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정명숙, 최종만 부부가 하트를 그리고 있다.ⓒ에이블뉴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결혼 2년차 신혼여행 #생애 첫 여행 #제주의 아름다운 절경 #로맨틱 #성공적. 낮 기온 18도의 포근한 봄 날씨,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펼쳐진 두리함께(주)의 ‘이동약자를 위한 무장애여행 패키지’ 시범운영 팸투어에 함께 몸을 실었습니다. 기자 또한 수학여행 이후 첫 방문하는 제주행에 설렘이 가득했는데요. 우리 일행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모두 ‘엄지척’을 들었습니다.

“제주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리함께(주) 직원들의 환대로 시작된 제주여행.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접근 가능한 여행 패키지’는 관광약자인 장애인들을 위한 전문 관광 상품으로, 장애유형에 맞는 여행으로 구성된 점이 특징입니다. 모두 필요성은 느끼지만, 섣불리 선택하지 못했던 장애인 전문여행,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개조 차량과 함께 스타트 해볼까요?

■5km 해안도로, 휠체어로 즐기는 힐링 명소=장애인들이 제주에 오면 꼭 처음으로 모신다는 곳은 제주시의 숨은 비경 중 하나인 ‘애월 한담 해안도로’입니다. 제주 서부에 위치한 이곳은 휠체어를 타고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숨겨져있던 관광지였지만, MBC 드라마 ‘맨도롱또똣’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며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4명의 전동휠체어 사용 장애인, 1명 전동스쿠터 사용 장애인이 있는데요. 5km 남짓의 해안가를 거닐며 감탄을 내뱉었습니다.

이중 정명숙씨(41세, 뇌병변1급), 최종만씨(42세, 뇌병변2급)는 조금 특별한 부부입니다. “결혼 2년차인데, 신혼여행 겸 왔다”는 명숙씨 부부는 컴퓨터 수리를 해주다가 눈이 맞아 연인이 된 후,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응원해 준다는데요. 돌하르방의 코를 열심히 문지르는 종만 씨의 모습을 보니, 이번 여행에서 좋은 소식이 생길 것도 같네요.

대체로 해안길은 휠체어가 갈 수 있도록 정리가 잘 돼 있는 편이었지만, 아쉬움은 있습니다. 경사로가 심해서 전동휠체어를 뒤에서 밀기도, 끌어주기도 해야 했는데요. 수동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여행을 오면 올 수 없는 코스라고 합니다. 이보교 두리함께 대표이사는 “첫 날 꼭 여행코스에 넣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경사가 급해서 수동휠체어 사용하시는 분들이 오시면 넣을 수 없는 코스”라며 “수동휠체어 사용 분들은 근처 데크가 깔린 다른 코스로 대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위)한림공원 식물원 입출구가 자동문으로 설치됐다(아래)한림공원 용암동굴 입구에 경사로가 미비해 중증장애인들은 바라만 봐야 했다.ⓒ에이블뉴스

■한림공원 용암동굴, ‘경사로’ 있었더라면=제주를 찾은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은 들르게 되는 명소 ‘한림공원’은 총 9개 테마를 담은 대규모 공원입니다. 이국적인 풍취가 물씬 풍기는 야자수 길을 따라 석‧분재원, 재암민속마을, 아열대식물원까지. 한림공원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입장료는 성인 1만1000원, 장애인은 단체 요금이 적용 20% 할인된 9000원이 적용됩니다. 이국적인 야자수와 여러 종류의 선인장, 앵무새와 다양한 돌하르방의 모습까지, 경사로와 평평한 길로 이뤄져있어 장애인들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식물원 입구에는 큰 자동문이 설치돼있어서 전동휠체어 이동이 편했습니다. 휠체어 배낭여행 작가이자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전윤선 대표는 “예전에는 자동문이 없었는데, 자동문이 설치되있어서 너무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마무리 되면 좋겠지만, 아직 장애인 여행객에 대한 배려와 인식은 부족합니다. 한림공원의 하이라이트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용암동굴인 협재굴과 쌍용굴인데요. 동굴로 내려가는 길이 계단으로 이뤄지다 보니, 휠체어는 동굴 입구 앞에서 멈춰서야 했습니다.

“아쉽다”는 일행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동굴 계단을 내려가 보니 동굴 아래에는 넓은 평지로 이뤄져있어 전동휠체어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계단이 경사로로 이뤄졌더라면,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되있었더라면 함께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이 부분은 지역 장애인단체에서 공원 측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굴의 천연 모습을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별 없이 모두 함께 즐기자”는 접근 가능한 관광의 취지에 동참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주차장 입구에 위치한 매우 협소한 장애인화장실도 말이죠.

(위)선녀와 나무꾼에서 생애 처음으로 교복을 입어본 최윤정씨와 나혜리씨(아래)유채꽃과 함께한 최윤정씨와 활동보조인 조성락씨.ⓒ에이블뉴스

■#생애 첫 여행 #엄마와…꿈같은 시간들=“집 떠나 밖에서 처음 자봐요” 중증장애인 최윤정씨(56세, 뇌병변1급)는 제주에 오기 며칠 전부터 너무나 설렜다고 합니다. 여행은커녕, 집밖에서 자 본적도 없는 그녀는 전동휠체어로 집 주변을 돌며 연습까지 했다는데요. 중간 중간 어려움도 많았지만, 연인인 활동보조인 조성락씨의 세심한 도움으로 무사히 여행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화이트데이”라며 마지막 날 공항에서 초콜릿을 쥐어주던 윤정씨.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그녀가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케 하는 나혜리(35세, 뇌병변1급)씨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를 찾았습니다. 옛날 물건들이 많아 신기했다는 ‘선녀와 나무꾼’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았습니다. 특수학교를 다녔던 혜리씨가 생애 첫 교복을 입어보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거든요. 물론 편의시설의 불편함도 많았지만 대구에 돌아가면 꼭 ‘두리함께’를 추천하겠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이런 장애인 전문여행사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엄마가 여행을 좋아해서 언젠가는 덴마크에 가보고 싶어요. 여행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박3일간 제주에서 함께한 여행, 제주 바다의 매서운 바람과 시간 조정 문제로 중간 중간 코스가 조정되긴 했다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야 말로 여행의 묘미 아닐까요? 팸투어에 동행하며 느낀 부분은 여행지역에서 활동보조인을 연계해주는 서비스가 생겼으면 하는 점입니다. 중증장애인 부부인 종만 씨와 명숙 씨의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부족해 불편한 몸으로 서로를 의지해야 했습니다. 지역 장애인단체 등과 연계해 활동보조인이 지원된다면 두 사람이 다시 제주를 찾았을 땐 조금 더 여유로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두리함께’가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하나’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마친 후 “생애 첫 여행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는 참가자들의 메시지에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관광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접근 가능한 여행’이 계속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돌문화공원에서 단체사진.ⓒ에이블뉴스

한림공원 장애인화장실이 너무 좁고 편의가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에이블뉴스

돌문화공원 안 박물관 속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돼있었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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