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리스 이정민. ⓒ이정민

잘못 찾아간 강의실

지난 1982년도에 태어난 정민은 특수학교인 부산 혜남학교에 입학할 때 휠체어가 없어서 아기 보행기를 타고 학교에 갈 정도로 지금처럼 장애인복지가 일반화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민의 고등학교 때 꿈은 화가였다. 재능은 있었지만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해 도전조차 못했다.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정민은 뭐라도 배워 야겠다는 생각으로 검색을 하다가 컴퓨터 영상편집을 발견하고 2005년 부산시청자미디어 센터 교육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수업 첫날, 강의실에 들어간 그는 수업 시작 10분 만에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집실로 들어가야 하는데, 녹음실로 잘못 들어간 것이다. 녹음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편집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중간에 나가는 것도 머쓱했고, 듣다 보니까 재밌었다. 컴퓨터 프로그램 ‘큐베이스’ 로 음을 만들어 내고, 이어 붙인다는 게 매력 적이었다.

그는 비장애인들과 함께 음악미디어 수업을 계속 들었다. 결석은 물론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 강의는 유민형 동의대 실용음악과 교수가 맡았는데 교육 과정이 끝날 때쯤 ‘음악을 하고 싶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유민형 교수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터라 제자를 소개해 주시어 7개월 동안 개인지도를 받았다. 그후 혼자 기존 곡들을 카피하며 반복하여 연습하였다.

작업실에서. ⓒ이정민

작곡을 하다

학창 시절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그 음악만 1년 내내 들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집중도가 높았는데 음악을 배우다 보니까, 새로운 곡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7개월간 음악을 배운 후 작곡을 시작했다.

음 하나 입력에 10분이 걸린 적도 있다. 좋은 음이 생각나도 기록하는 것이 어려워서 좌절을 느끼곤 하였다. 어렵게 70곡을 만든 후 데모CD에 담아 유명 연예기획사에 보냈다. 반응이 없었다. 연예기획사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지인이 어렵게 소개해 준 유명 음악감독을 만났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나왔던 음악감독은 그를 보자마자 표정을 구기면서 험한 말을 했다. 하지만 정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2009년, 작곡가 등록을 하고 싶어서 음원 〈몽(夢)〉을 제작하였다. 그가 작사·작곡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민중가요를 부르던 언더 가수 박원진이 노래를 불러서 나온 첫 작품이다. 녹음실을 잡을 수 없어서 집에서 녹음을 하여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5곡이 수록된 그의 소중한 작품이다.

2009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우리나라에서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어린 정민을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그것이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키워 주었다. 아들이 원하는 것이면 힘닿는 대로 지원해 주시던 아버지를 잃고 그는 더욱 강해졌다. 이제부터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 부산 토박이인 그는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 서울로 엄마와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일주일에 두 번씩 KTX를 타고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음악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행사에 참여하다 보면 기차를 놓쳐서 하룻밤 묵을 곳을 찾느라고 고생을 하였기에 서울로 가서 살자고 졸랐다. 서울로 가야 제대로 된 음반을 내고 당당히 작곡가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란 꿈에 부풀어 있었다.

작업실에서. ⓒ이정민

온라인에서 소통

그는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아프리카TV에서 개인방송을 시작했다. 기획사를 통해 음악을 알릴 수 없다면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작곡하는 모습을 실시간 으로 보여 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작곡가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로 예명을 만들었다. ‘폴라리스’, 북극성을 뜻한다.

어렸을 적 가족 여행을 하다 본 북극성에 영감을 받아 지었다. 가수에게 곡을 주는 게 작곡가인데, 그는 신인이다 보니 곡이 팔리지 않았다. 때문에 곡을 가수에게 주는 것보다 앨범을 내는 게 빠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어서 이정민은 2011년 4월 온라인상에 힘겹게 작곡을 하게 된 사연과 함께 그 노래를 불러 줄 가수를 찾는다는 영상을 올렸는데 이 영상은 네티즌들을 통해 ‘휠체어 작곡가’로 순식간에 퍼져 화제를 모았다.

그것을 본 작곡가들이 편곡을 도와주겠다고 연락을 주었다.

방송에까지 소개가 됐지만 가수를 찾지 못했다. 이정민은 다시 한 번 영상을 만들어 사이트에 올렸고 이를 본 가수 우은미와 고은이 트위터를 통해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앨범에 참여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타이틀곡 <언젠간>은 가사가 ‘나를 좀 기다려 달라’는 내용인데, 부산에 있는 모든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등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올 때 만든 곡이다.

앨범 녹음할 때가 장마철이었는데, 녹음실이 지하에 있었다. 비 오는 데 지하까지 내려가고 올라오는 게 힘들었지만, 가수들이 너무 잘해 줘서 녹음이 빨리 끝날 수 있었다고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2011년 가을 이정민 1집 앨범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기초 작업을 이정민이 해냈지만 음반 제작을 위해 기획사가 필요했다. 기획사를 찾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모두 돈을 요구하였다. 이정민은 전 재산에 해당하는 3천만 원을 들여서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획사는 그가 장애인인 것을 이용해 가수들에게 출연료도 주지 않고 재능기부로 처리했고, 음반이 나온 후 방송사 심의나 홍보를 해 주지 않았다. 경험이 전혀 없던 이정민은 속수무책이었다.

정규 1집 <언젠간>은 가수 우은미와 고은 등 객원 가수가 6명이 참여하여 만든 멋진 앨범이 었지만 홍보를 하지 못해 방송사에서 노래를 틀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정민은 자기가 직접 방송사를 찾아다녔다. KBS는 장애인방송인 3라디오가 있어서 장애인에게 친절했다. 그래서 <내일은 푸른하늘>에 출연하여 PD들에게 음반을 전달하고 심의실에 가서 음반 심의를 신청할 수 있었다.그런데 MBC는 예약 없이 방송국 안으로 진입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밖에서 기다리다가 물류차량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옆에 바싹 붙어서 몰래 들어갔다. 마침 유치원 아이들이 방송국 견학을 위해 줄을 서 있어서 가족인 것처럼그 무리에 섞여서 MBC 방송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보도자료를 신문사에 보내면 기사를 실어 주는 줄 알았지만 신문사 벽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고마운 기자도 있었다. 연합뉴스 서정민 기자는 그와 이름이 같다는 인연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었다.

작곡가 이정민이 첫 앨범을 내고 한 인터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번 앨범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았어요. 몸이 불편한 제가 만든 노래를 듣고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북극성같이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싶어요.”

작업실에서. ⓒ이정민

음악 산업은 무서운 정글

정민은 작곡가로서 힘든 것은 산업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형 기획사들은 작곡가도 기획사 소속으로 운영을 한다. 앨범 작업을 하며 여러 명의 가이드 보컬을 만났는데 그가 기획사에 속하거나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어서 꺼려했다.

<언젠간> 이후 2013년 'polaris'라는 싱글을 가수 다애가 참여해서 발매하였다. 자신의 곡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획사 없이 최소한의 비용 으로 제작하였다. 모두가 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자 자신의 예명을 타이틀로 하여 자기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만들어 놓은 곡은 많은데, 노래할 사람을 못 구하고 있어 요. 티파니 씨나 신혜성 씨의 음색을 좋아해요. 같이 작업하고 싶은데, 그런 날도 오겠죠?”

그는 저작권협회에 작곡가 등록을 했지만 저작권료는 거의 없다. 음원 수입으로 생활을 할 수있기를 바라며, 유명 가수에게 곡을 주고, 영화·드라마 OST를 만드는 게 꿈이다. 최종 꿈은 연예기획사를 차려서 가수 및 연기자를 배출해 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공익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즐긴다. 2018평창동계패럴림픽을 문화 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kt나눔퍼스트UCC운동본부에서 펼친 휠체어퍼스트(Wheelchair First) 운동을 진행했는데 그 캠페인송 ‘내가 당신 뒤에’를 작사·작곡하여 성악가 황영택과 가수 다애가 함께 불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Wheelchair First Song 내가 당신 뒤에

자--아무리 급-해--도 주의를 둘러봐요 천천히 잠시만 멈춰 양보, 배-려 Wheelchair First 자--모두 다 함께해-봐-요 장애인 먼저, 우 리 가내가 당신 뒤--에 Wheelchair Fir-st- Wheelchair Fir-st

그는 작곡, 작사, 프로듀싱 다 한다. 청력이 좋아서 영화, 다큐 등 더빙 녹음, 보컬 녹음 등의 디렉팅을 꾸준히 해 왔고, 공연 스태프 등 음악과 관련된 일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최근 (주)시산트뮤직의 음원사업에 합류하며 저작권 및 판권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였다.

이정민은 작곡가로 일하기 위해서는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녹음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녹음 실은 사용료가 비싸고, 저렴한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여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학로에 이음센터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당연히 녹음실이 있을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녹음실이 없어서 실망 했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였다.

엄마와 누나와 함께. ⓒ이정민

이정민(polaris)

2017 스페셜K어워즈 YOUNG ARTIST 수상, 2009 몽(夢) 1집 발매 2011 Polaris이정민 1집 <언젠간> 발매 2013 Polaris이정민 싱글 발매.

2006 드라마 <누나> OST 참여, 2007 드라마 <못된 사랑> OST 참여, 2007 강민경 이혜리(데뷔 전 지금의 다비치) 보컬트레이닝, 2008 미디어센터 영상편집 강사, 2008 동의대학교 실용음악과 대중음악 특강, 2008 ~2010 슈퍼스타K 시즌1·2 경상도 지방 심사 참여, 2009 부산대학교 음악동아리 특강, 2009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대한민국 아티스트(작곡, 작사, 가수) 등록, 2009 다큐멘터리 영상 제작 <아름다운 날들>, 2010 서울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주최 feeling & music 강사 2014 인제대학교 특강(특수교육과·사회복지과), 2015 이음센터 홍보영상 제작, 2016 이음센터 조금다른밴드 오디션 심사위원, 2018 Wheelchair First 캠페인송 제작 작곡 작사 프로듀서, 2022 고려대학교 음악동아리 특강 참여.

각 공연 스태프, 연예기획사 및 녹음실 디렉팅, 영화·다큐 더빙 녹음 디렉팅각 연예기획사 연습생 트레이닝, 공연 및 결혼식 MR·AR 제작 및 편곡, OST 디렉팅·편곡 참여, 앨범 가이드 및 디렉팅, 각 오디션 현장 심사위원 및 평가.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