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태양이 손짓하는 여름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산으로 간 사람들은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바다로 간 사람들은 푸른 바다에 풍덩 몸을 던진다.

그러나 장애인은 여름이 와도 산이나 바다나 이용하기에는 모두 다 그림에 떡에 불과하다. 계곡은 돌투성이고 바다는 모래밭이라 목발 사용 장애인이나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엄두도 내기 어렵다.

그런데 산으로 바다로 못 떠나는 사람들이 장애인만은 아닌 모양이다. 도심 곳곳에 야외수영장이 들어서 여름 한철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야외수영장 가는 것이 계곡이나 바다로 가는 것 보다는 저렴하고 편리하다는 것이다. 야외수영장은 주차시설이 있고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물놀이를 맘껏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화장실은 물론이고 탈의실과 세면장도 갖추어져 있었다.

부산항 야외수영장. ⓒ이복남

얼마 전 지체3급 A씨가 부산에 살아도 바닷가에 한 번 가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비록 목발은 사용하지 않지만 바닷가 모래밭은 잘 걸을 수가 없어서 못 간다고 했다. 그런데 부산항에 야외수영장이 새로 생겼는데 도심에 있어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요금도 싸다고 했다.

그래서 방학을 맞은 손주들과 같이 북항 야외수영장을 찾았다. 입장료가 성인은 5,000원이고 어린이는 3,000원인데 부산시민은 1,000원을 할인해 준다고 했다.

“부산시민은 1,000원 할인을 해 준다며 신분증을 챙기라고 해서 장애인복지카드를 가져갔는데, 장애인이라고 아들까지 공짜였습니다.”

평상은 5,000원인데 차양 막 아래는 공짜라서 평상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복장은 수영복과 수영모가 기본이지만 수영복에 준하는 옷차림과 캡 모자라면 상관없는 등 별로 까다롭지 않았지만 음료수 외에 음식물은 반입이 금지였다. 차양 막 아래서 자리를 지키며 물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삼락 야외수영장. ⓒ블루25워터파크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것 같아 나도 한 번 들어가 볼까 싶어서 풀장 가까이 가 보았는데 풀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영장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한숨만 쉬다가 왔다고 했다.

“장애인은 야외 수영장도 한 번 못 가본단 말입니까?”

필자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북항 수영장은 부산항 시민 해수온천 야외수영장(이하 부산항 수영장)이라고 했다. 2008년 부산항만공사에서는 북항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온천을 발견했는데 최초로 발견된 제1호 공은 심도 538m에서 용출된 28.6℃의 미온천으로 중성의 Na-Cl형 염화물광천수(식염천)로 분류되어 수영장으로 개설했다고 했다. 부산시민은 1,000원 할인이고,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국가유공자 등은 면제라고 했다.

야외수영장이 부산 도심에 있고 해수온천이라 고맙고 반갑기는 하지만 장애인은 수영장에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라는 말일까? 부산항 수영장으로 전화를 했다.

“장애인은 어디로 입수를 합니까?”

한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만, 그런 문제에 대답 할만한 사람이 없다며 나중에 전화를 하라고 하기에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부산시에 전화를 했다. 부산시 편의시설 담당자는 부산항 수영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다대포 야외수영장. ⓒ네이버 예약

“부산항 수영장은 7~8월 두 달만 임시로 한다는데 임시로 하는 수영장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습니까?”

부산시에서는 알아보겠다고 했다. 필자의 사무실하고도 가깝기에 부산항 수영장엘 가 보았다. 장애인복지카드를 제시하고 무료입장권을 받아서 들어가 보았다. 평일이고 비가 내리는 탓인지 이용객은 별로 없었다. 에어바운스로 설치 된 수영장에 들어가는 길은 모두가 높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나오면서 책임자를 찾았더니 이사라는 분이 대답하기를 임시로 하는 거라 그런 것(편의시설)은 없다고 했다.

마침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지체1급 B씨에게 다른 일로 전화를 하면서 수영장 이야기를 했다. B씨의 고향은 고성바닷가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살다시피 했기에 수영은 할 줄 압니다.”

그런데 사고 이후 바다는 물론이고 수영장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단다.

“편의시설이 되어 있고, 같이 갈 사람만 있다면 정말 수영장엘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물속에 들어 갈 수만 있다면 운동이나 재활은 물론이고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에게 편의시설이 되어 있는 수영장을 찾아서 한 번이라도 가 볼 수 있도록 주선을 해 달라고 했다.

화명 야외수영장. ⓒ부산관광공사

부산장애인체육회 임성하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수영장(한마음 스포츠 센터)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지만, 야외수영장은 에어바운스라 경사로 설치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부산만 해도 야외수영장이 여러 곳 있다. 부산항수영장, 삼락수영장, 다대포수영장, 화명수영장 등 호텔수영장을 제외하고도 큰 곳만 해도 4군데나 있었다. 부산항 수영장엔 이미 다녀왔고 삼락, 다대포, 화명 수영장에 전화를 했다. 어디에도 장애인 입수를 위한 편의시설은 없었다.

전화를 하다 보니 “장애인도 수영을 합니까?”라고 묻는 황당한 질문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장애인의 수영장 입수를 위한 방법 즉 경사로나 리프트 등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게 필요하다면 우리도 설치를 했을 겁니다.”

아하!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구나.

부산시청에서 전화가 왔다.

“부산항 수영장은 알아 봤는데 의무사항이 아니랍니다.”

의무사항이 아니라면 편의시설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장애인은 수영장에 들어갈 수도 없는데 그렇다면 장애인은 시민도, 국민도 아니란 말인가.

“그런 건 아니지만…….”

장차법이나 장애인등편의법이 다 무슨 소용이랴!

장차법 시행령 제16조 별표5. ⓒ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이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 및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참여와 복지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두 법 다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여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는데 그야말로 개뿔이다.

장차법이나 장애인등편의법 어디에도 야외수영장에 입수 편의를 위한 경사로나 손잡이, 리프트 등 입수보조시설을 설치하라는 조항은 없었다.

장차법 시행령 제16조에 실내수영장에 관한 내용은 있다. 실내수영장은 ‘입수편의를 위해 경사로·손잡이 등 입수보조시설’ 설치해야 된다. 전동휠체어는 안되지만 수동휠체어는 샤워만 하면 되고 알루미늄이라 녹도 잘 쓸지 않는다. 그리고 리프트는 물속에 들어가는 수중리프트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구경거리가 되는 리프트 보다는 경사로를 선호한다고 한다.

실내수영장 경사로 및 리프트. ⓒ부산장애인체육회

그러나 장차법 시행령 제16조에 엄연히 명시되어 있는 실내수영장도 그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야외수영장은 의무기준에도 없는데 뭘 어쩌란 말이냐’가 부산시의 답변이다.

그런데 법에 없다면 지키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그래서 야외수영장에 접근할 수 없는 장애인은 사람도 아니고 이 나라 국민도 아니란 말인가.

너무 어이가 없어 장차법 시행처인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했다. 장차법 시행령 제16조와 야외수영장에 대해 얘기를 했더니 장차법 제18조를 보라고 했다.

제18조(시설물 접근ㆍ이용의 차별금지) ① 시설물의 소유·관리자는 장애인이 당해 시설물을 접근·이용하거나 비상시 대피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장차법 제25조에는 체육활동의 차별금지 조항도 있었다.

제25조(체육활동의 차별금지) ① 체육활동을 주최·주관하는 기관이나 단체, 체육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체육시설의 소유·관리자는 체육활동의 참여를 원하는 장애인을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야외수영장은 대중 이용시설이자 체육시설이다. 그렇다면 야외수영장은 장차법 제18조 및 제25조를 위반하고 있었다. 시설물이나 체육활동에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락체육공원 장애인 화장실. ⓒ이복남

여름이면 장애인도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싶다. 장애인에게 수영은 운동이자 재활이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즐거움이자 기쁨인데 부산의 야외수영장 그 어디에도 중증장애인은 입수할 수 있는 길이 없으니 정말 이를 어찌해야 하오리까?

현재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거의 다 있다. 그런데 최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더 많다. 오랜 세월동안 장애인들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투쟁한 결과라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야외수영장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 방법 또한 설치 전에 조금만 연구 검토하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이는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와 국가 그리고 시설주의 의지 문제가 아닐까 싶다.

8월도 벌써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사후약방문 같지만 올해가 안 되면 내년이나 후년이라도 해야 될 것이므로 사후약방문이라도 필요할 것 같다. 야외수영장에 경사로가 설치되면 장애인보다는 어린이나 비장애인이 더 많이 이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외수영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은 설치되어야 한다. 여름이면 물에 한 번 풍덩 들어가 보는 것이 운동이고 재활이자 가슴 뿌듯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 행복을 위하여.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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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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