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화백.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7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난 김미경은 생후 한 살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에 보조기인 브레이스를 착용하고 있다.

여섯 살이 될 때까지는 영주의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다. 동네 아이들한테 놀림을 당했지만 외가댁에서 잘 보살펴 주시어 움츠러들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두 다리를 다 못썼지만 외할머니께서 좋다는 음식이나 약을 많이 먹여 키워 주셔서 그런지 왼쪽 다리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지만 시골이라서 자연이 놀이터였다. 나무타기를 즐기며 나무, 꽃, 새들과 친구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현재 작품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시골 생활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다.

초등학교 때 언니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 같이 다녔는데 학원에 가기 싫어서 땡땡이를 치다가 엄마한테 크게 혼나고는 미술학원으로 옮겼는데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미술학원에는 열심히 다녔다.

Symphony of the Spirit 시리즈1.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사춘기는 책과 함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춘기가 찾아왔다.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잠깐의 방황을 겪었지만 독서가 치유가 되는 시간이었다. 방에 틀어박혀 모든 종류의 책을 읽었다. 소설이나 위인전, 교양서, 하다못해 세계 여러 곳을 소개하는 여행 잡지까지 읽으며 사춘기를 책과 함께 보냈다.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김미경의 작품에는 물론 긍정적인 삶의 바탕이 되었다.

예원중학교를 거쳐 서울예고로 진학을 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화가의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장애가 있는 딸의 미래를 염려하여 전공을 정하는데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 반대로 법학을 공부하시고 평생 공직에 있었던 분이지만) 자식의 예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 주는 데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장애가 있다고 미경을 특별히 보호해 주거나 다른 형제들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차별 없이 키우셨다.

이러한 가족의 뒷받침이 힘이 되어 집이 있는 강남에서 세검정 서울예고까지 무거운 화구를 들고 등하교를 하며 힘든 줄 몰랐다.

Symphony of the Spirit 시리즈2.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결혼과 미국 유학

홍익대학교 미대에 입학하여 미팅에서 만난 남자와 치열한 연애를 하고, 졸업 후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김미경은 연애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 당당함이 매력적이었다고 남편은 훗날 고백했다. 남편은 김미경보다 한 살 위인 경영학도, 그들은 전형적인 캠퍼스 커플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시댁에서 반대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시어머니께서 저를 좋게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많이 하셨다고 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시부모님은 저를 항상 지지해 주셨어요.”

결혼 후 그녀는 남편과 미국 유학을 떠났다. 오래전부터 유학을 생각하고 준비를 했었기 때문에 결혼으로 유학이 유보되어 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부부 가운데 어느 한쪽이 희생하는 유학도 원치 않았다. 그들은 함께 공부하는 유학 생활에 서로 동의했다.

미국은 학교 계단이나 건물 출입문 등 장애인에 대한 편의시설이 잘 돼 있어서 생활하는 데는 오히려 편했다.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은 장애로 인한 불편함보 다는 현실적인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유학생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남편과 함께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부딪쳤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 없는 낯선 도시에서 어렵게 공부를 하는 유학생이었지만 임신을 미루지 않고 아기가 생겼을 때 축복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낳아 키웠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끊지 않고 했으며 아이에게 젖 먹이는 것도 남편과 강의 시간을 조정해 가며 공강을 이용해서 수유를 했다.

화장품 방문판매, 운동화 가게의 파트타임 점원, 세탁소 다림질, 미술강사 등 정말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세상에 대해 용감해지고 더욱 당당해질 수 있었다. 고된 삶이었지만 이겨 낼수 있었던 것은 미국 유학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미술 세계에 눈을뜰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실기 위주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데생에는 자신이 있었죠. 미국 학생들과 수업을 받는데 데생을 너무 못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잘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 외국 학생들의 작품 내용이 달라지더군요. 그들은 사고방식이 열려 있어서 틀에 갇힌 저와 달랐죠.”

Symphony of the Spirit 시리즈3.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귀국 후 강의와 작품 활동

김미경은 6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90년에 귀국했다. 그때가 서른 살이었다. 그 후 17년간 홍익대, 경원대, 명지대, 우석대, 강릉대, 전북대 등 전국적으로 강의를 다녔다. 걱정스레 강의를 맡겼던 학교 관계자들이 그녀의 성실성과 열정에 많은 격려를 해 주었다.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학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됐어요. 스승이 말로만 떠들면 본보기가 되지 않잖아요. 두 배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학생과 저 서로에게 모두 자극이 됐죠. 특히 강릉으로 강의를 다닐 때는 이동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어 작품 활동에도 많은 영감을 얻곤 했답니다.”

김 화백은 강의와 함께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국내 전시회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회를 많이 열었다. 이런 열정적인 활동으로 2011년 시카고아트페어에 참가했을 때 『시카고 타임즈』 표지 작품으로 김미경 화백이 소개되어 본인도 놀랐고, 각국에서 온 화가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2004년 현대미술 정예작가 대상, 2006년 한국청년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표현 기법은 아주 특이하다. 붓을 사용하지 않고 바닥에 깐 캔버스 위에 피그먼트와 미디엄으로 직접 제조안 물감을 부어 캔버스를 위아래, 각도에 따라 움직이며 제작한다. 색깔을 정하여 각도를 맞춰 뿌리고 닦아 내기도 하고 흘리기도 한다.

“색을 쌓아 간다 생각하시면 돼요. 색을 올리고 쌓고 층층이 쌓는 느낌, 단숨에 칠해서 나온 느낌이 아니라 쌓아 가면서 색층의 묘한 느낌이 생기죠.”

피그먼트라는 재료를 사용 하는데 일단 마르고 그 위에 다시 그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재료 자체가 마르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다리가 불편하여 움직이 는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 남들보다 두 배 노력이 필요하 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생명력 있는 그림이기를 원하고 그런 맥락에서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자연의 꽃이나 나무의 이미지를 주로 표현하는김 화백은 인간의 삶이 자연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큰 스케일의 작업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살아 있는 것 자체에 대한 감사함에 대해서요.

그림에는 작가의 행동이나 생각, 철학, 사고방식이 다 드러나지만 완성된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오로지 감상하는 사람의 해석에 달려 있어요.”

최고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화가로서 최고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김 화백은 하나하나의 작품과 날마다 찾아오는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라고 소박한 삶의 소신을 밝혔다. 1961년생인 김 화백은 예전에는 잘 걸어다녔는데 환갑이 넘으니까 근육이 약해져서 왼쪽 다리 무릎이 휘어지고 있어서 이제는 걷는 일이 쉽지 않아 지팡이를 사용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남편은 해외 근무가 많았고, 항상 바빠서 가사일과 학교 강의 그리고 작품 활동을 혼자서 해야 했다. 강의를 할 때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밤 11시가 되어야 오롯이 자기 시간이 되기에 새벽 3~4시까지 그림을 그리느라고 잠을 몇 시간 자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

강사 생활을 하며 전임교수 초빙공고에 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괘념치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통해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화가로서 소임을 다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해외 전시회에서 더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장애인계와 먼 것이 아니라 기회가 없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녀가 장애인계와 먼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녀는 1998년 한국소아마비협회 정립회관에서 제정한 삼애봉사상 수상 자이다. 장애인 친구들과 만나 장애인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기도 하였지만 커피 한잔 여유롭게 마실 수 없는 분주한 생활에 쫒겨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장애인예술센터 건립 타당성 조사 회의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예술과 장애인 둘 다를 모르는 담당 공무원과 둘 가운데 한 분야만 아는 장애인예술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답답함을 경험한 후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장애인예술정책이 나오려면 장애예술인 당사자 들의 현장 얘기를 들으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는데 결론을 정해 놓고 억지로 그결론에 도달하려는 토론이 의미가 없었다.

일반 미술계도 마찬가지이다. 공모사업으로 작품을 하려면 그림보다 서류 작성 능력이 더있어야 한다. 그래서 받는 사람이 계속 받는 경향이 있다. 최근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긴 했지만 트렌드 즉 유행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해서 다양한 작품들이 묻히고 있다. 미술계가 이러하니 장애인미술계는 어려움이 더 많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기에 그저 답답하다.

1985년생인 딸은 한창 사교육 바람이 불 때 중고등학교에 다녔지만 그녀는 딸에게 고된 학원순례를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도록 하였다. 딸은 대학 시절 포켓볼 아마추어선수를 하다가 한국에서 파견근무하던 미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대학 2학년 때 결혼했다. 김 화백은 미국인 사위를 보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딸의 선택을 존중한다. 딸이 시집을 빨리 간 덕분에 벌써 손주가 세 명이나 된다.

현업에서 은퇴한 남편은 현장 경험을 살려 강의를 하고 있는데 최근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많아지자 이제는 역할이 바뀌어서 작품을 하느라고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내를 기다 리며 가사 일을 돕는다. 그래서 김미경 화백은 이제는 부부애가 아니라 전우애로 더 끈끈해졌 다며 웃었다. 남편은 언제나 그의 작품을 솔직하게 평가하는 훌륭한 관객이기도 하다.

이제 김미경 화백은 총총거리며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에 여유롭게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화가라는 정체성에 장애인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작은 힘이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Symphony of the Spirit 시리즈4. ⓒ한국장애예술인협회

2021년 갤러리초이에서 가졌던 김미경 개인전의 작가노트‘Symphony of the Spirit’에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궁극적으로는 작품 안에서 자연과 자연의 질서와 그 축소판인 인간의 삶, 이성과 감성에 의한 관계성을 살아 숨쉬듯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작품 제목인 ‘Symphony of the Spirit’에서 보여 주듯 하나뿐인 존재로서의 인간 개개인의 희로애락과 운동태인 자연이 함께 화면 안에서 삶의 교향악으로 연주되며 시각을 넘어 심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미술평론가 황인이 쓴‘빛과 물질이 흐르는 시간의 끝과 그 너머’라는 제목의 김미경 개인전 작품 평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김미경의 화면은 깊다. 피막처럼 매우 얇은 색면들의 중첩일 뿐인데 무한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 깊이는 물감을 잔뜩 묻힌 붓으로 그려 나간 그림에서 느껴지는 깊이감과는 전혀 다른 신묘한 경지다.

대개의 회화는 붓을 통해 이편의 신체가 저편의 세상과 만난다. 붓은 세상의 이편과 저편의 세상을 이어 주는 소통의 메신저다. 김미경의 경우, 붓의 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필세가 매우 미미하다. 대신 물감을 묽게 하여 유체(流體) 상태로 만든 다음 캔버스의 기울기를 조절하며 중력에 의해 그림이 그려지도록 한다.

시간이 가역반응으로 거꾸로 흘러가는 일은 자연에서는 불가능하다. 조형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그러기에 시간이 질서정연하게 흘러가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꽃의 형상과 시간의 흐름이 단속적이면서도 때때로 그 흐름들이 뒤엉켜 버리는 김미경의 꽃 비슷한 조형은 전혀 다른 감각으로 읽히는 것이다. 캔버스 위의 꽃은 자연의 꽃이 아니라 인공의 꽃이고 바로 미술이라는 사유가 자아 낸 꽃이라는 걸 김미경의 작품들은 웅변하고 있다.

Symphony of the Spirit 시리즈5.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김미경

1989 뉴욕 Pratt Institute 대학원 회화과 졸업(M.F.A.) 1984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B.F.A.) 1980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수상

2004 현대미술 정예작가 대상 2006 한국청년작가상, KCAF

개인전

2021 갤러리초이(서울) 2020 아트스페이스KC(판교), Art M(광명) 2019 갤러리피나코텍(뮌헨, 독일) 2017 박영덕화랑(서울) 2015 갤러리 아쉬서래(서울) 2013 신화갤러리, 피그먼트 프린트, 랜드마크 센츄럴(홍콩), 리갤러리(베를린, 독일) 2012 박영덕화랑(서울), 신화갤러리(홍콩), KCAF, 예술의전당(서울) 2011 International Messe fur Klassische Moderne und Gegenwartskunst, Karlsruhe(독일), KCAF, 예술의전당(서울) 2010 International Messe fur Klassische Moderne und Gegenwartskunst, Karlsruhe(독일), KCAF, 예술의 전당(서울), 리갤러리(베를린, 독일) 2009 박영덕화랑(서울), 갤러리피나코텍(뮌헨, 독일) 2008 KCAF, 예술의전당(서울), International Messe fur Klassische Moderne und Gegenwartskunst, Karlsruhe(독일) 2007 SFAS, 예술의전당(서울), 박영덕화랑(서울), KCAF, 예술의전당(서울), International Messe fur Klassische Moderne und Gegenwartskunst, Karlsruhe(독일), 갤러리피나코텍(뮌헨, 독일) 2006 KCAF, 예술의전당(서울) 2005 KCAF, 예술의전당(서울), 화이트박스갤러리, 샌 페드로, 캘리포니아, 가나인사아트센타(서울), 스페이스함(구 렉서스갤러리, 서울) 2003 갤러리아트링크(서울) 2001 모인화랑(서울) 1999 갤러리메이(서울) 1996 조성희화랑(서울) 1994 갤러리포커스(서울) 1993 갤러리이콘(서울) 1992 갤러리2000(서울) 1991 윤갤러리(서울) 1989 바탕골미술관(서울) 1988 Higgins Hall(뉴욕)

단체전

2022 ‘For the Peace of Mind’, 갤러리마노, ‘광야에서’, 새문안아트갤러리 2021 PLAS2021(조형아트서울), 갤러리초이, COEX, 포용적 예술 전, 대구예술 발전소, ‘BLUE ROOM’ 전, ‘홍익루트’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020 ‘봄바람 휘휘호호’ 전, 신세계갤러리, ‘각각의 색’ 전, 대구예술발전소, PLAS2020(조형아트서울), 갤러리초이, COEX, ‘여백’ 전, 갤러리마노, FREEDOM 2020 아듀 디스토피아전, 아트셀시, 서울 외 300여 회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상업은행, 정부미술은행, 오시리아스위첸마티에, 주한모나코 영사관, Galaxy Hotel, Macau, HSBC Private Bank(Suisse)SA, HK Office, HongKong, New World Development, HongKong, Pratt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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