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텐보스 입구. 선발된 19명의 장애인과 동행인, 그리고 여행 가이드 등으로 구성된 57명의 여행단이 활짝 웃고 있다. ⓒ여행박사

3박 4일간의 황홀한 추억. 에프아이투어 여행박사가 3번째 특별 이벤트를 펼쳤다. 올해는 300여편의 사연이 쏟아져 왔고 생애 첫 해외여행을 꿈꾸던 19명의 장애인들이 무료 해외여행의 행운을 잡았다.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란 기치를 내걸고 시작된 감동투어. 그 행복한 여정을 따라가보았다.

“복지관 선생님들이 리프트 승합차를 연결해 주셨어요. 제가 사는 곳엔 장애인 차량이 없어서 인근 지역에서 운행하는 차를 불러야 했는데요. 낮에는 일정이 꽉 짜여져 있대서 빈 시간인 밤에 오느라 제일 일찍 도착했어요.”

전북 부안을 달려 새벽 5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남석씨. 약속시간까지 유아휴게실에서 몸이라도 눕혀 볼까 했건만 관계자에게 쫓겨나 전동휠체어에 앉은 채로 하얀 아침을 맞아야 했다. 다시 긴 시간, 허리 한번 못 펴고 감행하게 될 여행길인데 그의 눈빛은 기대에 차서 반짝거린다.

윤정씨는 울산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일흔세살 어머니와 언어장애가 있는 딸은 놓칠세라 손을 꼭 잡고 수줍게 웃는다. 해외여행 한번에 국내선, 국제선 비행기란 비행기는 원없이 타보게 되었단다.

19명의 장애인과 동행인, 그리고 여행 가이드 등으로 구성된 57명의 여행단. 지난 10월 6일, 이들을 실은 비행기가 일본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출발 장소 인천공항에 모이기까지 제각각 한 편씩 스무 편에 해당하는 모험극을 헤쳐나온 터라, 비행기가 날아오를 때나 기체의 흔들림에 멈추었을까, 속살거리는 이야기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꽃보다 아름다운 편의시설, 하우스텐보스

1시간 20분의 짧은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후쿠오카 공항. 기다리고 있던 관광버스 1대와 휠체어째 탑승이 가능한 미니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일본 속의 네덜란드, 하우스텐보스를 향해 달렸다.

1호차를 운전하는 나가모토씨는 ‘유니버설 디자인, 웰버스’라고 큼직하게 박아넣은 차를 몰고 다닌다. 웰버스는 리프트가 장착된 미니 버스인데 그는 1인 사장이자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본이라고 장애인 특수차량을 모는 것이 수지타산이 맞는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도에 해당하는 현마다 적정 댓수의 장애인용 대여 차량을 운행하는 것이 필수라고.

차창으로 나지막한 일본 집들을 흘려 보내면서 닿은 곳은 일년 내내 꽃들의 잔치가 펼쳐지는 하우스텐보스. 17세기 네덜란드 왕궁과 거리를 재현해 놓은 이 곳에선 동서남북 어디를 찍더라도 사진마다 그림이 된다. 엄마가 불러도 아랑곳않고 재희는 아빠가 사줬다는 디카로 찰칵 찰칵, 춤추듯 뛰어다니며 셔터를 누른다. 리포터 아저씨도, 도우미 오빠들도 사진기 화면 속에 잡아둘 수 있는 것이 신나는 모양이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운하를 파놓은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는 그 안을 도는 유람선 캐널크루저로 한 바퀴 휘 둘러보아도 좋겠고, 고풍스런 관관용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 돌아도 운치 있다. 하루에 다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광대해서, 자전거 투어가 제격이라는데 같은 바퀴족인 휠체어로 다니기에도 더할나위없이 쾌적한 환경이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안내지도가 따로 제작돼 있고 곳곳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완비돼 있다. 단지 유럽식 조각 벽돌로 포장된 도로가 많아서, 휠체어 승차감이 좋지 않다는 것이 옥의 티라면 티.

배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펄퀸유람선

다음 날, 감동투어 여행단은 사세보로 차를 달려 펄퀸유람선에 올랐다. 점점이 흩어진 많은 섬들을 뜻하는 구주쿠시마는 일테면 우리나라의 다도해 국립해상공원과 비슷하다. 하지만 지루하도록 완만한 섬들만 이어져 있어, 유람선을 타고 50분간 돌아보는 여정은 경치 자체보다 펄퀸유람선에 대한 감동이 더 컸다.

점자블록은 없지만 흰지팡이를 두드려 걸음을 옮기는 시각장애인들도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는 접안시설도 깔끔했지만, 배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휠체어 회전이 360도 가능한 넓고 깨끗한 장애인 화장실을 보면 “여기 정말 배 맞어?” 입이 쩍 벌어진다.

갑판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던 부산사람 주혜씨는 “광안리 바닷가가 코 앞인데도 20년 동안 가보질 못했다”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지독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칩거생활을 해야 했던 그녀는 2년 전 수술을 받고 기적같이 걸음마를 떼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이번 여행에서 만나는 세상은 매일 새로운 즐거움으로 꽉 차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가도 부산바다를 떠다니는 유람선에 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애인들에게 뱃놀이란 콘크리트로 거칠게 마감된 선착장을 지나, 턱이 많은 배에 오르기까지 낯선 이의 등에 업히고 내려야 하는 극기 체험 같은 것. 오늘처럼 가뿐하게 휠체어를 밀고서 꼭대기 갑판에 올라 흘러가는 바닷물과 섬들에 눈길을 던지는 여유로움은 우리나라에선 누리기 어려운 호사스런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계속)

펄퀸유람선을 타는 선착장 매표소. 부안에서 온 남석씨(맨 앞)는 전동휠체어 뒤를 잡고 다니는 춘광씨와 의형제를 맺은 사연을 써보내 행운을 잡았다. ⓒ여행박사

아소산 분화구 앞에서. 윤정씨와 어머니는 이렇게 귀한 여행을 다녀오도록 사연을 접수시켜준 울산밀알선교단에 감사하다고 거듭 말했다. ⓒ여행박사

리프트를 장착한 미니 관광버스 ‘웰버스’를 운행하는 나가모토씨(왼쪽)는 장애인 관광객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남겨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여행박사

촬영팀으로 동행 취재했던 KBS ‘사랑의 가족’ 강석구 리포터와 찰칵. 어머니와 참가했던 재희는 신이 나 매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여행박사

유람선을 타는 쾌적함을 누리게 해준 펄퀸유람선. 선착장과 배 사이에 경사로가 빈틈없이 놓여져 안전하고 배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휠체어를 타고 꼭대기 갑판까지 오를 수 있다. ⓒ여행박사

펄퀸유람선 3층 갑판에서 휠체어에 앉아 경치를 바라보는 주혜씨(왼쪽). 바다를 지척에 두고 살지만 일본에 와서야 유람선을 타보았다. ⓒ여행박사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