ⓒ에이블뉴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형이었다”=인터뷰 내내 ‘투닥 투닥’ 장난을 치던 명호씨와 두선씨에게도 감동적인 사연은 존재했다.

올 무더웠던 여름, 공연을 좋아하는 두선씨를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데려다주고, 퇴근한 명호씨는 다음날 아침, “형, 빨리 와주면 안돼?”라는 전화를 받게 된다.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명호씨는 한걸음에 두선씨에게 갔다.

“공연이 끝나고 저녁에 집으로 출발했는데, 인천에서 막차를 놓쳐서 아침에 온거예요. 지하철을 타긴 탔는데 진흙이 잔뜩 묻어있고, 피부는 새까맣게 타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어요. 마땅히 도와줄 사람이 명호형밖에 없었어요. 부탁 전화를 했는데 한 걸음에 와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사실 그때 아침에 교회를 가고 있었어요. 근데 두선이한테 전화가 와서 와주면 안 되냐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저한테 연락을 했겠어요. 바로 가서 씻겨주고 도와줬죠. 두선이는 평소에 너무 고마워요. 형이라서 불편한게 많을텐데 항상 잘 참아주고, 불편한거는 이야기해주고요. 20명의 이용자 중에서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것은 두선이 뿐이었어요”

두선씨와 명호씨가 끈끈한 정을 쌓을 수 있던 두 번째 요인, 바로 두선씨가 3명의 활동보조인을 로테이션해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 250시간의 활동보조를 받고 있는 두선씨의 시간 중 명호씨가 근무하는 부분은 월, 수, 목, 금 160시간 정도. 그리고 화, 토요일 각각 2명의 활동보조인이 두선씨와 함께한다.

두선씨는 “개인적으로 제도를 이용하면서 느꼈던게 한 사람만 너무 오래하는 것도 단점이 있다. 서로에 대해 친해지고 나면 단점을 보게된다”며 “한 사람이 210시간을 채울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사정이 생겨서 비게 되면 나는 뭐가 되냐. 로테이션을 걸어놓으면 갈등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테이션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워낙 활동보조인의 수가 적기 때문에 로테이션을 돌리기가 힘들다는 것. 두선씨는 “시급이 높아진다고 해서 활동보조인이 그렇게 오래 있을 것 같지 않다. 직업화를 시켜서 입에 풀칠정도 할 수 있게 되면 조금 오래 남지 않을까”라며 “로테이션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한 사람과 부딪히는 갈등이 줄어들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치맥’으로 함께한 형, 동생=활동보조인과 이용자, 돈으로 묶인 지극한 일적인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저녁에도 함께 ‘치맥’을 들이키는 사이다.

사회생활하면서 있었던 속상한 일들이나, 고민 점들을 털어놓는 사이. 분위기를 즐기는 두선씨와 함께 술 한잔 기울일 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 명호씨의 마음이다.

“두선이는 뭐랄까, 한 마리에 곰 인형 같아요. 보고싶을 때 보고, 안고 싶을 때 안고, 부담 없이 대할 수 있는? 곰인형 보면 참 편하잖아요. 두선이가 그런 존재예요. 갑자기 이런 말 하려니까 닭살 돋지만(웃음)”

“명호형은.. 제가 평가를 하자면요... 소 같아요.(웃음) 체격도 그렇고 우직한 면도 그렇고. 제가 명호형이랑 언제까지 활동보조를 할지는 모르겠어요. 앞날은 모르잖아요.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듯이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겠죠. 하지만 끝이 오더라도 맺음을 나쁘지 않게 하려고 언제나 노력할거예요”

오후12시,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가 끝나자, 그들은 “집에가서 밥을 먹고 낮잠도 잘거다”라며 계획을 밝혔다. 다음날에는 여주 장애인 시설 ‘라파엘의 집’에 다녀가 동료상담도 진행한다고.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끈끈한 형, 동생의 관계가 오랜 기간 이어지길.

2년간 함께해온 활동보조인 김명호씨(왼)과 장애인 유두선씨(오).ⓒ에이블뉴스

인터뷰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명호씨와 두선씨.ⓒ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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