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혼례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했다. 말 그대로 사람에게 있어서 행해야할 가장 큰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누구나 성년이 되면 결혼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결혼도 선택사항이 되고 말았다. 남녀가 성인이 되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하기도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TV소설 복희누나. ⓒKBS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본인의 뜻이니까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결혼을 해야 할 사람 또는 하고 싶어도 결혼 상대를 구하지 못해서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KBS에서는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TV소설 ‘복희누나’를 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여주인공 복희가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 또는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며 되새긴다고 한다.

‘복희누나’는 복희가 배다른 동생 복남이를 데리고 강원도에서 전남으로, 예전에 아빠가 버렸던 친엄마를 찾아가는데 덕천양조장에서 만난 엄마 윤정애(견미리 분)는 송병만(이효정 분)의 아내이자 이미 다른 사람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집안의 큰 어른이신 최간난(김지영 분) 할머니는 복희는 딸 미자(채민희 분)의 애보기를 시키지만 동생 복남이까지는 맡을 수 없다며 고아원으로 보내 버린다.

송병만에게는 전처 소생으로 큰 딸 금주(김유리 분) 아들 태주(육동일 분) 작은 딸 은주(서해림 분)가 있는데 엄마의 죽음으로 사랑을 못 받은 큰 딸 금주는 새 엄마 정애를 원수처럼 대하고, 작은 딸 은주는 새엄마를 좋아하고 따랐으나 친 딸 복희가 나타나자 엄마에게서 등을 돌리고 복희를 미워한다.

문제는 아들 송태주다. 태주는 덕천양조장 송병만의 3대 독자인데 어려서 열병을 앓아 지적장애인이 되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이고 날마다 고모 미자의 아들 귀덕이하고만 논다. 어느 날 덕천양조장에 심부름꾼으로 분옥이라는 여자애가 들어 왔다. 태주는 분옥이가 좋다며 하루 종일 분옥이만 쫓아다닌다.-분옥이는 등장인물 소개에도 없어서 배우 이름은 모름.

스물 두 살의 태주가 졸졸졸 분옥이만 쫓아다니는 것을 본 최간난 할머니는 태주를 결혼시키려고 한다. 할머니가 태주를 결혼시키려는 것은, 태주는 덕천양조장을 맡길 인물이 못되지만 태주 아들에게는 덕천양조장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고모는 흑싸리와 홍싸리도 구분 못하는 애를 어떻게 결혼 시키느냐며 후사를 보고자 하는 할머니의 꿈을 여지없이 짓밟는다.

그러자 최간난 할머니는 ‘개돼지 말 벌레도 새끼를 낳고 알을 깐다’며 딸 미자의 말을 일축해 버리고 분옥이를 양조장으로 데려온 5촌 아제를 만나는 등 태주와 분옥이의 혼사를 진행시킨다. 그러나 미자 뿐 아니라 아들 병만과 손녀 금주까지 태주와 분옥이의 결혼에는 모두가 반대한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지자 할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다. 아들 송병만은 분옥이를 따로 불러 됨됨이를 살펴보고 태주의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고모 미자는 끝까지 태주 결혼을 반대한다. ‘엄마 고집부리고 떼쓰는 단식농성 하루 이틀이야, 오빠 절대 넘어가면 안 돼!’

‘우리 태주한테 나쁜 짓 할 애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죽고 나면 태주를 돌봐 줄 수 있겠나?’ 송병만의 물음에 여동생 미자도 큰 딸 금주도 대답하지 못했다.

최간난 할머니는 분옥이가 태주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쌀 50가마니와 논 다섯 마지기를 주기로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자가 자기에게도 그렇게 해 보라며 할머니에게 대들었다. ‘니가 송씨 집안이냐? 할머니는 미자가 출가외인이라고 잘랐다. 그러자 미자는 분옥이를 따로 불러 왜 태주와 결혼 하려는 지 따졌다. “아버지 생각이 제 생각이에요.” 분옥이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머슴도 그만 두어야 되는데 엄마도 없는 어린 동생이 셋이나 되었던 것이다.

‘복희누나’ 왼쪽부터 분옥이, 태주, 할머니 ⓒKBS

필자가 예전에 장애인 결혼 상담실을 운영했을 때 남자 장애인의 어머니들이 찾아와서는 ‘우리 집에 시집오면 밥은 안 굶긴다’고 했었다. ‘복희누나’의 배경은 6~70년대다. 그 시대에는 대부분이 최간난 할머니와 같이 있는 집에서는 태주처럼 장애가 있어도 여자는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었다.

“시대가 바뀌었어요. 요즘 여자가 밥 빌러 가는 일은 없어진 지 오래예요.” 그러나 필자의 말을 남자 장애인 부모들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자가 돈에 팔려가다니, 적어도 80년대 이전까지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80년대 이후부터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적장애인 부모들은 내 자식이 모자라니까 결혼 상대는 똑똑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지적장애인은 목발을 이용하거나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지적장애인 딸을 가진 집에서는 신체 건장한 사위를 돈을 주고 사오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몇 년 못가서 파탄이 나고 만다. 돈을 보고 결혼한 건장한 남자에게 돈은 필요할지라도 지적장애인은 이해하지 못했기에 시간이 지나면 아내에게 소리치며 윽박지르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여자를 보기도 했었다.

성욕이란 조물주가 종족보존을 위해 부여한 본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적 윤리나 도덕으로 본능을 억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적장애인은 스킨십을 좋아하며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하기 어렵다. 성욕을 억제해야 할 도덕이나 윤리적 의지가 약하므로 남자 애들은 누가 보거나 말거나 자위에 정신이 팔리기도 하고, 여자애들도 항거불능을 몰라 사탕 한 알 또는 돈 천원에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성에 대한 개념이 애매하여 때로는 자신을 예뻐해 주는 사람에게 과하게 애정표현을 해서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한다.

결혼에 있어 정답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필자가 바라는 지적장애인의 바람직한 결혼이란 서로 비슷한 지적장애인끼리 결혼을 하고, 가족들에게서 받아야 되는 불평등한 대우나 임신 출산 육아 등 결혼생활로 인해 발생되는 제반 문제들은 지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선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복지사 선생이 있는 공동체 같은 것 말이다.

‘복희누나’에서 할머니는 태주가 손주를 낳아 대를 잇기를 바라는 마음뿐인데 태주는 밤만 되면 베개를 들고 할머니 방으로 가고 싶어 한다. 분옥이는 태주가 할머니 방으로 못 가도록 동화책도 읽어주고 글과 숫자를 가르친다.

그나마 태주 옆에는 병든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는 착하고 지혜로운 분옥이가 있어 다행이지만 세상에는 분옥이 같은 색시만 있는 게 아니므로 결혼 적령기에 이른 지적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맘은 편치 않을 것이다.

태주는 일상생활에서는 남의 도움을 받아야 되지만 술에 대한 감각만은 특별하여 양조장에서 술 익는 소리와 냄새를 맡고도 술이 다 되었다고 했지만 누구도 태주 말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다. 앞으로 분옥이가 아들딸 잘 낳고 태주의 이런 재능까지 발휘케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복희누나’는 보는 사람들이 혈압 오를 만큼 소위 막장이라고 하는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 같은 것도 없고 특별히 부도덕한 나쁜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 대신 두레박으로 물을 퍼는 우물가, 불 때는 가마솥에 짓는 밥이랑 구수한 누룽지, 둥근 밥상에 삥 둘러 앉아 밥 먹는 모습, 왁자지껄한 평화시장, ‘조용히 비가 내리네 추억을 말해 주듯이…….’ 다방에서 흘러나오는 그 시절 그 노래. 모두가 잔잔한 감동과 아련한 추억들이라 시청자 게시판에도 아역 복희에 비해 성인 복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온통 칭찬 일색이다.

‘복희누나’는 이제 절반쯤을 지난 것 같은데 아무쪼록 지적장애인 부모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태주와 분옥이가 큰 시련 없이 무탈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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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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