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에이블뉴스

장애인 복지서비스의 현금지급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해 장애계가 양쪽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예산확대 없인 안 된다“며 계산기를 꺼내기도, ”본질을 벗어난 공격“이라며 미니강의를 펼치는 그간 토론회에서 볼 수 없던 진풍경이 그려진 것.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김정록‧최동익 국회의원과 함께 30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한가?’ 토론회를 개최, 현금지급방식인 영국의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 도입 가능성을 모색했다.

먼저 지난 1996년 시행된 영국의 현금지급제도는 지방정부로부터 서비스 급여를 받을 자격과 급여량을 심사를 받은 뒤 현금지급 범위가 결정되고, 장애인 당사자는 이를 갖고 서비스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서비스에 상응하는 현금을 이용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것.

2003년부터 실시된 개인예산제도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자신이 스스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물론, 지급방식이 직접 현금 지급인 ‘직접지불형’ 뿐 아니라 ‘기관위탁형’, ‘혼합형’ 등의 방식이 나눠진다는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와 필요를 스스로 정의하고 스스로 평가한 다음, 자신에게 주어질 현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서를 지방의회에 제출한다. 이후 평가를 통해 개인 또는 위탁기관에 현금으로 지급한다.

이는 개인의 계좌에 직접 입금하는 ‘직접지불형’,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위탁기관에 입금하는 ‘기관위탁형’. 두 가지 방식을 혼합한 ‘혼합형’도 있다. 이 예산으로 장애인은 학원수강, 취미활동 등에 사용한다.

즉, 두 제도는 정부가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해 장애인에게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고, 선택한 전반적 서비스와 지원들을 정부가 관리하는 모형이다.

먼저 선공을 펼친 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그는 현금지급 방식에 대해 “예산 확대 없인 의미 없다”며 도입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제기했다.

소득보장과 서비스 영역 모두 획기적인 예산 확대가 필요한 때, 이 같은 도입 방식 주장은 오히려 열악한 두 제도 사이에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지적. 그의 토론에서는 ‘예산’이란 단어가 계속 반복됐다.

발언 시작과 함께 계산기를 꺼내든 박 대표는 “활동지원제도 바우처를 현금지급으로 예를 들면, 24시간 받는 사람은 7700만원을 받는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할렐루야지만 어느 날 갑자기 7700만원이 현금으로 표시되면, 일반 시민들은 ‘장애인들에게 7700만원을 개인에게 준다고?’란 반대적 느낌이 있다”고 제도의 우려감부터 표했다.

이어 그는 “예산의 총량에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 급여 방식만 현금으로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현금으로 직접 주자는 것은 서비스 영역과 소득보장을 합치자는 건데 어떤 면에서 정책적 진전이냐. 두 열악한 제도에 대한 예산 확대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대비 장애급여 비율은 0.1%로 OECD 평균인 1.3%의 13분의 1에 불과하고, 장애급여 수급자 또한 1.4%로 OECD 평균인 5.5%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인구가 35만명에 달하지만 실제 서비스 받는 사람은 5만명에 불과한 현실. 때문에 두 가지 제도를 합치는 것에 앞서 예산 확대가 우선이란 것이 박 대표의 설명이다.

박 대표는 “현재 영국은 공공서비스 예산 삭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사회서비스 전체 예산은 40억 파운드 가량 삭감됐고 계속적 삭감되고 있다”며 “결국 현금지급방식이 제도 형식상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긴축 기조를 가진 정부의 정책 방향 앞에서 무력해진다”며 “OECD국가 중 복지예산 비중이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복지 정책은 새로운 제도보다는 예산 확대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30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주최 ‘장애인 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한가?’ 토론회.ⓒ에이블뉴스

박 대표의 ‘선공’에 학계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는 토론자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주최 측 토론회 현수막까지 떼고 매직을 든 그는 “예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미니 강의를 펼쳤다.

이 교수는 “예산은 문제가 아니다. (박 대표는) 맞지 않는 본질에 대해 공격하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현재 국가는 자체적으로 복지서비스를 만들어놓고 장애인들이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뭐가 필요한지 파악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공적조직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기관 평가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질적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며 “장애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파악해서 추출해내고 이것을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것이 기본목표다. 강력한 목표는 예산이 아닌 국가가 장애인 삶을 파악하라는 의미”라고 피력했다.

또 이 교수는 “자기들의 선택권을 강화해 구매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예산과는 본질적 관련이 없다. 예산은 제도도입과 상관없이 국가에서 예산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하는 것”이라며 “현금지급 방식은 현금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현금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많은 장치가 만들어지고, 이는 장애인 복지 발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박 대표와 이 교수의 팽팽한 기싸움에 다른 토론자들도 찬반 의견으로 나뉘었다.

비마이너 김도현 발행인은 “현금지급 방식이 도입되면 마치 자신의 용돈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환상이 있다. 개념적으로만 설명하지 말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뭐가 구체적으로 되는 건지 시뮬레이션이라도 준비하라”고 학계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찬성’ 쪽 입장을 밝힌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윤삼호 정책실장은 “직접서비스를 받을 때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어떤 선택도 삶에 대한 통제권도 없었지만 서비스 현금지급제도는 사춘기 청소년, 개인예산을 받는 것은 성인이 된 듯한 느낌”이라는 영국의 한 장애운동 지도자의 말을 인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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