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계속 헛구역질이 나서 불안한 마음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두 개다, 두 개’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이는 청각장애인 남편의 모습에 왜 기쁨보다 슬픔이 앞섰을까요. 아마 내가 중증 뇌병변 여성장애인이었기 때문이겠죠.
병원에서조차 축하는커녕,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냐. 피임도 안 했냐’고 된통 혼나기만 했습니다. 자기들은 애기 낳아서 잘 키우면서 왜 우린 안 된다는 걸까요?
시설에서 평생 살다 자유를 맛본 스물아홉의 신지은씨(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 후, 지난해 엄마가 됐다. ‘지워야 한다’는 주변 이야기에 풀이 죽은 채 찾았던
병원, 그 곳에서 아기 심장소리를 듣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평생 먹어오던 근육이완제를 끊으니 찾아오던 몸 꼬임과 식은땀, 헛구역질까지
아이를 위해 참았다. ‘왜 피임을 안 했냐’, ‘수술하면 죽는다’ 별 소릴 다 들었지만 꿋꿋이 참았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의 ‘낳아보자’는 말에 눈물이 났다. “하늘의 선물이니까 받아야죠.”
7개월 만에 태어난 선우는 호흡기관련 희귀난치성을 판정받는 고비가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아이로 성장했다. 장난감 나팔을 불고 텔레비전 선반에 올라가는 ‘사고뭉치’ 선우를 바라보며 기쁘지만, 한편으론 중증장애인 부모에게 정부의 맞춤형 지원정책이 없어 앞으로의
육아전쟁이 두려워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날들이었어요. 비장애인들도
아이 키우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하지만, 부모가 모두 중증장애인인 우리가
아이를 낳았는데 저희에게 맞는 지원이 없다는 것이. 다른 비장애인 부모와 같은 수준의 지원만 받는다는데.. 다들 애를 어떻게 키우죠”
“엄마 아뿔싸가 뭐야?”, “응 알부자?”, “아니~ 아뿔싸!” 청각장애엄마 배현숙(한국청각장애인여성회)씨는 세 아들과 함께 ‘소리 없는
육아전쟁’을 치르고 있다. 장애는 불편한 것일 뿐,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가족 간의 깊이 있는 관계와 대화는 아직도 어려움이 크다. 엄마는
아이들의 입모양을 열심히 보고,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엄마의 수화를 바라보며 사랑을 느끼지만, 이들의 대화는 하루 30분정도뿐이다.
“세 아들은 아기 때 옹알이를 하는 것부터 소리 감지를 하지 못하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아기울음 알림기계로 판단하며 키워나갔습니다. 엄마인 나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소리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한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