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속에서 장애성인의 교육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 ⓒ에이블뉴스

“우리는 배우고 싶다. 장애인도 교육받고 싶다는 것,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무리한 요구인가?”

교실이 없어 거리로 나온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과 교사들의 외침이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서울 광진구 장애인복지관인 정립회관의 일부 공간을 무료로 빌려 공부를 해왔으나 정립회관측이 운영공간 부족과 관리비·운영비 부족 등을 이유로 지난해 12월 31일까지 퇴거를 요청해 옴에 따라 지난 2일부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야학 천막을 쳤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약 14년 동안 장애로 인해 학령기에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장애인을 위해 문해교육과 초·중·고등과정 검정고시 등의 교육과정을 진행해 왔다. 그 동안 노들장애인야학을 통해 글을 깨우친 장애인은 170여명이다.

노들장애인야학은 새로운 야학공간의 마련을 위해 서울시교육청과 교육인적자원부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장애인야학에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만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결국 노들장애인야학 37명의 재학생과 18명의 교사는 ‘천막야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일 ‘천막야학’ 개학식을 무사히 마쳤지만, 서울시에서 천막야학을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전해왔기에 천막야학 역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날 개학식에서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은 “불법은 하고 싶지 않지만 공부는 하고 싶다. 우리도 공부해서 길거리의 간판은 읽고 싶다”고 호소했다.

민주노동당 장애인차별철폐위원회 박김영희 위원장은 “국민이라면 누구나 교육받고 진학을 고민하는 세상에서 수업하고자 길거리에 천막을 친 우리는 장애를 이유로 비장애인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며 “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우리의 열망을 담아 장애성인의 교육권을 확보하자”고 전했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와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편지를 썼다. “천막야학은 단지 우리 자신의 지식이나 학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책임을 알리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공원에 천막이 쳐졌다는 문제로만 보지 말고 이 상황을 발생시켰던 배경에 대해 함께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를 담았다.

노들장애인야학측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아무런 편견과 차별 없이 동등하게 교육 받으며 이 땅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를 부탁한다”며 “정부에서 장애성인의 교육문제를 적극적으로 책임질 때까지 춥고 힘들어도 천막을 치고 수업을 계속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노들장애인야학 천막야학 개학식의 모습. ⓒ에이블뉴스

노들야학이 시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희는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학생들입니다.

혹시 장애인의 평균학력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전체 학령기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반면 전체 장애인의 45.2%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력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장애인이 구조적으로 교육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입니다.

교육은 예로부터 ‘백년대계’라 했습니다. 교육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장애인은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습니다. 장애인도 교육받고 싶다는 것이 무리한 요구입니까? 장애인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진정 무리한 요구란 말입니까?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것조차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노들야학’이 정립회관에서 일방적으로 쫓겨나게 생겨도 정부에서는 하는 말은 “사정은 안타까우나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가 고작입니다. 법적 근거가 없다면 법을 뜯어 고쳐서라도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도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인정한다면 정부는 당장 장애인 교육권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합니다. 시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작년 4월 장애인 교육주체들의 기나긴 투쟁으로 드디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이 실제 실행되기까지는 아직도 남은 길이 적지 않습니다. 시행령이란 것이 만들어져야 그 법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노들장애인야학은 결국 이렇게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시행령을 제정하는데 여전히 장애성인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는데 있어 구체적인 지원근거를 마련하지 않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께 호소 드립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육 받으며 이 땅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노들야학은 이제 이곳 마로니에 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수업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이 수업은 단지 우리 자신의 지식이나 학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책임을 알리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우리의 ‘공간’을 뺏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배움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장애인 교육문제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책임질 때까지 춥고 힘들어도 우리는 이곳에서 천막을 치고 수업을 계속 할 것입니다. 저희들에게는 교육받을 공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노들장애인야학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가 있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이곳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공원을 이용하시는 시민 여러분들에게 불편을 끼쳐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교육은 잃어버렸던 생명을 되찾은 것과도 같습니다. 30대, 40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교과서를 받아보고, 길거리 간판의 글씨를 읽고, 다른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얘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모르실 겁니다. 이 문제를 단지 공원에 천막이 쳐졌다는 문제로만 보시지 마시고 이 상황을 발생시켰던 배경에 대해서도 함께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교육받고 싶은 저희들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아무런 편견과 차별 없이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세상을 시민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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