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병변1급 작곡가 이정민씨.ⓒ에이블뉴스

“처음에는 ‘장애인 작곡가’ ‘휠체어 작곡가’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너무 그쪽으로만 부각되는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드러내서 음악을 계속 하고 싶은 게 꿈이에요. 언젠가는 후배들도 많이 생기겠죠?”

서울 홍제동 홍성교회 1층에 위치한 녹음실. 전동휠체어에 앉아 음악 작업을 하는 작곡가 이정민(32세, 뇌병변1급)씨의 손이 바쁘다. 2주 뒤면 세상에 나올 정민씨의 싱글1집 앨범을 위한 막바지 작업 중이었다.

고심하고 또 고심하는 정민씨, 그러나 그의 표정은 한없이 기뻐 보인다. 몇 년전 ‘휠체어 작곡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지난 2011년 정규1집 앨범 이후, 구슬땀을 흘리며 첫 싱글앨범을 준비해왔다.

한 자리에서 빛나는 큰 별, 북극성 ‘폴라리스’라는 예명을 갖고 있는 정민씨는 이번 앨범 제목과 곡이름도 ‘폴라리스’로 정했다. 제일 큰 별이 되고 싶은 그의 희망을 담은 미디어 템포곡. 정규앨범을 함께한 인디밴드 커플디의 다애와 인연을 또 한번 했다.

“다애씨는 저번앨범에 함께 참여했던 가수예요. 그때는 2곡정도 불렀는데, 제 곡을 소화를 잘 하더라구요. 같이 작업하기도 잘 맞고 해서 또 한번 같이 하자고 했어요. 이번에도 역시나 곡이 잘 나왔어요. 밝은 미디어템포곡이예요.”

정민씨는 대한민국 제1호 휠체어 작곡가이자, 뇌병변1급 작곡가다. 물론 최초이자, 유일하다. 이제 막 대중들에게 선 지 2년. 그와 음악의 인연은 8년전으로 돌아간다.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던 24살 이었던 정민씨, 그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하며 자연스레 화가로서의 길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뇌병변 장애인. 현실의 벽에 부딪혔던 그가 플랜B로 선택한 것은 컴퓨터 편집 작업이었다.

무작정 편집을 배우려고 일반인 상대로 교육을 진행하는 부산시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우연의 장난이었던걸까. 강의실을 잘 못 들어가는 바람에 얼떨결에 음악 수업을 듣게 됐다. 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져들었고. 그날로 음악의 길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당시 동의대학교 실용음악과 유민형 교수가 사운드교육을 하고 계셨어요. 3시간정도 진행된 수업이 끝나고 유 교수가 저에게 조교 겸 학생으로 배워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드라구요. 제가 음악에 소질이 있어보였나봐요. 그 길로 1년동안 개인레슨을 배웠고, 그 후로는 쭉 혼자 독학으로 공부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며, 자신의 감성을 바탕으로 그의 방에서 70곡의 음악을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부산은 작곡가가 될 정민씨에게 너무 작았다. 곡을 쓰고 데모테이프를 기획사에 끊임없이 보냈지만, 인지도가 전혀 없는 ‘햇병아리 작곡가’에게는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

결국 본격적 음악의 길로 나서기 위해 서울행을 결심했다. 2010년 짐을 싸고 서울에 오게된 그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기획사 투어에 나섰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음악을 알아줄 기획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역시나 빈번히 퇴짜.

트위터를 통해 지난 음반 작업에 참여한 가수 우은미, 고은과 함께(위)2011년 발매된 이정민씨의 정규1집 앨범(아래).ⓒ미니홈피

“처음에는 소녀시대, 아이유, 브라운아이드걸즈 등 유명한 가수들의 기획사를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스케쥴이 안 된다’ 등의 이유로 퇴짜를 다 당했죠. 아이유의 경우는 ‘다음에 해보자, 기다려보라’고 했는데, 당시 확 떠버려서 아쉽게 불발됐어요. 그러던 중 대중들에게 인터넷으로 알리자란 또 다른 생각이 들어서 트위터, 인터넷방송 등을 이용해 저를 홍보하기 시작했어요.”

트위터(@ComposerLJM)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음악도 나누고, 노래를 불러줄 가수를 찾는다는 글을 올리자 의외로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직접 먼저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찾아온 가수와 그의 사연을 접한 작곡가 박지호, 김형민씨가 편곡을 돕겠다고 나서기 시작한 것.

그렇게 그의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정규앨범 7곡은 만들어졌다. 특히 타이틀곡 ‘언젠간’을 열창해준 슈퍼스타K2 출신 가수 우은미양, 먼저 손을 내밀어준 고은씨 등이 외로웠던 정민씨의 반짝이는 ‘폴라리스’가 돼줬다.

이후 또 다시 시작된 그의 도전. 5월말 발매를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싱글앨범 1집, 비록 1곡의 음악 뿐이지만, 그의 피와 눈물이 섞인 소중한 앨범이다.

“앨범을 계속 내고 싶지만, 앨범낼 때마다 경제적인 이유로 너무 부담스러워요. 3000만원 정도 들었는데, 음악계에서 그건 솔직히 껌값 수준이거든요. 특히 이번 싱글앨범은 기획부터 제작, 홍보까지 모든 걸 제가 하려고 하다보니까 너무 힘든 부분이 있어요. 다시 작곡하라고 하면 안 할 거 같아요.”

장애인으로 음악을 시작한지 벌써 8년. 그에게 ‘장애’라는 타이틀은 음악의 길에 들어서면서 편견이 됐을지, 도움이 됐을지 너무 궁금했다. 정민씨는 딱 잘라서 ‘싫었다’고 답변했다.

“장애가 부각 되는 게 싫었어요. 몇 년전 신문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휠체어 작곡가’가 떡하니 타이틀로 만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바로 신문사에 전화해서 항의를 했지만, 수정을 안 해주더라구요. 근데 지금은 오히려 내 신체의 일부이고, 내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히 음악을 하고 싶어요.”

현재 장애인 가수, 장애인 연주자는 열손가락을 모두 꼽을 만큼 그 수가 많다. 하지만 작곡가로는 정민씨가 최초이자, 유일한 상황. 장애인 후배들을 많이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램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밟아온 길을 생각하면 말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진지하게 막바지 작업에 몰입중인 이정민씨의 모습.ⓒ에이블뉴스

“장애인으로 작곡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사실. 연주자나 가수는 실력만 있다면 인정받을 수 있지만 작곡이란 것은 기획, 편곡 등을 다 스스로 해야 거든요. 후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위한 작곡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사실 지금은 어렵다고 봐야죠.”

후배 양성을 위한 지원책이 뭐냐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던 정민씨. 방금까지 음악의 길을 말리고 싶다던 그였지만, 이내 필요한 지원책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작곡 프로그램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라던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설 같은 게 필요하고, 쉽게 사운드교육을 배울 수 있는 시청자미디어센터도 좀 늘어나야 해요. 또 녹음실 같은 경우는 거의 지하에 있다 보니까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 부분도 좀 고려가 되야 겠구요. 하지만 지금은…글쎄요. 그렇게 될 날이 올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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