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접근성 현실,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개최했다.ⓒ에이블뉴스

“울퉁불퉁한 흙길로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위험해요”, “리프트가 있었지만, 배터리가 방전돼 공중에 10분간 멈춰 있었어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의 문화재 접근성 문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문화재 훼손’ 입장과 충돌해 장애인 편의 개선이 지지부진한 것.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8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접근성 현실,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에이블뉴스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을 중심으로, 문화재 장애인 접근성 현실을 지적했다. 조선왕릉은 총 20곳으로, 서울 6곳, 경기 13곳 강원 1곳 등이다.

(왼)릉 보행로가 대부분 흙길과 언덕(오)장애인화장실이 너무 좁아 불편한 모습.ⓒ에이블뉴스

먼저 대부분 릉 보행로가 ‘흙길’과 ‘언덕’으로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난관에 빠진다. 전윤선 대표는 “평지는 괜찮지만, 대부분 능이 언덕이다. 정비되지 않는 울퉁불퉁한 흙길과 언덕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구간마다 있다”고 토로했다.

편의시설도 물론 있지만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다. 화장실의 경우 문이 닫히지 않거나 안에 시설물을 잘못 설치해 변기에 접근하지 못한다. 수유실은 턱이 있어 안으로 접근할 수 없거나, 집기들이 있어 휠체어 사용자가 안에서 수유할 수 없는 현실.

전 대표는 “경사로가 있어서 정작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10cm 넘는 턱들이 있다. 경사로를 설치하면 턱도 없는데, 휠체어 사용하는 엄마들의 접근을 막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제사를 관장하는 재실 장애인 편의 부족 문제.ⓒ에이블뉴스

제사를 관장하는 ‘재실’, 능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 등의 경우 문화재 관람 문턱이 높은 부분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전 대표는 “재실 입구에만 경사로가 설치돼 안에 들어갈 수 없고, 정자각의 경우 수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유일하게 접근이 가능한 구리 동구릉 ‘수릉’은 휠체어 이용자 등이 관람할 수 있도록 경사로가 마련돼 있다.

궁 보행로는 대부분 돌로 깔렸다.ⓒ에이블뉴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 궁궐의 장애인 접근도 녹록지 않다.

전 대표는 “궁 대부분 보행로가 돌로 깔렸거나 흙길”이라면서 “문화재인 돌길을 훼손하지 않고 보행 약자가 편리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돌길 위에 매트를 깔던지 등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 대표는 같은 세계문화유산인 일본 슈라성의 사례를 들며 “성 전각 내부에도 접근 가능하게 리프트, 엘리베이터, 경사로 등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다. ‘섬세히 잘 해놨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우리나라도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대구 이상화 고택처럼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비스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개인 또는 소규모로 방문해 문화해설을 들을 때, 다른 관광객들과 같이 듣게 되는데, 우리는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동선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 접근성을 높인다든지, 같이 들을 수 있게끔 동선을 다시 만들도록 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분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마지막 교육 및 서비스와 관련, 무장애 관광 인식개선 교육의 필요성을 들며 “열린관광지 선정할 때 보면, 문화재청 위원들이 문화재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보수적 시각이 있다. 훼손 없이 다른 보완책을 찾아야 하는데,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알아서 하란 식‘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동의대학교 이봉구 교수.ⓒ에이블뉴스

동의대학교 국제관광학교 이봉구 교수도 "얼마 전 경남 김해시 열린관광지 중 하나인 한옥체험관을 방문해 편의시설이 없어 휠체어 사용자들이 참가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면서 "문화재 훼손과 동일한 논리로 접근하는 모습을 통해 보수적 보호·보전주의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만연해 있는지 할 말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마치 관광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문화재의 가치를 모두 훼손한다는 식의 논리는 모든 국민의 문화 향유권 보장을 규정한 헌법 11조,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명백히 배치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교수는 “관광약자들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반드시 문화재의 보존·보호와 상충되지는 않는다는 인식 전환과 문화재가 가진 가치를 공감하고 내면화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 기본적 권리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문화재 관광지 편의시설 설치를 통한 접근성 향상과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궁·능 이외에 다른 문화재 유형에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노태형 팀장.ⓒ에이블뉴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노태형 팀장은 “고궁의 바닥은 울퉁불퉁한 돌로 돼 있어 휠체어 장애인이 밀고 가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고생 고생해서 고궁 앞까지 왔다 하더라도 올라가는 곳이 계단으로 돼 있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문화재 관람의 벽은 여전히 높은 현실을 공유했다.

특히 노 팀장은 2년 전 방문했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회상하며, “감옥이 있는 건물은 계단으로 돼 있어 내부를 전혀 볼 수 없어 일행들의 사진으로 만족해야 했다”면서 “기념관은 리프트가 있었지만, 배터리가 방전돼 공중에 10분간 멈춰 있었다. 내부 진입로 역시 계단으로 황당함의 연속”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노 팀장은 관광약자의 문화재 접근성 보장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 위드 코로나시대에 맞춘 비대면 관람시스템 구축 등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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