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마라토너' 표지. ⓒ박경태

“나는 나의 장애를 인정하고서야 내 인생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지난 2010년 10월 17일 경주국제마라톤에서 풀코스 100번째 완주 목표를 이룬 이윤동(시각장애1급)씨가 자신의 마라톤 인생을 책으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장애가 진정 장애로 남는가 아니면, 극복할 수 있는가는 자신이 장애를 인정하고 얼마나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Q:마라톤은 힘든 운동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비장애인도 하기 힘들어 하는 운동인데 어떻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나?

A:시각장애인은 이동 접근이나 활동에 불편이 많아 비장애인에 비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조력자만 있으면 걷기운동, 조깅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2003년 시각장애인 단체장을 맡으면서 시각장애인 동료들과 함께 조깅 운동을 즐기기 위해 마라톤클럽을 만들고 지역에 있는 울산마라톤클럽과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 손을 잡고 걷기 운동을 한 게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Q:마라톤의 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마라톤의 참맛은 고통을 즐기는 것이다. 자기와의 싸움이랄까, 온 몸이 부서지고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견뎌내고 완주 하였을 때 그 성취감과 짜릿한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30km지점에서 쓰러질 듯한 고비에선 “내가 왜 이 미친 짓을 하지?”하면서도 완주선을 통과하면 승리감에 도취되어 과정의 고통은 모두 잊고 또 다음 대회를 구상하게 된다.

Q:마라톤을 하면서 힘들었을 때는?

A:달리는 것도 힘들지만 주변 환경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앞사람과 거리가 맞지 않아 뒷발질에 정강이가 걷어차이는 아픔과, 도우미(시각장애인과 함께 줄로 연결되어 달리는 사람)와 호흡이 맞지 않아 요철(오목함과 볼록함 지점)부위를 밟아 부상을 입고 다른 주자와 충돌도 하고 나뭇가지에 찔리고 넘어져 깨지고 힘든 점이 많았다.

Q:그럼 힘든 점만 있으면 오래 견디기가 힘들 수도 있을 텐데 마라톤을 백번 이상 달리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우선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여행할 수 있어 좋았다. 각 지역의 향토 음식도 맛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건강이 좋아졌다. 기관지가 안 좋아 해마다 기침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병원, 약국과 인연을 끊은 지 오래 됐다. 또 한가지 좋은 점은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 장애인들도 당당히 살아감을 알릴 수 있어 더욱 좋았다.

Q:달리다 보면 힘들 때도 있을 텐데 어떻게 참아 내는 비법이 있나?

A:고통에 직면하면 회피하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나도 역시 숱한 역경과 고비를 맞이했었다.

달리다가 힘이 들 때는 장애를 입은 몸으로 차별과 편견, 비장애인과 경쟁 등 모진 세파를 헤쳐나가는 일에서 용기를 얻는다. 반대로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할 때에는 105리 길 고된 여정을 생각하면 힘든 굽이도 평지처럼 느껴 졌다. 이처럼 마라톤은 나를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Q:이야기 하다 보니 마라톤 애찬론자 같기도 하고 마라톤에 심취한 분 같기도 한데 마라톤이 주는 인생의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흔히들 마라톤은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마라톤은 나에게 더 할 수 없는 삶의 스승이다. 고통을 인내하는 법을 배웠고, 고진감래의 소중함과 뿌린 만큼 거둔다는 보편적 진리를 일깨워 주었다. 또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만 하면 스승이라 할 수 있지않은가.

Q:많은 대회에 참가 하면서 드러나지 않은 사연들도 많을 것 같은데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면.

A:그 많은 대회 중 사연과 곡절이 없는 대회는 하나도 없었다. 사건과 사고도 많았다. 한 번은 한적한 강변에서 혼자 달리기 연습을 하는데 갑자기 앞에 무언가 물컹한게 안기면서 한 여성의 비명소리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렀다. 그 여성의 가방과 신발은 사방으로 날아갔고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황당하고 민망스러워 하며 앞이 잘 안보여 큰 실수를 했다며 싹싹 빌었다.

그 여성분은 관광차 울산을 찾은 일본인 여성이었다. 말이 안 통하니 내 사정을 변명도 못하고 정말 난감했다. 그러나 그 여성분은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괜찮은지 묻고선 자리를 피했다. 난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오그라든다.

이윤동(우)씨가 손목에 줄을 연결해 달리고 있는 모습. ⓒ박경태

Q:장애인이 마라톤을 하는데 대해 주변의 반응은.

A:시각장애인이 마라톤을 하니 신기해하고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이런 주위의 반응에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장애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 있고 장애 때문에 불편한 일이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 장애인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간단히 예를들면 달리기는 다리가 불편하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장애라는 이유로 마치 특별하게 봐 주는 인식이 일종의 차별과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런 장애인이라 특별함 보다 우리(비장애인)와 같이 달리는 그저 장애가 평범해서 관심이 없는 사회가 하루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Q:책은 어떻게 쓰게 되었는가?

A:마라톤이 쉽지가 않았기에 지나온 역정을 먼 훗날 뒤안길을 더듬으며 추억하려고 완주기를 써왔다. 횟수가 거듭하면서 이야기는 쌓여갔고 동반주를 해 준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들을 머릿속에 가슴속에 다 담아 두기에는 벅차올라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Q:책 내용은

A:내용은 마라톤을 하면서 겪었던 애환과 즐거웠던 일, 결코 잊을 수 없는 이웃의 따뜻한 마음, 마라톤을 통해서 도전과 극복 성취하는 과정, 시각장애인 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에피소드, 내가 살아온 일상들을 두서없이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Q:화제를 바꿔 보겠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비장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신체 장애는 삶에 불편할 뿐이지 장애가 무능의 상징은 아니다. 장애인도 불편한 점만 보완해 주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잘못된 제도와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이 장애인을 만드는 장애요인이다.

요즘 장애인 인격을 존중한다면서도 그 호칭은 불구자, 장애자, 장애우,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불편한 사람들을 장애인이란 용어로 굴레를 씌워 오히려 말로써 낙인을 찍는 또 다른 차별적 언어 폭력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난 “불편한 사람”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산업사회에서는 누구나 사고에 노출되어 있고 불편한 사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에서 불편한 사람도 불편이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복지사회요,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Q:불편한 사람으로서 다른 불편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글쎄요 불편하다. 힘든다고 안주를 하면 계속 불편하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15년을 가만히 있으니 다른 사람은 15년을 앞서가고 나는 30년이 뒤떨어져있었다. 그러나 하고자 하고 덤비니 길이 열리고 오늘에 이르렀다.

행복과 성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결코 노력없이 얻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죽으면 썩어질 몸 열심히 굴려서 남에게 걸림돌이 되지 말고 디딤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기자에게 불편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좀 더 불편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사회에 요구할 것은 요구함과 동시에 불편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을 기회제공을 에이블신문이 나서 해주기를 당부했다.

*박경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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