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3일 반시설과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9명의 장애인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23일간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울산, 대구, 대전, 인천 등을 거쳐 오는 9월 4일 서울에 입성하게 된다. 전국을 돌며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과 인권침해·유린 등의 현실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국토대장정을 공동주관한 한국장애인연맹(DPI)의 자료협조를 받아 긴 여정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인천에서 가진 결의대회에 참석한 국토대장정 대원들. ⓒ한국DPI

9월 3일, 작성자: 이권희(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월요일 아침 출근길 붐비는 인천시 지하철을 피해 미리 결의대회 장소인 인천시청 앞으로 이동하기 위해 오전 6시 30분에 지하철을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한두 명도 아니고 지하철 한 칸에 4~5명씩 타고 가는 모습이 흔하지 않았던지 시민들의 눈길은 자연스레 우리를 향했고, 의외로 밝은 모습으로 즐겁게 수다를 떠는 우리를 보면서 장애인하면 우울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왜곡된 이미지가 조금은 변했으면 하는 기대도 내심 했었다.

지상에서 지하로, 다시 지하에서 지상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는 했지만 10개 정거장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는데는 20여분 정도 소요되었다.

오전 7시가 조금 못되어 인천시청역에 도착했고, 배재현 대원이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여 다른 대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먼저 출발했다. 여기서 완주 하루를 앞둔 22일 간의 행군에서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박정선 대원의 남편이자 활동보조인으로 참여한 강경호 스텝과 함께 화장실로 향하던 배재원 대원의 전동휠체어가 신호를 기다리던 중 갑자기 급발진 되면서 휠체어가 급회전을 하였고, 다행히 옆에 있던 시민들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휠체어가 보도블록을 들이받아 앞바퀴가 뒤쪽으로 휘면서 모터와 충돌해 모터가 고장이 나버린 것이다. 전동휠체어는 꼼짝없이 고물이 되어버렸고, 강경호 스텝의 연락을 받은 임상욱 부대장은 이강천 대원으로 하여금 현장에 보냈다. 힘들지만 혼자 보행이 가능한 이강천 대원은 자신의 휠체어를 배재현 대원이 타도록 배려했고, 자신은 걸어왔다. 강경호 스텝은 배재현 대원의 휠체어를 수동으로 전환한 다음 끌고 왔다.

그러나 배재현 대원의 참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형사고는 났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급했다. 서둘러 화장실로 갔으나 장애인용 남자화장실에는 사람이 있는지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고, 워낙 이른 시간이라 실례이긴 하지만 장애인용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얼마나 급했던지 안쪽에서 닫힘 버튼을 눌렀어야 했으나 그럴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편안하게 일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이기영 스텝이 장애인용 여자화장실의 문을 열자 ‘아악’하는 비명과 함께 배재현 대원의 일을 보는 모습이 외부로 전면공개 되는 제2의 참변이 일어나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같이 고생하며 잠까지 같이 잤던 사이라 대원과 스텝들 간의 이와 같은 화장실 사건 정도야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여하튼 대형참사가 2건이나 연속적으로 터지는 것이 배재현 대원의 오늘하루가 얼마나 힘들지를 미리 알려주는 복선이 아닐까 불안했다.

인천지역 구간대원들과 함께 인천 시내를 빠져나오는 동안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힘들었지만, 인천지역 구간대원이 돌아간 지점부터는 속도가 빨라졌다. 경남에서 올라와 대열에 합류한 박재우 대원의 휠체어가 방전되어 멈춰 섰고, 결국에는 차량에 실렸다. 그런데 또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배재현 대원이 급하게 갈아탄 휠체어가 배터리는 충분했으나 기본적으로 최고속도가 다른 대원들의 기종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본대의 선두와 후미의 배재현 대원의 간격은 벌어졌고, 그러면 일제히 선두그룹이 속도를 줄이고 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대장에게 보고되었고, 배재현 대원은 선두에서 두 번째 자리에 위치했고 전체대열의 속도는 배재현 대원의 속도에 맞춰졌다. 배재현 대원의 제3의 참극이었다.

인천에서 과천까지의 행군거리는 약 35킬로미터 정도였는데 오전 행사관계로 출발이 늦어져 과천시청과 약속한 오후 5시 30분 도착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선두차량의 속도는 조금씩 빨라지는 시점이라 배재현 대원의 미안함은 더욱 컸을 것이다. 더구나 속도가 느려지면 이권희 대원의 핸드싸이클이 힘들어지므로 미안하다는 말응 반복했다.

우선은 무사히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에 휠체어가 허락하는 최고속도로 달리는데 집중했다. 보통의 경우 8킬로미터 정도를 행군 후 약 10분간 휴식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나 오늘은 약 15분간의 휴식을 1회만 하며 강행군했다.

위험천만의 상황도 발생했는데 인천과 과천지역의 경계선 지역에서 경찰의 관할구역 혼선으로 약 1시간 정도는 어느 쪽에서도 에스코트를 하지 않는 바람에 우리 차량으로만 대원을 리드했다. 그러나보니 국도를 달리는 빠른 속도의 차들과 진출로, 진입로를 이용하기 위해 대원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차량 등에 대한 경찰통제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위험했다. 하지만 대원들의 물오른 행군감각과 팀워크로 잘 대처했다.

드디어 과천에 들어왔다. 예상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동 일찍 도착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과천시청 관계자와 과천시장애인단체총연합회 회장님 등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순간 대원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누군가 흐느끼고 있었다. 오늘 하루만 3번의 참사를 당한 배재현 대원이었다.

참사에도 불구하고 서울입성을 하루 앞둔 과천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한 승리감,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자신으로 인해 전체 속도가 느려졌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을 대원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함께 밀려오면서 자기도 모를 눈물이 흘렸다고 했다. 다른 대원들도 모두 숙연해졌다.

저녁식사 후 평안한 휴식을 위해 대장이 평가회의를 조금 일찍 하자고 했다. 모두들 찬성했고, 23일간의 대장정 중 마지막 평가회의가 진행되었다. 왠지 모를 숙연함이 감돌았다.

대원들 모두 돌아가면서 오늘 하루를 포함한 전체 일정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한 마디씩 했다. 대부분의 공통의견은 내일 하루 더 행군하지만 지금껏 사고 없이 무사히 온 것에 대한 고마움과 대원간에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 주는 과정에서 동지애가 생겨 곧 헤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대원들의 팔과 다리가 되어 짐을 싸고 풀고, 식사 챙기고, 행군대열 보호하는 에스코트까지 정말 정성을 아끼지 않은 스텝에 대한 고마움도 빠지지 않았다.

특이 할만한 것은 내일의 대장정이 끝나더라도 이번 국토대장정의 목적인 ‘반시설 및 장애인자립생활 보장’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대원들 하나하나가 메신저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 알려내고 전국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자는 의견이었다.

특히, 작년 도가니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전국의 시설모니터링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된 시설에 대한 구체적 대응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목받았다. 그렇다.

이번 국토대장정이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반시설 정책을 만들어내는 정책변화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완주 이후의 지속적인 이슈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모두들 동의하면서 더욱 높은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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