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요정 이지원. ⓒ이지원

부모 초년생에게 닥친 시련

여느 부부들처럼 결혼 후 가장 기쁜 소식은 임신이고 가장 큰 일은 출산이었다. 그런데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나도 아기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유도 분만을 하다가 결국 수술을 했다. 그렇게 어렵게 2000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아기가 이지원이다.

그런데 의사는 초년생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기가 탯줄을 감아서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지원은 선천성 대동 맥협착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좀 더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아니 아무런 문제가 없고 설사 있다 해도 말끔히 고칠 수 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서 서울대학병원으로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검사를 하러 다녔다.

그런데 대동맥협착이 좌우에 나타난다는 더 심각한 진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염색체 이상인 윌리엄스 증후군 증세까지 있어서 평생 낮은 지능과 약한 체력으로 살아야 한다는 감당하기 힘든 진단을 받았다.

“잘 관찰하면서 키우세요. 이런 아이들이 미술이나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지능이 낮은 지적장애라고 해 놓고 무슨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인지 앞뒤 맞지 않은 말이라서 믿지 않았다. 마음대로 울지도 못했다. 부부 외에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원과 각종 치료실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이어갔지만 지원이는 걸음과 언어… 신체 발달이 또래에 비해 늦었다. 사람들이 지원이를 쳐다보면 죄지은 사람처럼 얼른 종종걸음으로 도망쳤다.

지원이의 재능 발견

엄마는 일반교육을 고집했다. 장애인 등록을 거부한 것이다. 지원이에게 장애라는 굴레를 씌워주면 딸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학교에 보내고 일반학원에 보냈지만 또래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는 지원이가 울다가도 음악을 들으면 그칠 정도로 음악에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악보를 볼 줄 몰라도 한번 듣고 피아노로 그대로 실연하는 절대음감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지원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지만 음악 공부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악보가 없어도 배울 수있는 국악을 선택했다.

지원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공주 박동진판소리전수관에 들어갔다. 전수관에서 길을 찾은 듯 이지원은 판소리의 긴 가사를 한 번 듣고 바로 외우는 재능까지 보이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전수관의 판소리 강사도 감탄할 정도였다.

뛰어난 기억력, 절대음감 등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졌어도 판소리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약한 체력이 문제였다.

결국 중학교 진학 무렵 5년간 열정을 쏟은 판소리를 포기하고 경기민요로 전공을 바꿨다. 경기민요는 자진모리장단을 가장 좋아하는 이지원의 끼와 흥, 재능과 맞아떨어졌다.

장애인 등록을 하다

엄마는 지원의 성장과정에서 상급학교로 진학을 할 때마다 홍역을 치렀다. 고등학교를 예고로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천안에 있는 충남예고 국악 담당 선생님께 상담을 하러 갔다. 그 선생님은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고 지원이라고 하면서 엄마가 욕심을 부리면 아이가 힘들다고 충고해 주었다. 장애 판정을 받고 집에서 가까운 공주여고 특수반에 진학해서 지원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섭섭했지만 돌아오면서 엄마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장애인 등록을 거부한 것이 진정 지원이를 위한 일인지 엄마를 위한 일이었는지 생각하며 반성하였다. 장애는 거부한다고 지워지는 일이 아니었다. 일반학교에서 비장애 아이들과 비교당하며 움츠러들게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장애를 당당히 수용하고 장애아 동들과 함께 어울리며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지원이 장애인 등록부터 하고 공주여고 특수반에 진학시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충남예고에서 뵈었던 선생님이 공주여고로 발령을 받아 오셨다. 바로 박영주 선생님이다.(현재는 세종예고에 근무하심)

동생과 함께 무대에서. ⓒ이지원

민요자매로 활동하며

고등학교 1학년 때 2017년 장애청소년예술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았고, 이어서 제5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스페셜K에서 심사위원장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지원은 장애인단체와 노인복지센터, 특수학교 등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재능기부 활동을 펼쳤고,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발달장애인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2018년 일본 동경골드콘서트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여 한국의 장애인들이 얼마나 당당하게 살고 있는지를 알려 일본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태국·몽골·네팔·오스트리아·체코 등에서 열린 공연에도 참여했다. 소리꾼으로 활동한 10여 년 동안 350차례가 넘는 공연 무대에 오를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대중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동생 송연이 덕이 크다. 언니 지원과 여덟 살차이가 나는 송연이는 엄마와 함께 언니를 따라다니다가 여섯 살 때부터 국악에 관심을 보여 언니와 함께 레슨을 받으며 어느덧 언니의 음악 파트너로 무대에 서고 있다.

장애인 형제인 경우 비장애 형제가 겪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인데 송연이는 오히려 언니 덕분에 국악을 접하고 공연도 하게 되었다고 고마워한다.

송연이는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운영하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에서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재 선발의 전통예술 분야 민요 부문에 최종 합격하여 앞으로 매주 민요, 장단실기, 전통사설연구 등 전문적인 교육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

충남에서 ‘올해의 장애인상(1996년 우리나라가 제1회 루즈벨트 국제장애인상 수상을 계기로 제정한 장애인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한 것은 이지원이 처음이라서 충청남도의 영광이기도 하다.

국악인 송소희 씨를 가장 좋아한다는 이지원은 수상도 기뻤지만 자신의 로망인 송소희 씨와 함께 공연을 한 것이 그녀의 꿈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올해 나사렛대 음악목회학과에 입학하여 어엿한 대학생이 된 이지원은 수상 소감으로‘전 세계 사람에게 아리랑을 들려주고 한국 장애인예술의 우수성과 국악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공주에서 경기도로 매주 한 번씩 레슨을 받으러 온다. 학원을 운영하는 아빠는 짬을 내서 운전을 해 주고 엄마는 민요자매의 의상부터 레퍼토리까지 챙기는 매니저 역할을 한다. 송연이도 자기 길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지원이도 전문 국악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민요자매는 지금도 뛰어난데 더 공부하며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2020년 올해의 장애인상 시상식에서. ⓒ이지원

이지원 주요경력

# 수상

2020 올해의 장애인상 대통령상 2019 제7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경연대회 장예총 상임대표상 2019 대전전국국악경연대회 장애인부 대상 2018 일본동경골드콘서트 15주년 특별상 2018 이음가요제 은상 2017 제10회 전국장애청소년예술제 대상(문체부장관상) 2017 제10화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쿨 대상(교육부장관상)

# 공연

2018, 2020 장애인의 날 정부기념식 축하공연 국악인 송소희와 콜라보 공연 모스틀리필하모닉오케스트라, 가수 김장훈과 협연 충남연정국악원 정기연주회 협연 2018 평창패럴림픽 문화공연 오스트리아, 체코, 일본, 몽골, 네팔, 태국 해외공연

# 방송 등

KBS 1TV <노래가 좋아> 3연승/KBS 국악한마당/KBS 아침마당/KBS 사랑의가족 EBS 희망풍경/국악방송 민요자매와 문어래퍼(고정욱 글, 다림) 동화책 발간 2021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홍보대사/국립충청국악원 공주유치 홍보대사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정단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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