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호 수어통역사. ⓒ권동호

코로나19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청각장애인의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적 브리핑 때 발표자 바로 옆에 수어 통역사가 동반한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약칭 한국수어법)이 제정되며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게 되었다. 법이 제정되면서 수화가 수어로 바뀌었으며 따라서 수화통역사가 수어통역사가 되었다. 36만 농인에게는 큰 성과이다.

수어의 구성 요소에는 손동작 외 ‘비수지(非手指)’ 기호가 있다. 즉 얼굴 표정을 비롯해 입술 모양, 눈썹의 움직임, 몸의 방향까지 섬세하고도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모여야 정확한 수어가 완성된다. 수어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얼굴이 반이라는 게 상식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어는 손으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서 수어통역사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챌린지 모습. ⓒ권동호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모아지는 정부의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 정부 관계자들만큼이나 익숙해진 얼굴들이 있다. 바로 발표자 옆에서 수어로 브리핑 내용을 전하는 수어 통역사들이다. 그 가운데 권동호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15년차 수어통역사 권동호 씨도 브리핑에 최대한 집중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재난상황의 실시간 중계의 특성상 브리핑의 수어통역은 동시통역으로 진행된다. 브리핑에 새로 등장하는 단어나 의학 관련 전문용어의 수어 표현을 통일하는 것도 수어통역사들이 고민하는 일이다.

통역사들이 서로 다른 표현을 쓸 경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 때마다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 수어통역사, 수어교원, 언어학 전공자 등 수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새수어모임’을 통해 권장안을 마련한다.

‘새수어모임’은 수국립국어원에서 수어통역의 배정과 지원을 담당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처럼 사회적인 파급력이 큰 사안이 터졌을 때 이와 관련된 수어를 신속히 마련, 보급하기 위해 발족했다.

‘코로나’부터가 낯선 데다가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초반에는 부르는 이름이 많아 수어에서도 여러 가지 표현을 썼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코로나19’ 수어 표현은 수어통역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우한 지명을 본따 ‘우한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썼지만,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모양으로 사용하고 있다. (‘19’ 동시통역 시 불필요하여 생략)

브리핑에 등장하는 어려운 의학용어도 통역사들을 애먹이는 요소이다. 통역사의 재량에 따라 문자 그대로를 ‘지문자’(자음과 모음의 수어 표현)로 전달하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의미를 쉽게 풀어서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예를 들어 ‘자가 격리’는 ‘사람을 집에 격리’, ‘코호트 격리’는 ‘병원에 집단으로 격리’로 풀어 쓰는 식이다. 단어는 짧은데 길게 풀어서 표현하다 보니 브리핑에 이 같은 의학용어나 전문용어가 자주 등장할 때에는 통역사의 몸 동작이 더욱 빨라진다.

코로나19 정례브리핑 모습. ⓒ권동호

Q.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에 헌신하는 의료진들을 격려하는 캠페인 ‘덕분에 챌린지’에 캐릭터 아기상어, 배구선수 김연경, 수어통역사 권동호를 지목할 정도로 권동호 수어통역사의 역할이 크다. 인기를 실감하는가?

아무래도 방송 매체를 통해 자주 노출이 되니까 농인 분들이 친근하게 대해 주신다.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듯이 반가워해 주시니까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장 큰 인기는 우리 가족한테 느낀다. 수어통역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탐탁치않아 하셨다. 직업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

Q. 덕분에 챌린지에 대통령 지목을 받고 어떠했나?

얼떨떨했다. 왜 나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어통역사가 재난현장에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 려는 의미가 있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에 지목받아 영광스럽고 인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Q. 수어를 처음 접한 것은?

가족 중에 농인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해서 우연히 수화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어 수화를 배우며 청각장애인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다. 농인들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부터 수어통역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제대로 통역해 드리고 싶어 열심히 수어를 배우고 연습하며 수어가 나의 또 다른 언어가 되었다.

Q. 수어통역사는 직업으로서.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현장으로 나갈 것이냐 수어통역사가 될 것이냐를 결정하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농인과 동행하여 병원도 가고 은행도 가고… 장애인복지 관련 모임이나 세미나에 참여하여 수어통역을 하면서 나는 이미 농인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2008년 용산수어통역센터에서 수어통역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 당시는 수어통역사를 직업으로 보지 않고 그저 봉사활동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주변에서 ‘좋은 일을 한다’며 칭찬을 하였는데, 항상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2012년부터 프리랜서 수어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농인에게 매일,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 2013년부터 방송 수어통역에 뛰어들었다. 센터에 근무할 때는 작은 봉급이지만 정확히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었는데 프리랜서가 된 후는 수입이 불규칙 하여 한동안 고생했다.

Q.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으로 달라진 것은?

수어가 한국언어로 인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농인들은 수어통역을 받을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자연히 수어통역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모든 공적인 행사에 수어통역이 의무화되었고, 방송사에서도 수어통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Q. 이번 코로나19 브리핑으로 달라진 것은?

그동안 캡슐 속에 갇혀 있던 수어통역이 화면의 2분할로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수어통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캡슐 수어통역은 사이즈가 작아서 농인들이 TV앞에 바싹 붙어 앉아서 봐야 판단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멀리에서도 수어가 읽히는 것이다.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은 한글자막보다 수어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수어통역이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OCN에서 수어통역이 삽입된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농인들이 참 좋아하시겠구나 싶어 반가웠다.

Q. 코로나19 브리핑 때 수어통역사는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아서 걱정이 되던데.

그래서 개인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수어통역사가 확진자가 되면 수어통역사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수어통역사 전체의 문제가 되고 더 나아가 농인에게도 누를 끼치게 되겠기에 어디를 못 간다.

유아교육을 전공해서 그런지 얼굴 표정에 티 없는 순수함이 매력적인 권동호 수어통역사는 품절남이다. 부인은 장애인 쪽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수어통역사인 남편의 일에 적극적인 지지자이다.

권동호는 올해 15년 차 수어통역사로 그의 인기 비결은 친밀함과 정확한 전달력이다. 수어통역사는 직업적으로 좋은 장점이 많다면서 2006년부터 국가공인 수어통역사 시험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국가가 인정하는 전문직이라고 수어통역사라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청각장애인이 법정 용어이나 권동호 수어통역사가 농인이라는 호칭을 원하여 본 기사에서는 농인으로 사용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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