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의 휴대폰 안에 딸 은지가 그림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에이블뉴스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고 해도 남들과 똑같이 자라주길 바라는 간절함은 모든 부모가 똑같다. 지적장애를 가진 고등학생 딸을 둔 어머니 조순옥(49세) 씨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미술에 남 다른 재능을 보였던 딸 김은지(가명, 18세, 지적장애 3급)양을 키우며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또 남 다른 재능을 보인 탓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라는 고민을 달고 살았다.

뿐만 아니라 ‘엄마의 욕심 때문에 아이가 힘들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비장애 친구들의 그림과 비교해도 은지의 재능은 썩히기 아깝다는 소리를 들어온 조씨는 은지가 훌륭한 미술가가 되길 소망했다. 미술에 흥미를 가졌던 아이도 엄마의 뜻을 따라주었다.

그러던 중 은지가 가야 할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했고, 딸 아이가 갖고 있는 능력을 더 키우길 바랬던 조 씨는 A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세웠다. 물론 은지가 A예고에 입학하기까지 ‘산 넘어 산’ 이라고 많은 고비도 있었다. 예고 입학 문에는 비장애인만 출입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지적장애 학생을 받을 수 없다는 학교 측과 집 근처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라는 시 교육청이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조 씨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7조 2항을 설명하며 시 교육청과 학교의 문이 닳도록 찾아갔고, 설득해나갔다. 특수교육법에는 교육청 또는 교육감은 특수교육 대상자의 장애정도·능력·보호자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치할 수 있다고 명시 돼 있다. 결국 시 교육청도 이 조항을 근거로 은지의 미술적 재능을 인정했고 우여곡절 끝에 예고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 학교에서는 지적장애 학생을 지도해 본 경험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아 힘들어했지만 교사들과 교감, 교장의 배려와 가르침 속에서 다행히 은지도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줬다.

지난해 학교 소식지 '가을호'에 실린 은지 그림. ⓒ에이블뉴스

학교 측은 은지를 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지적장애의 특성으로 인해 국어나 영어, 수학 등의 과목의 시험은 힘들기에 레포트 등의 과제물은 그림으로 대체해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결국 은지는 학교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지난해 학교의 소식지 ‘가을호’에 당당히 그림이 실렸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처음에는 경험 부족이나 편견 등으로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은지가 장차 예술가로 자라기 위해 공부하고 훈련하는 데 있어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비장애인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이 있다고 칭찬합니다.

그 소식지에서 방학과제우수작은 1학년과 2학년 두 학생의 그림만 실릴 수 있어요. 3학년은 대학 입시 때문에 어렵죠. 그런데 1학년 대표로 우리 아이 그림이 실렸던 거에요. 이번에 기말고사 실기에서 은지가 145명 중에 54등을 했죠. 장애를 떠나 제 실력만으로만 평가를 받았던 거죠 (웃음).”

지난해 은지를 지도했던 교사도 "교내에서 은지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며, "비장애 학생과 다른 시각을 갖고 있어 비장애 학생들 사이에서도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는 “똑같이 ‘길’ 이라는 주제로 인물, 동물, 풍경을 조합해서 그린 적이 있었는데 은지는 크레파스를 사용해 따뜻한 느낌을 강조해서 그렸었다”며 “다른 아이들이 그리는 방식, 묘사하는 기법이 다르고 성향도 매우 다르다. 은지만의 세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림을 보면 작가의 성향을 발견할 수 있고 색깔, 구성요소를 통해 심리적인 상태를 알 수 있는데 (그림을 보면) 은지의 순수한 마음이 잘 표현 돼 있고 순수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게 강점”이라고 전했다.

지적장애 미술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해 온 은지와 어머니 조씨는 또 다시 큰 난관에 부딪혔다. 은지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없기 때문이다. 은지가 가고 싶다고 고른 곳은 서울의 B, C대학.

하지만 B대학의 ‘2013 기회균형 선발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에 따라 특수교육대상자로 미술대학에 응시하려면 수능에서 언어, 수리, 외국어, 탐구 중 3개 영역을 3등급 받아야만 B대학에 응시할 수 있다.

C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언어, 수리(가·나), 외국어, 탐구(사탐·과탐 포함 2개 과목 이상) 과목에 모두 응시 한 뒤 1개 영역이 3등급 이내여야 원서를 낼 수 있다.

이에 대해 조씨는 똑같은 ‘특수교육대상자’ 자격이라도 신체적 장애인과 정신적 장애인에게 똑같은 잣대로 기준을 제시한다면 지적장애 같은 정신적 장애인은 대학 입시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시각, 청각, 지체,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노력으로 가능하지만 지적장애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수능 3등급을 받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적장애인은 이러한 대학에 응시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

“은지도 나름대로 수능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3등급을 받을 수가 없어요. 제 실력으로 문제를 푸는 것보다 찍어야 더 잘 나오는 아이가 어떻게 3등급을 받겠어요. 물론 지체나 시각, 청각장애 학생은 노력하면 할 수는 있겠죠. 지적능력이 부족한 우리아이가 아무리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재능이 있어도 이 대학에 응시하지도 말라는 거잖아요.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규정이에요.”

지적장애인은 지적·인지적 능력에 제한이 있고 일상생활을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은지와 같은 지적장애 3급의 장애인은 지능지수 50~75사이, 사회성지수 50~70 사이로 교육을 통해 사회적 및 직업적으로 재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조씨는 형식상으로 지적장애인을 입학에서 제한하고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기준을 적용해 지적장애인의 대학 입학에 간접 차별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학교의 장 혹은 대학의 장은 입학 지원을 거부하거나 입학전형 과정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조씨 모녀는 두 학교 모두 수능에서 일정 조건 이상이여야 원서를 접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좌절했지만, 가고 싶다고 점 찍어놓은 대학을 두고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다른 대학의 입학 응시 조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의 미술적인 성향이란 것도 있으니 아이의 뜻을 존중해주려고 해요. 또 그런 성향을 계속 고수해가길 바라는 게 제 뜻이기도 하구요.”

조씨가 이 대학에 고집하는 이유는 장애 학생이 많이 다니고 있는 D대학 등의 미술학과에 응시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지만, 은지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넓은 무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요구에 따라 B,C 대학 입학에 도전하기로 한 조씨는 이 같은 내용에 대한 민원을 교과부에 접수시켰다. 하지만 ‘학생선발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각 대학의 장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개별대학의 장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고등교육법을 살펴보면 대학의 장은 일반전형이나 특별전형에 의해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놓았으며, 각 대학입학 전형에 있어서 입학자격, 전형방법 등은 해당 교육기관이 추구하는 인재 상, 모집단위 등을 고려해 대학의 장이 자율적으로 정 할 수 있다.

결국 조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학입학 시 장애인 특별전형에서 지적장애인의 간접차별 여부에 대한 내용을 진정했다. 간접차별이라는 판단과 함께 권고사항이 내려지면, 교과부도 지적장애인의 대학 입학의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현재 인권위 장애차별조사과는 대학입학 장애인특별전형에서 지적장애인의 차별유무를 조사 중이다. 현재 B대학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았으며, 법률적인 부분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로 전국 국·공립대학으로까지 조사 범위를 넓힐 지 고민하고 있다.

은지가 중학교 3학년일 때 그린 그림. ⓒ에이블뉴스

마지막으로 조씨는 장애 영역별 특성을 고려한 특수교육대상자 대학입학 특별전형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적 관점에서 국가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장애 아이의 부모로서, 장애 예술가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소망했다.

우리 사회가 장애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지적장애인도 당당히 제 능력을 인정받아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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