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란 외이로부터 대뇌에서 소리를 이해하기까지의 청각 경로에 장애를 입어 주로 듣기가 어려운 장애이다. 외이에서 중이까지 소리를 전달하는 경로에 손상이 있을 경우 전음성 난청이라고 하고, 내이와 청신경계의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감각신경성 난청이라고 한다. 청각의 감도에 따라 난청과 농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농과 난청을 모두 포괄하여 청각장애로 일컫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특수교육학 용어사전]

인공와우. ⓒ네이버백과 서울대학교병원

귀의 안쪽 즉 내이에는 달팽이관이라는 청각기관이 있다. 달팽이관이란 달팽이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달팽이관을 한문으로 와우(蝸牛)라고 하는데 와우 질환으로 양쪽 귀에 난청이 발생한 경우 보청기를 착용하여도 청력이 좋아지지 않을 때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하게 된다.

얼마 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한 방송에 수화하는 것이 얼핏 보였다. 그래서 다시 채널을 돌려 자세히 살펴보니 FOX채널에서 ‘크리미널 인텐트’라는 미드 수사물이 막 끝나고 있었다.

그래서 ‘크리미널 인텐트’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날 필자가 본 것은 크리미널 인텐트(Criminal Intent Season 6, Episode 18) 시즌 6의 18화로 ‘사일런스너(Silencer, 소음기)’라는 제목으로 미국 NBC에서 2007년 4월 3일에 방영된 것인데, 아무리 찾아 봐도 다시 방영하는 곳은 없어서 내용은 잘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구글에서 원문을 찾아보았으나 필자의 실력으로는 해석도 안 되어서 지인 중에영어를 제법 하는 이가 있어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구글에서 찾은 영문도 해석해 주었고, 고맙게도 한글 자막을 찾아 주어서 서너 번 돌려 볼 수 있었다.

고렌과 임스 형사. ⓒ크리미널 인텐트

말리아는 토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크리미널 인텐트

‘크리미널 인텐트’는 뉴욕특수수사대에서 육감수사를 하는 고렌(빈센드 도노프리오)과 임스(캐스린 어브) 형사가 ‘진술과 증거로 논리의 모순점을 추리해 범인을 잡는 정통 추리 수사물’이다.

18화 ‘사일런스너’의 시작부분에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한 유아가 사망하여 그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방청객은 청각장애인들인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소음이라며 청각장애인들이 시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 광경은 연극이었다. 이 연극에서 극본을 쓴 사람은 래리였고 주인공 여자 배우는 말리아였다. 다음날 말리아는 닥터 잭 말로리를 찾아 갔는데 말로리는 이미 죽어 있었다.

고렌과 임스 형사가 수화 통역사인 피터 형사의 도움으로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살해된 닥터 말로리는 인공와우 전문의사였다. 용의 선상에 오른 사람은 같은 인공와우 의사지만 서로 견해가 달랐던 닥터 스트라우스와 청각장애인 극작가 래리인데 두 사람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던 중에 연극배우 말리아와 그녀의 애인 토미가 등장한다.

연극배우 말리아는 그날 밤(살인 사건이 일어난 금요일 밤) 래리와 같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토미의 사촌은 그날 밤 토미는 사촌이 낳은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고 기념하는 날이라서 말리아와 같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은 서로 말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고렌과 임스 형사는 토미와 말리아를 같이 앉혀놓고 집요하게 추궁했다. 결국 토미는 말리아가 인공와우 이식수술로 청력을 회복하면 과거에 자신을 홀로 두고 떠났던 누나(인공와우 수술 후 자신을 떠남)처럼 말리아도 자기를 떠날까봐 수술을 못하도록 의사를 죽인 것이었다. 토미의 항변인즉 “의사가 우리 삶을 망칠 권리가 없다. 우리는 이미 완벽하므로 우리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

말리아는 인공와우를 할 필요가 없고 그자는 그럴 권리가 없다. ⓒ크리미널 인텐트

들을 수 있는 아기는 시한폭탄이다. ⓒ크리미널 인텐트

토미는 처음부터 의사를 죽일 생각은 없었고 다만 말리아의 수술을 못하도록 손만 쏘았는데 고함을 질러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토미는 의사의 후두를 망가뜨렸으므로 의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음에도 토미가 보기에 의사의 입이 열려 있었으므로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했기에(토미는 듣지 못하므로) 의사를 완전히 죽여 버린 것이었다.

인공와우 이식수술은 윌리엄 하우스라는 미국의 외과 의사가 1961년 세 명의 난청 환자에게 인공와우를 이식하여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였고 이에 연구를 거듭해 1969년 이식 가능한 달팽이관을 제작하였다. 전기 자극이 뇌 세포를 파괴하거나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1984년 인공와우는 미국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의 승인을 취득하였다. 그 후 인공와우의 기술은 더욱 진보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부터 간간이 인공와우가 시작되었고,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공와우 이식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수술비만 3천여만 원이나 되어 원만한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수술비 때문에도 망설이게 되었으나 2005년부터 보험수가가 적용되어 현재 수술비는 300만 원 정도 든다. 그리고 수술 후에 매핑과 조율 그리고 언어치료를 계속 받아야 된다.

<매핑(Mapping)이란 이식받은 인공와우의 내부 & 외부 장치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듣기 위해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넣어주는 작업을 의미하며 일종의 지도(Map)를 넣어주는 작업이라는 뜻으로 매핑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편집자 주>

청각장애 문화가 공격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크리미널 인텐트

청각장애인은 그쪽 사람들의 소음을 듣고 싶지 않다. ⓒ크리미널 인텐트

‘크리미널 인텐트’를 보면서 토미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한국농아인협회 이미혜 사무처장에게 전화를 해서 ‘크리미널 인텐트’의 내용을 대략 이야기 했다.

이미혜 사무처장은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인공와우 관련해서 살인을 하는 그런 경우는 없지만 인공와우도 개인의 선택이므로 뭐라고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도 매핑 등 언어치료를 받지 않고 그냥 농인(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공와우 수술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수술을 하는 동안에 다른 것을 못하게 된다면서 인공와우 이식수술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인공와우는 난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한다. 그래서 크리미널 인텐트에서 말리아가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해서 청력은 회복하게 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말리아는 인공와우 수술을 하지 못했다. 애인 토미가 말리아가 수술을 예약했던 의사 말로이를 죽였기 때문에.

미국과 우리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문화적 차이는 있겠지만 ‘사일런스너’에는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등장하는데 ‘사일런스너’에 등장하는 30여명의 청각장애인들은 실제로 청각장애인공동체 사람들이라고 한다.

청각장애인의 힘을 외치는 사람들. ⓒ크리미널 인텐트

그리고 ‘사일런스너’에서 청각장애인은 자신들은 완벽한 사람이고, 와우수술로 청력이 좋아진 비청각장애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표현했다. 왜냐하면 언제 자신들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또 하나 청각장애인은 자기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비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소음이라고 했다. ‘소음아 물러가라,’ 그것이 청각장애인의 힘이라고 했다. 그들은 ‘deaf power!’라고 외쳤지만 청각장애인의 힘이란 것은 결국 비장애인 즉 건청인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말이었다.

농인이 인공와우를 하느냐 마느냐는 선택의 문제라고 하지만 농인은 건청인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어 소음이라 하고, 건청인은 농인의 수화를 알아 볼 수 없어 벽을 쌓고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수화 통역자가 있어 농인과 건청인과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지만 ‘크리미널 인텐트’에서 보듯이 건청인과 농인 사이의 불신과 몰이해의 뿌리는 깊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도 ‘크리미널 인텐트’ 같은 청각장애인 살인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농인도 건청인을 이해하고, 건청인도 농인과 농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지 않을까 싶다. 서로 서로의 화합을 위하여.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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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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