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컴퓨터수업을 듣고 있는 초등학생들. ⓒ부산CBS 박중석 기자

뇌병변 3급 장애 속에서도 뭐든지 배우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2학년 최혜민(8·가명)양은 얼마 전 큰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듣던 방과후 학교 컴퓨터 수업을 포기하고 ‘도자기 만들기’ 수업을 듣기로 한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에게 지원되는 방과후 학교수업이 한 과목만 신청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과목이 듣고 싶으면 당시 수강하는 과목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혜민이는 컴퓨터실 앞 복도를 지날 때면 까치발로 서서 교실 밖 창문에 매달려 수업을 지켜본다. 가끔씩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수업을 듣기도 한다.

컴퓨터 담당 양모(33) 교사는 “혜민이가 컴퓨터도 배우고 싶고 도자기도 배우고 싶은데 한 과목밖에 들을 수 없으니 안타깝다”며 “가끔씩 수업에 들어오는 혜민이를 타일러서 보내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모른 척 눈감아 주고 있다”고 말했다.

◈ 학생 한 명당 한 과목에 한정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배움에 목말라하는 아이를 바라봐야만 하는 혜민이 어머니의 가슴은 찢어진다.

몇달 전 남편과 헤어진 뒤로 장애가 있는 딸 아이를 위해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정부보조금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혜민이 어머니 최모(35) 씨.

최 씨는 “아이가 어떤 수업을 들을까 며칠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더라. 돈만 있으면 둘 다 시켜주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 씨는 “염치없지만 학교에서 진행되는 수업이니 만큼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지원을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바람을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7년부터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 저소득 가정 학생들에게 방과후 학교 수업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하지만 지원금액은 학생 한 명당 한 과목에 한정돼 있어 수업을 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실정이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지원대상 학생 중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의 지원금을 돌려 추가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혜민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교감은 “현실적으로 한 학생당 두 과목을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며 “후반기 재정상태를 생각해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방과후 수업을 듣고 싶어도 못 듣는 학생들. 복도에서 까치발로 교실 안을 바라봐야 했던 40년 전 풍경이, 2009년 대한민국 초등학교에서 재연되고 있다.

부산CBS 박중석 기자 jspark@cbs.co.kr / 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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