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우리 아이가 수능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해온 만큼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 뿐이죠.”

10일 오전 8시 30분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서울 경운학교 학부모 대기실. 김미숙(가명, 49세) 씨와 고은숙(가명, 48세) 씨는 아이들의 수능 시험 걱정에 애가 탔다.

김 씨와 고 씨는 지난 9일 수능 예비 소집일에 처음 만났다. 주의사항을 들으러 간 사이 아이를 기다리며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보니 ‘장애 아이의 부모’라는 공통점으로 금새 친해졌다.

두 아이 모두 일반 학교의 통합학급에서 공부 하며 수능을 준비했고, 그녀들도 모든 어머니의 바람처럼 내 아이가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고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은숙(가명) 씨가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불경을 보고 있다. ⓒ에이블뉴스

‘수능, 꿈 향한 과정일 뿐’

고 씨의 딸 박정현(20세, 뇌병변 1급) 양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고, 타인의 작은 도움까지 받아야 하는 중증장애를 갖고 있다. 하지만 공부를 향한 열정은 비장애 학생보다 크다. 그 남다른 열정과 노력으로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적응을 못해서 자퇴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었어요. 그때 아이가 사춘기여서 (본인의 장애를)인정하기 어려웠겠죠. 다시 마음을 잡고 ‘내가 예쁘지도 않고 몸도 불편한데 공부라도 열심히 해서 똑똑해야지’ 이러더니 공부를 하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과외도 시켰죠. 물론 일반 학원에 다니면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휠체어 장애인이 학원에 가고 이러한 어려움이 너무 많아서 갈 수가 없어요. 한 달 반 다니고 그만 뒀어요.

그동안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고 하는 수 백번동안 차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거의 고3 때는 학교 운동장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차에서 밥도 먹고, 차에서 자고…”

그녀는 ‘장애’를 받아들이고 지금 본인의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딸이 너무 대견스럽기만 하다.

“정말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눈물 나게 열심히 공부했어요. 작년에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서 솔직히 수능 준비를 제대로 못했어요. 그래도 아이가 긍정적이고 ‘할 수 있다’고 얘기하니까 이제는 본인의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이렇게 수능까지 본다는 것이 대견스럽죠. 그냥 이렇게 우리 아이가 수능을 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갑자기 오늘 아침에 이렇게 얘기하는 거에요. ‘엄마 지금까지 내가 노력한 것이 수능을 목표로 하고 공부한 게 아니야. 앞으로 시험은 더 많이 볼텐데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 이러는데 정말… 내가 이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우리 정현이를 안 키웠으면 아마 반쪽 삶을 살았을 거에요.”

박 양은 아직 가고 싶은 학과를 정하진 않았지만 ‘장애인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장애인들의 인권에 대해 대변하고 앞장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고 씨 역시 딸의 의견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다.

“이번 시험을 잘 봐서 서울권으로 학교에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까 지방 대학은 꿈도 못 꿔요. 그래도 요즘에는 특별전형으로 장애학생을 뽑는 학교가 많아지긴 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거 하길 바라죠 부모 입장에서는”

‘모든 똑 부러지게 잘하는 내 딸’

옆에 있던 김 씨도 이에 질세라 딸 ‘은하’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은하(20세, 뇌병변 2급) 양은 약간의 보행이 불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글씨를 쓰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이번 수능에 대필자도 신청했다.

이 양은 중학생 때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웠다. 워낙 긍정적인 성격에 본인이 해야 할 일까지 미리 정해놓는 철두철미한 성격이기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 리스트까지 정해놓고 목표를 세웠다.

가고 싶은 대학 1지망으로 총신대 사회복지학과를 뽑았고, 이미 수시 1차로 극동대 사회복지학과를 합격해 놓은 상태다.

“본인이 복지관에서 본 것처럼 장애인 복지를 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대요. 학교를 고를 때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이 장애학생에 대한 지원이거든요. 얼마만큼 어느정도 되나 이런걸 주로 봤어요.

물론 은하는 기숙사에서 친구들이랑 지내는 것도 좋고 통학하는 것도 좋다고 하는데… 아직 철이 없어서 대학에 가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신나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죠.”

김 씨는 수능까지 보는 다 큰 딸 걱정에 여념 없지만 ‘수능’까지 보게 된 것은 무엇보다 아이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지원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워낙 아이가 긍정적이고 밝아서 키우면서 별 다른 어려움은 없었어요. 하지만 가족의 지원이 없었으면 힘들었겠죠. 아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은하 아빠도 은하오빠도 워낙 잘 해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수능을 잘 봐서 총신대에 갈 수 있는 등급이면 좋겠지만, 만약 안 된다면 좋은 경험으로 삼고 극동대에 보내야죠.

아이가 오늘 들어가기 전에 언어영역만 잘 보면 시험 무난하게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지금 언어영역 보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아니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 아마 최선을 다 할꺼라고 믿어요”

두 어머니는 자녀 때문에 힘든 날도, 괴로운 날도 있었지만, 꿈을 향한 도전에 나서는 자녀의 모습이 뿌듯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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