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스쿠터를 타는 장애인. ⓒ에이블D.B

경북에 사는 박민수(가명, 51세, 지체장애1급)씨는 전동보장구를 새로 구입하기 위해 받아야하는 ‘보장구 처방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10년 전인 2001년 전동보장구를 받기 위해 처음으로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로부터 한 손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전동휠체어를 처방 받았다. 이후 전동휠체어를 구입해 타봤지만, 도저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과 팔,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전동휠체어 조정레버(방향키)를 건드리기 때문에 제멋대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전동휠체어를 타면 사고 날 것 같아 무서웠어요. 그래서 타지 못하고 그냥 집에만 있었죠.”

전동휠체어의 조정레버는 민감해 미세한 힘에도 반응해 움직인다. 이 때문에 전동휠체어는 보행이 불가능하고 양쪽 팔 기능이 약화되거나 한쪽 팔을 사용할 수 없어 수동휠체어를 혼자 조작할 수 없는 사람 및 다른 한쪽 기능이 약하게 남아있는 사람에게 지급된다.

전동휠체어 때문에 몇 달째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친구가 타고 다니는 전동스쿠터를 타봤다. 전동휠체어에 비해 조정레버가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앞·뒤로만 조종하면 움직여 운전하기 편했다.

집에만 있던 그는 2005년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전동스쿠터를 구매하기 위해 한 보조기기 업체에 문의했다. 업체는 ‘전동스쿠터로 처방 받았지만 전동휠체어를 타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있는데, 서로 교환해 사용하면 어떻겠냐’고 말해줬다.

“업체의 말을 듣고, 교환해 사용했다. 집에만 있다가 내가 조작하기 편한 전동스쿠터를 이용해 복지관에도 가고, 또 그곳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들도 만나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그는 전동스쿠터를 사용한 약 6년 동안 조작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만족한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전 주인이 사용한 4년을 합해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탓에 잦은 고장을 일으켜 새로 전동스쿠터를 구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구연한 6년이 지나 전동스쿠터 처방전을 받으면, 일정부문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다. 그는 지난달 중순 ‘보장구 처방전’을 발급 받기 위해 모 대학병원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신경외과 의사는 오른팔을 들어보라고 얘기했다. 가뜩이나 긴장되면 경직돼 몸과 팔을 많이 흔드는 그는 있는 힘껏 오른팔을 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들지 못했다.

의사는 ‘전동스쿠터는 양 손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어야 된다’며 지금까지 타고 다니던 전동스쿠터가 아닌 전동휠체어를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의사에게 전동스쿠터를 처방받아야 하는 사정을 얘기했다. 돌아온 답변은 이해는 하지만 규정 때문에 ‘처방해 줄 수 없다’였다.

“의사는 단호하게 한쪽 팔을 사용할 수 없어서 전동스쿠터는 처방해줄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해주고 싶지만 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10년 동안 오른손 대신 왼손을 올려 엄지손가락으로 조정레버를 앞뒤로 움직여 전동스쿠터를 타고 다녔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고를 낸 적도 없어요.”

결국 그는 전동휠체어 보장구 처방전을 받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고, ‘장애인보장구 지급 인정기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전동휠체어보다 오래 사용한 전동스쿠터가 더욱 익숙하고 안전한데, 단순히 한쪽 손을 들지 못한다고 그 기준 하나로 익숙하지 않은 전동휠체어를 처방해주는 것은 사고의 우려도 높고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지급 세부 인정기준을 살펴보면 도수근력검사에 따라 구분된다. 이는 상지기능에 따른 전동보장구 작동 능력을 판단하기 때문. 도수근력검사는 근력을 도수로써 측정하는 방법인데 근력의 강도가 높을수록 비장애인의 근력과 동일하다.

전동스쿠터는 상지근력검사가 최소 근력 4등급 이상이여야 한다. 4등급 이상은 어느 정도의 저항에 대해 능동적인 관절운동이 가능한 상태인데, 이는 비장애인의 약 75%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말 그는 보건복지부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불합리한 ‘장애인보장구 지급 인정기준’의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을 올렸다.

“이러한 기준 때문에 내가 받고 싶고, 받아야 되는 전동스쿠터를 못 받는 것은 적정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건 문제가 있다고 복지부에 민원을 넣었죠.”

복지부는 며칠 뒤 민원에 대해 ‘상지기능에 따라 전동보장구 작동능력을 판단한다. 하지만 본인의 작동능력 외 운전환경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장애인보장구 전체의 지급 적정성 여부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연구용역 중이다. 완료되는 대로 장애인단체 등 관계기관의 의견 수렴 후 제도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복지부의 답변에 대해 당장이 문제인데, 언제 될 지도 모르는 제도개선을 기다려야 하냐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공단에서 연구용역 중이라는 데 이들이 말하는 제도개선이라는 게 언제 될 줄 압니까? 전동스쿠터 없이는 밖에 나갈 수가 없는데…."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사용할 수 없는 전동휠체어를 받아야 하는 현실에 씁쓸하다. 현재 고장 난 전동스쿠터 대신 인근 복지관에 기증된 중고 전동스쿠터를 지원받아 겨우 사용하고 있다. 이 스쿠터 또한 언젠가는 반납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전동휠체어가 필요한 사람이 있고 전동스쿠터가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단순히 처방전 하나에만 의존해 적정성을 판단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와 관련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보장구 관련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며 “보장구 지급 인정 기준 뿐만 아니라 보장구 대상 품목, 가격 등을 조정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이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로 올해 말에는 완료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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