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반가운 책 한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농인 부모를 둔 자녀를 일컫는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들의 이야기가 담긴 <우리는 코다입니다>라는 도서였다. 이 책은 4명의 여성 코다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중 이길보라씨는 영화감독이자 작가로 <반짝이는 박수소리>로 장애인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경력이 있어 필자가 한국농아인협회에서 근무할 당시 인사를 나눈 기억이 있다.

이현화씨는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에서 근무하는 언어학 연구자로 한국농아인협회에서 동료로 근무하게 된 인연이 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번에 지면을 통해 알게 된 장애인 인권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황지성씨, 마지막으로 한국 농인 어머니와 미국 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수어통역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수경 이삭슨씨이다.

코다들과 연관된 주제로 논문을 썼던 필자는 코다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코다의 삶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교만함을 반성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우리는 코다입니다>를 통해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코다인 그녀들의 삶의 여정은 필자가 간간이 지켜보면서 이해해 왔던 코다의 삶보다 훨씬 치열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사실 농인 사회에 몸담은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필자도 코다라는 용어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코다들이 농인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수화통역사로 활동하는 코다들을 가끔 볼 수는 있었지만 해외처럼 조직화 되거나 연대하는 모임은 없었다.

필자 또한 코다인 조카들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코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농인 사회가 코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다 토크 콘서트를 계획하여 개최하게 되었다.

토크 콘서트를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코다들은 그 자리가 처음 만나는 자리였음에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지성씨가 말한 것처럼 첫 만남에서부터 ‘코다’라는 동질성을 그들이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토크 콘서트에 연사로 나왔던 코다들을 중심으로 코다코리아가 결성되어 의미 있는 활동들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며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우리는 코다입니다> 도서의 출간이 필자에게도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누구에게도 쉽게 내어놓기 힘든, 어쩌면 숨기고 싶었을지도 모를, 자신만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용기 내어 한 자 한 자 눌러썼을 그녀들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더불어 앞으로 그녀들이 십년 후, 이십년 후, 써내려갈 이야기들이 기대 된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수많은 코다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아직도 소리의 세계와 수어의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는 코다들도 있다.

<우리는 코다입니다>출간을 시작으로 저마다 각자의 삶에서 자신만의 결을 가진 코다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세상에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농인 부모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코다들을 떠올려 본다.

*이 글은 한국농아인협회 전 사무처장 이미혜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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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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