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km를 걸어온 이진섭씨와 아들 균도(자폐성장애1급). ⓒ에이블뉴스

13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광화문 앞. 자폐성장애 1급인 균도(19)군은 아빠 이진섭(부산장애인부모회 기장.해운대지부장)씨의 손을 꼭 잡고 "우와~우와~"소리를 내며 걷기 바쁘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아빠 볼에 뽀뽀를 하고 웃음도 끊이지 않는다.

"아야! 꽝 그랬어."

인도 턱에 걸려 발을 헛디딘 균도가 통증을 호소하자, 이씨는 걷던 길을 멈춰 균도의 발목을 주무른다.

지난 3월 12일 부산을 출발, 30일동안 600km를 걸어 서울에 도착한 이들 부자에게 이같은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 한 달을 걸어온 이씨의 몸무게는 10kg이나 줄었고 균도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부자의 발가락은 이미 물집으로 성한 곳 하나 없다.

이씨는 "현재 국회 계류중인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의 제정과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이 이 여정의 목표다. 이거 하나 믿고 600km 힘차게 걸어왔다"고 전했다. 이미 예정보다 약 9일 일찍 서울에 도착해 쉴 법도 하나 어림없다. 또 다시 서울대장정에 나섰고 오늘은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촉구를 위해 전국 장애부모 15만명이 작성한 서명서를 복지부와 청와대에 전달하러 간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위해 600km 걸은 부자

'발달장애인 균도와 세상걷기, 부산에서 서울까지!' 이씨와 균도의 배낭에 달려 있는 플랜카드다. 이씨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 및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을 촉구함은 물론, 균도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험난한 길을 택했다. "나처럼 가지지 못한 아빠가 균도, 그리고 장애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걷는 일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해야 세상에서 관심 가지니까." 그렇게 이씨는 균도가 혹시 달아날까 혹시 위험할까 싶어 허리춤에 끈을 묶고 잡아가며 힘겨운 길을 걸어왔다.

올해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균도. 여느 고3학생처럼 취업 준비를 할 수도 진로 걱정을 할 수도 없다. 성인기 준비를 위해 갈 곳도 없고 받아줄 곳도 없다. 장애인의 노동권 보장은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인데 장애인 중에서도 최약자인 균도같은 발달장애인은 더욱 그렇다. 결국 갈곳이 없어 시설로 들어가거나 부모의 손길밑에서만 맴돌 뿐이다.

이씨는 "우리 부자가 걷는 게 이슈화되면서 균도를 시설에 넣어주겠다는 전화가 열통도 넘게 온다"며 "우리 균도를 시설에 보내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남들 사는것처럼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에 있길 바랄 뿐"이라고 호소했다.

또한 이씨는 "언제까지 내가 균도의 손을 잡을 수 없다. 내가 없어도 우리 균도가 자유롭게 다니는 세상, 살고싶은 만큼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균도의 손을 사회가 정부가 잡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균도 부자가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서를 전달했다. ⓒ에이블뉴스

이런 장애부모들의 바람을 담은 법이 바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다.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대표발의)을 포함한 121명의 국회의원이 지난해 11월 24일 발의한 법안은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아동 및 그 가족의 특별한 복지적 요구에 적합한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법이 만약 통과된다면 의료, 보장구 및 보조공학기기, 장애아동 발달재활서비스, 장애영유아 조기개입서비스, 지역사회 전환서비스 등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법안은 정부측과의 원활한 합의가 진행되지 않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다.

"4대강 사업 예산의 조금이라도 장애아 위해 쓴다면"

서울까지 걸어오면서 부자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일까. 비참한 장애인의 현실을 외면한 예산이 4대강 사업에 열심히 쓰이고 있던 현장을 목격한 순간이다. 공사가 한창인 양산-상주구간의 황폐화된 인공산을 걸으며 날아오는 모래를 온몸으로 맞았고 마음으론 쓰디쓴 아픔을 견뎌야 했다.

이후 부자 모두 목이 아파 몇일동안 몸져 누웠고 지금까지도 기관지가 안좋다. 이씨는 "4대강 사업에 쓰인 예산 조금이라도 장애인을 위해 지원했다면 가수 김태원 씨가 자폐아 아들을 필리핀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장애아를 바라보는 사회의 싸늘한 시선이 우릴 사회에서 못살 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회의 편견에 맞서기 위해 균도 부자는 일부러 붐비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장애아의 현실을 비장애인 그리고 사회에 드러내기 위해서다. 장애특성상 소리를 지르는 균도를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이다.

전국 장애부모 15만명의 염원이 담긴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촉구 서명지. ⓒ에이블뉴스

"균도 서울 왜 왔어?"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하러 왔어요"

이씨의 물음에 대답하는 균도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린다. 서울 보신각 기자회견을 출발로 보건복지부 그리고 청와대로 걸어가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촉구 서명서를 전달한 균도 부자는 다가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까지 장애인단체들과 함께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촉구 목소리를 계속낼 계획이다.

초기 암진단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는 이씨지만 건강 악화보다도 지독한 장애인 현실 악화를 막는 게 우선이다.

이씨는 "우리 균도는 내가 우는걸 너무 싫어한다. 장애 부모들이, 가족들이 이런 혜택없는 현실때문에 울고 목숨을 끊는 일이 더이상 없길 바란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하라"고 외쳤다.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며 뽀뽀하는 균도, 그리고 그런 아들을 안아주는 아빠의 힘찬 걸음은 계속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